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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강인호 입니다. 행정실장이 나가고 그는 서툰 수화로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학교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 그를 보고 도망 가버린 과자를 먹던 아이도 보였다. 그가 서툴게나마 수화를 하는 모습을 보자 아이들의 흰가면 같은 얼굴들 위로 작은 파문이 일었다. 좋은 시작이었다.-P29-
지난해 닥친 불경기의 여파로 실직자가 된지 6개월째인 강인호는 아내 동창 일가가 이사장으로 있는 무진 자애학원의 기간제 교사로 임시발령을 받게 된다. 자애학원은 청각장애, 지적장애 등에 장애를 이중 삼중으로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다니는 장애학교이다.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는 기간제 교사 강인호의 눈에 비친 자애학원 안팎의 거짓과 위선과 폭력을 그리고 있다.
도가니는 소설 초반부터 불편하고 충격적인 진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자애학원의 설립자 이준범의 쌍둥이 아들인 교장 이강석과 행정실장 이강복 그리고 생활지도교사 박보현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수년간 성폭행이라는 끔찍한 일을 벌여왔다. 성폭행을 당한 아이들이 그 순간을 회상하며, 힘겨운 고백을 해 나갈 때 나의 심장은 미칠듯이 방망이질 쳐댔고, 나의 목은 마치 가시가 걸린듯이 침이 삼켜지지 않았다. "이건 소설이니까. 그래 어디까지나 이건 소설이니까" 라고 자신을 달랬음에도 불구하고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작가의 말'을 읽으며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모든내용은 몇해전 광주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이것이 실화라는 것이 믿겨 지지가 않았고 나는 더러운 기득권자들의 행태와 말못하고 가진 것 없는 자들에 안쓰러움에 대한 울분을 견디지 못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야기의 1막이 추악하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진실의 고백 이라면, 2막은 더러운 죄질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자들을 처벌대에 올려 놓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강석, 이강복 형제는 무진에 위치한 영광제일교회에 장로이자 절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또한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장애우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준 인자한 중년의 남성들이다. 마지막으로 엄청난 재산의 소유자로서 무진의 실세이기도 하다. 이는 이강석, 이강복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며, 그들을 포장하고 있는 포장지이다.
얽히고 설킨 권력의 상호관계 속에서 법은 그저 휴지조각에 불과하거나, 쉽게 깨어버릴 수 있는 저녁식사 약속과 같을 뿐이다.
이 책을 만나기전 공지영 작가는 내 관심작가 안에 들어있는 작가들 중 한사람에 불과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공지영 작가를 많이 좋아하게 될 것 같다. 몇해전 기사에 등장한 한줄을 보고 써내려 갔다던 글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그 안에는 바람보다 스산한 순수한 아이들이 있었고, 권력과 잘못된 부의 축적의 노예들이 있었다. 그걸 깨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있었고, 그것을 덮고자 자신의 양심을 버린 이들도 있었다. 진실은 결코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진실이 아닌 현실을 즉시하고 눈을 뜰 것인지, 눈을 감을 것인지, 등을 돌려 버릴지를 결정 해야만 한다.
짙은 안개의 도시 무진은 보일듯 말듯한 기득권자들의 더러운 도시를 상징하기도 하고 인간의 권리와 옳고 그름에 대한 부르짖음이 안개속에 묻히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전라도 광주 무진, 나는 무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앞으로 무진? 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아마도 공지영의 도가니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공지영이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의 무진을 떠올렸듯이 말이다.
안개도 오래 겪다보면 앞이 보입니다. 이 세상은 늘 투명하고 맑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에게 안개는 장벽이겠지만, 원래 세상이 안개 꼈다고 생각하면 다른 날들이 횡재인 거죠. 그리고 가만히 보면 안개 안 낀 날이 더 많잖아요?- P2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