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주는 복수선언
약국 글.그림 / 거북이북스 / 202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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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 두 남자가 있다.

나쁜 NOM들 소탕 전문(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열혈 신문기자 한기태 X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마이웨이(눈에는 눈 이에는 이) 집착광기 형사 이정율

그렇다. 이들이 바로 죽여주는 복수선언의 주인공들 되시겠다.

인생에 불행은 늘 불쑥 찾아온다. 죽여주는 복수선언 주인공들의 첫 만남 또한 예고없이 불쑥 찾아온 비극적인 사건으로 둘의 인생은 180도 달라지게 된다. 잊을 수 없는 사건과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긴 채 몇 년 뒤 이정율이 한기태를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작품 속 배경은 사회 전면에 만연한 비리, 부정부패, 부조리한 더러운 면들이 가득한 우리가 사는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초반부터 서로를 향한 두사람의 집착과 운명은 예고되어 있었던게 아닐까 예상해 볼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한기태가 종이에 적어 건내준 연락처를 간직하고 있던 이정율이나 바뀌지 않은 한기태의 휴대폰 번호가 등장하는 장면이 마치 복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언젠가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하라고 말한 한기태조차 이런 식의 대면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작품 속 언급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중간중간 진행되는 스토리상의 단서들로 어렴풋이나마 유추해본 결과 몸과 마음이 망가진채 이정율은 생을 이어가기 위한 목적으로, 한기태는 죄책감을 지워가기 위한 수단으로 어쩌면 각자 복수라는 이름의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여주는 복수선언은 나에게 한 편의 현대판 서부극 흑백 영화같은 작품이었다. 이야기는 인물들의 물리적인 관계에서 출발해 후반으로 갈수록 심정적 관점에 포커스를 맞춰 진행이 된다. 접근 방법 및 사고 방식이 판이하게 다른 한기태와 이정태라는 인물이 사사건건 부딪히고 충돌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라인을 작품의 킬링포인트로 꼽고 싶다. 종종 등장하는 이정율을 지긋지긋해 하는 한기태의 표정이 개인적으로 압권이었다.ㅎ

외전에서 복수는 마무리가 되었지만 새로운 관계를 쌓기엔 애매한, 첫 단추부터 잘못 채운, 사이가 되어 버린 두 사람 사이에 또 한 번의 사건이 일어나고 드디어 같은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이정율의 거침없는 구애작전에 넘어가는 한기태를 만날 수 있다.)


외전 포함 총 4권의 회지를 한권으로 엮었기에 볼륨이 상당한 편이다. 사건 위주라 로맨스 비중은 살짝 적지만 감정선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인물들의 표정이나 태도, 상황 등을 통해 간접적인 감정의 변모를 어렵지 않게 캐치해 낼 수 있다.

또 떡밥을 회수하며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양쪽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정율의 삶을 원상복귀 시켜줄 순 없지만 과거에 묶여있지 않고 평범한 현재를 살아가길 원했던 한기태의 마음이 잘 와닿았고, 이정율의 입장에선 탐욕만 넘실거리는 시커먼 주변인물들 중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이자 변함없이 인간적이고 책임감 있는 모습의 한기태를 마주하고 안심함과 동시에 지켜줘야 한다는 결심을 굳혔을 모습에 자연스레 수긍이 갔다.

시선 강탈하는 거친 듯 섬세한 약국님의 펜터치로 그려낸 위태로운 인물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불러오는 몰입감과 감각적인 연출력에 빠져들게 된다. 디테일한 소품, 배경, 의복 등과 톤과 명암의 표현으로 흑백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장면이 생동감 넘치게 다가왔다. 단편이라 호흡이 빠른 편이지만 딱 알맞은 분량과 깔끔한 마무리가 좋았다.

약국 작가님 그림만으로도 소장 가치가 충분하고(원고 과정이 모두 수작업이라 ★눈호강★ 제대로 됩니다.!), 8페이지의 스폐셜이 only 단행본에만 추가로 수록되어 있기에 꼭 구매해 보시길 권한다.

이정율X한기태, 한기태X이정율

그들의 이야기가 end가 아닌 and가 되길 바라며...

행복하렴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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