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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김미월 지음 / 창비 / 2011년 12월
평점 :
김미월 작가의 소설집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은 꿈이란 무엇인가, 인연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어릴 적에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었으나 어른이 된 지금은 세상의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 서점 베스트셀러 진열대 뒤 구석에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같은 존재로 살아가는 진수와,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구십 퍼센트 정도는 되는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이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방황하는 나와 같이, 이 책은, 꿈을 잃은 채 29200만 일 중의 하루를 천천히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꿈을 잃은 이들에게도 어딘가에서 가만히, 희망의 씨앗은 고개를 내밀고 있을지 모른다. 설명하기 어려운 우주의 어떤 기운에 힘입어 어느날 문득 동백꽃 같은 인연을 만나서, 아니면 세상 많은 사람들과 달리 나를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영어 선생님과 준 오빠, 그리고 부모마저 나를 떠났지만 아직도 나를 떠나지 않고 내 곁을 지켜주는 지게꾼 할아버지가 있음을 깨닫고,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다.
고달픈 현실이지만 다른 사람을 향한 따뜻한 이해와 소통의 몸짓들이 살아있는 한, 이 세상은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같은 이들이 베스트셀러 같은 존재를 꿈꾸며 살 만한 곳이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희망의 근거가 되는 인연을 만날 수 있기를 나는 오늘도 꿈꾼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희망의 작은 씨앗이 되는 인연이기를 또한 꿈꾼다.
눈 오는 날도 좋아하고 비 오는 날도 좋아하고 맑은 날도 좋아한다는 김미월 작가, 이것도 좋아하고 저것도 좋아한다는 작가의 소탈하고 따뜻한 마음이 작품 여기저기에서 느껴진다. 삶을 힘겨워하는 누군가를 응원하고픈 마음으로 바라봐주고 싶고, 무언가에 집착하지 않고 물 흐르듯 흐르는 대로 그걸 놓아주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드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