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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워낙 베스트셀러다보니 무작정 집어들고 읽었다. 초반 이야기는 별 흥미를 끌지 못한다. 그러나 작가의 담백하고 알찬 문체를 음미하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파이 이야기"는 또 하나의 "로빈슨 크루소"처럼 어느 작은 인간의 표류 사건을 그 틀로 삼고있다.
인간 생존에 있어 최악의 상황에 빠진 주인공이 어떻게 역경을 이겨내며 서바이벌하는가는 흔해 빠진 슈젯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진면목은 그런 고리타분 흔해빠진 이야기 틀을 풀어내고 편집하고 짜맞추는 구성력에 있었다.
어느 소년이 힘들게 표류하다 살아남은 이야기(뭐, 그 속에서 동물들이 싸우고, 생고기를 뜯어먹는 장면들에 쩝쩝거리다 책을 접게 만들 수도 있었다)는 마지막 장에서 '다른 옷'을 입게 된다. 일본인들이 파이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자, 파이는 동물들 대신 인간들의 이야기로 자신의 경험을 꾸며낸다. 그제야 일본인들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실은 믿을만한 현실적 이야기(인간들의 이야기)가 믿기힘든 상상의 이야기(동물들 이야기)보다 잔인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가는 파이의 목소리로 넌지시 말한다.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p.375) 실제로 '동물 이야기'가 진실이든, '다른 이야기(인간 이야기)'가 진실이든, 그것은 보고 듣고 받아들이는 주체에 달려있다.
우리가 말하는 사실, 현실은 어쩌면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착각, 상상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 어떤 절망도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180도 달라질 수 있다. 모든 위대한 작가들이 말하듯, 얀 마텔 또한 나름의 방식으로 '절대성'을 부정하고 있다.
파이 이야기에서 동물에 관한 이야기가 인간의 모습을 반추하도록 도입된 장치라면, 종교 이야기, 다시 말해 신에 관한 이야기는 '희망에 관한 담론'을 담기 위해 쓰였다고 본다. 파이에게 인도 힌두교의 신들이건, 카톨릭, 기독교의 신이건, 이슬람의 신이건, 그들은 모두 파이의 마음 속에 불을 밝혀준다. 그에게는 어느 종교의 신이건 중요치 않다. 무언가에 매달려 '구원을 갈구'하는 행위 모두는 삶의 끈, 희망을 놓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에게 '신'이란 일상적으로 말하는 종교적 신이 아닌, '희망' 그 자체인 것이다. 끊임없이 기도하는 그의 모습을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않는 모습이다.
최근 우울증 비슷하게 삶에 대한 허무와 무력감을 느꼈다. 그러던 차에 읽은 '파이 이야기'는 영원히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 단물과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