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순이 언니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봉순이 언니" 책을 펼치기전까지 그녀의 이름은 그저 여느 소설책에서와 마찬가지로 책의 주인공 이름일 뿐이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그녀는 단순한 소설속의 주인공이 아니었고, 작가인 공지영만의 사람이 아닌 나의 언니이고 나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제 난  그녀의 가여운 삶을 침대에 누워 책장을 넘기며 짬짬이 내가 원할 때마다 훔쳐 본 그런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녀의 가여운 삶을 넋놓고 구경만한 그런 나쁜사람이 되어버린 터라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 시키기가 어렵다.

 

1960년 무렵 우리네 한국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살았던 걸까? 작가와 20여년 가까운 나이텀이 있는 나는 tv문학관에서나 볼법한

이 이야기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분명 오래도록 존재했으나 계급으로 자리매김 하지 못한 과도적인 계급 식모 라는 것이

집마다 존재 했었다는 사실 자체가 참 생소하다. 주종관계가 확실했던 노예나 머슴시절이 아닌 혹은 요즘과 같은 파출부가 아닌 식모라는 단어. 가족도 남도 아닌 그런 관계. 그렇다 봉순이 언니는 아현동 언저리의 중산층 가정의 식모였다. 또한 책속의 나인 짱아의 보모이자 친구이자 언니이자 첫사람, 첫세계였다.

 

봉순이 언니는 원래가 주인집 식모였다. 짱아네 집이 냉천동에서 아현동으로 이사올 때 그 집에서 도망쳐 짱아네를 따라왔던

것이다. 얼굴도 몸매도 이쁘지 않은 그녀는 둔하디 둔한 어쩌면 미련한 19살 소녀이다. 그녀는 고아이며, 19살 그 이전부터 식모였다. 어쩌면 태어날때부터 이 모든것이 낙인처럼 정해져 있었을지도 몰랐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게 이런종류의 한없이 

안쓰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분명 존재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짱아의 아버지의 귀국으로 짱아네는 셋방살이에서 넓은 마당을 가진 집으로 이사를 하며, 점점 집의 규모가

커질수록  봉순이 언니를 대하던 가족들의 태도 또한 서서히 변해 간다.

 

이 책에서 짱아네를 60년대 한국의 중산층이라 말하지만 그다지 부유하고 넉넉하지 못했던 본인은 이것이 정말 중산층인가? 싶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책중반쯤 그때 당시만해도 귀하디 귀했던 케익을 먹으며 분홍색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주인집 딸

5살 짱아와 허름한 옷차림에 셋방살이 꼬마아이들의 구조적인 대립은 어른들의 사회못지 않게 치열했다. 셋방 꼬마아이들과의

술래잡기 놀이에서 온종일 술래만  해야했던 짱아는 그런 부당한 대우 속에서도 친구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단지 주인집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본인또한 전혀 가엽지가 않았다. 셋방살이의 어린시절을 보낸 나 또한 주인집 딸이란 이유없이 질시해야 했던 대상이었으니까. 나름 부유한 어린시절을 보낸 공지영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10대를 어두운 외딴방에서 보냈던 비슷한 또래의

신경숙 작가가 생각난건 왜일까?

 

봉순이 언니는 5살 짱아와 같은 방을 썼으며, 짱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생각이 들면 요아래 세탁소집 총각을 만나러 몰래 나가곤

했다. 그녀에게 세탁소집 총각은 첫 남자였으며 잘못 꿰어진 첫 단추와 같았다. 그 후로도 병으로 죽은 첫 남편, 떠돌이 목수

개장수 까지... 잘못 꿰어진 첫단추 때문에 마치 마지막 단추가 혼란을 겪어야 했던 것처럼 그녀의 남자들은  그녀가 간절히

소망했을지 모르는 가정에 대한 희망을 무참히 짓이겨 내동댕이 쳐 버렸다.

 

그녀는 짱아네 식구의 가족이 되길 무언으로 희망했으며, 그녀를 거쳐간 어렷 남자들이 그녀의 울타리가 되어주기를 희망했던

거였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10년 전쯤 우리집 빌라 아랫층에 4살배기 꼬마 아이와 이혼한 그 아이의 아빠가 살았다. 엄마 없이 자라게 된 뽀얀 피부의 천사같은 꼬마아이는 우리 세자매의 동정과 아낌속에 가까이 지냈고, 아랫집이 우리집에서 한시간 거리쯤으로 이사를 간 후에도 계속 왕래를 해왔었다. 어느날 그 아이의 아빠는 아이를 우리집에서 하루정도 보살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날 아빠와 떨어지게 된 아이의 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한 내가 아는 모든 동요를 총동원해 불렀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일주일에 한번은 우리집에서 꼭 자야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더 시간이 지나 일주일에 한번이 두번이 되어가던 무렵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위해 일주일에 5일을 우리집에서 지내며 유치원에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건 도가 지나쳤다. 싶었고

아이의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하며 아이와의 관계까지 자동으로 정리가 되어버렸다. 보고싶은 마음 또한 컸지만 거기까지였다.

더는 연락을 해선 안될 것 같았다.

얘기가 길었지만 책을 읽는 내내 봉순이 언니를 끝까지 보듬어 주지 못한 짱아네 가족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불연듯 생각난

나의 과거 경험으로 인해 이해할수밖에 없게 되었다.  

 

공지영 작가의 "나는 네가 어떤 삶을 살든 응원할 것이다"의 책 구절이 생각난다.

[그녀도 잘못은 있었다.]

 

그래 그녀도 잘못은 있었다

그녀는 고아였으며, 어려운 시대에 태어났으며, 남자를 대할 때 조금 더 똑똑하지 못했으며

조금더 악착같지 못했으며, 그녀는 너무 미련하리만큼 착했다.

그래 그녀도 잘못은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가슴이 묵직한 것은 어쩔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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