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나무 숲 Nobless Club 1
하지은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수많은 잔가지들이 현처럼 늘어져 있고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지휘자가 침묵으로 지휘봉을 대신하여 차갑고 흰 바람이 노래하는




그곳은 얼음나무 숲.




워낙에 말이 많았던 작품이고, 기대가 크면 반드시 실망한다, 라는 징크스에 휩싸여서 읽을까 말까 수차례 고민을 했었다. (그래봐야 30분?) 그리고 책에 쓰인 찬사가 “사실”임을,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눈을 뗄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천재와 초현실은 기묘하게 맞물린다.
그가 얼음나무 숲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위 문장은 이 이야기의 주제를 명료하게 들어낸다. 모든 것을 초월한 천재지만, 자신의 음악성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이가 없기에 끝없이 연주를 하고, 끝없이 찾아 헤매는 바이올리니스트 바옐과 그에 못지않은 재능을 가졌지만 바옐의 유일한 청중이 되는 것이 소원인 피아니스트 고요. 그리고 음악의 도시 에단에 전설처럼 내려져 오는 얼음나무 숲. 이 모든 것이 어울려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이야기는 시작된다.




읽는 내내 고요와 바옐이 살아 숨쉬고,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이 들려온다. 참으로 기이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영원함을 들었다. 끝없는 찬란함을 들었다.
음의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무한으로 뻗어 가는 화음을 들었다.





아주 단순명료한 문장이다. 화려한 수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엄청난 묘사를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고요가 전달해 주는 바옐의 음악과 그가 연주하면서 생각하는 것들이 “글자”로 전달이 되면서 하나의 “음악”이 된다. 어느 누구보다도 순수한 고요이기 때문에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생생했다.




내용을 많이 알면 분명히 재미가 떨어질 거라서 극히 자제하는 중이다. 초반에 늘어지는 듯한 구성이지만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주인공들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점과 음악도 하나의 언어라고 설정한 작가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보면 전공자인 줄 알겠더라.)




여기까지 보면 <모차르트>를 상상하실 분이 많겠지만(분위기는 조꼼 비슷하다), 단순히 두 천재의 갈등에서 이 이야기는 마무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고요는 절대 살리에리가 아니다. 고요는 오히려 자신의 재능에 자신감을 갖고 다른 이유로 바옐을 추격했다면 아마도 에단의 역사에는 두 천재가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인정받은 오만한 천재만이 가질 수 있는 욕망으로 이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욕망이라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그리고 신이라고 불리는 악마는 엄청난 장난꾸러기인 듯 그 욕망 때문에 벌어지는 살인사건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기묘한 분위기의 얼음나무 숲, 그 나무로 만들어진 최고의 바이올린과 단 하나의 청중이 되기 위한 살인은 시종일관 작품의 중심을 잃지 않고(심지어 단 하나의 대사도 놓치지 않고) 긴박감 넘치게 흘러가고 있다.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 그리고 일관성 있게 환상 문학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린 서사가 최고다. 이러한 작가가 (무려 나이도 어리다 -_-) 나왔다는 것에 박수를!




게다가 ㄱ- 말이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고요와 바옐의 관계(?)는 정말! 이렇게 던져 주면 상상을 아니 하지 않을 수 없잖아! 주인공들 나이는 꽤 들은 듯한데 이야기를 읽는 내내 미청년이 상상되어 죽을 뻔했다.




다음 작품은 또 어떤 이야기를 들고 나올지.




그리고 몇 명의 대 작가님들 빼고 대부분 외면 받는 우리나라 문학계에서 끝까지 글을 써 주시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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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얼음나무숲 구입.
    from 부르심의 블로그 2008-01-20 21:59 
    문피아에서 인상 깊게 읽은 소설, 나태학악마님의 얼음나무숲을 구입하였다. 그 당시에 글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음악으로 인해 크게 몰입하며 읽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비록 책으로는 음악과 함께 글을 읽진 못하겠지만 그 재미가 어디 가겠는가? 어서 읽어야겠다. 기대가 무척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