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 침묵으로 리드하는 고수의 대화법
다니하라 마코토 지음, 우다혜 옮김 / 지식너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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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는 말 잘하는 직업의 대표격인 변호사 출신의 다니하라 마코토가 쓴 '침묵의 기술'쯤 되는 책이다. 하루에 셀 수도 없이 많은 말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우리에게, '침묵'이란 어찌 보면 사치스럽고 불편한 단어다. 말을 해놓고 상대가 침묵하면 왠지 불편해서 쭈뼛쭈뼛하든지,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시답잖은 농담도 해보고, 어쩌다 도시를 떠나 휴식을 위해 조용한 시골에 있다가도 '너무 조용해서' 3일을 넘기기 힘들 수도 있다. 저자인 다니하라 마코토는 이렇게 불편한 침묵이 때로는 말보다 강한 힘을 발휘한다고 이야기한다.

 

파워 사일런스 1·2 침묵의 힘을 이용해 상대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의 이야기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에 관하여.  

질문을 한 후에는 침묵한다. 이는 상대에게 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정리하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상대는 내 질문을 곱씹어 생각하고, 나의 말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때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이가르닉 효'라는 방법이 사용된다. 이는 궁금증을 유발한다는 것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요새 한창 유행하는 '미스터 트롯'에서 MC 김성주가 "과연 1등은.... 1등은...."하는 순간 광고를 삽입해 채널 고정을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방송에서 사용되는 방법으로, 특히 드라마의 한 회차를 마무리하지 않고, '다음 회에 계속'이라는 문구를 띄움으로써 자연스럽게 다음 회를 시청하도록 유도할 때 쓰이기도 한다.

 

람은 질문을 받으면 무의식중에 그 답을 알고 싶어 한다.(22쪽)

 

●파워 액션 침묵의 테크닉에 관하여.

소위 상대에게 씨알 먹히는 침묵을 구사하기 위한 테크닉, 즉 비언어적 흐름의 읽는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다. 때론 우리는 상대방을 '모방'함으로써 친밀한 관계를 구현(라포르rapport)할 수도 있는데, 이를 '라포르 테크닉'이라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러링·페이싱·캘리브레이션·백트래킹'이 이에 관한 기술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145쪽)

 

●파워 퀘스천 질문의 힘 

그렇다면 씨알 먹히는 침묵은 어떻게 구현될까? 그것은 바로 '질문'에서 기인한다. 'QAS(Question and Silence)', 질문을 했다면 반드시 '침묵'하라는 말이다. 상대가 나의 말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다(이 말은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다. 질문 후 침묵). 그리고 자유로운 생각을 유도하는 개방형 질문과 나의 생각대로 상대를 유도하는 폐쇄형 질문의 적절한 운용으로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

 

적절한 상대에게,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질문을 한다.(163쪽)

 

파워 토크 강하고 묵직한 침묵의 품격

초반 파워 사일런스의 내용을 되풀이하며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말은 많이 할수록 실수할 확률이 높아진다. 우린 적절한 침묵을 통해 상대로 하여금 우리에게 집중하게 하며, 나는 '그 순간,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또한 침묵은 상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지만, 나의 감정을 컨트롤할 때도 유용하게 쓰인다. 그러니 침묵의 시간은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시간이다. 이때 우리가 이 '침묵의 의미'를 제대로 써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의 말에 귀기울여 집중해야 한다. 상대가 나에게 집중해주길 바라는 만큼 나 또한 상대에게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움직이려면 스스로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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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 댄서
조조 모예스 지음, 이정민 옮김 / 살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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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변호사인 '너태사 매클리'는 사진작가이자 크리에이터인 남편 '맥'의 바람기를 참을 수 없어 이혼을 결심한다. 1년여에 걸쳐 별거 생활을 하고 있던 너태사는 우연히 들린 슈퍼마켓에서 도둑으로 오해를 받던 '사라 라샤펠'을 만나 왠지 모를 끌림에 그녀를 집으로 들인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할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사라는 보호소에 가길 극도로 꺼려 했고, 결국 너태사와 맥은 사라의 임시 위탁 부모가 되어 그녀를 돌보게 된다.

 

그러나 14세, 사춘기의 소녀는 학교 수업도 무단으로 빠진 채 사라지곤 해서 너태사와 맥을 곤란하게 만들곤 한다. 그녀에게 문제가 있나 싶어 맥은 사라를 미행하고, 어느 목장으로 향한 사라가 '부'를 타며 마장마술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혼을 앞둔 너태사와 맥, 할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를 지켜야만 하는 사라. 그들이 펼쳐가는 가족·사랑·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

 

몇 년 전, <미 비 포 유>라는 영화의 원작자로 유명해진 '조조 모예스'의 신작 소설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사랑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물 흐르듯 담겨 있어, 688쪽이라는 두께가 무색할 정도로 물 흐르듯 읽힌다. 요즘 경쟁하듯이 추리·미스터리·스릴러 등 자극적인 장르 소설이 많이 나오는 때, 참 드물게 순수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균열이 간 부부가 한 소녀를 두고 어쩔 수 없이 좋은 부부인 척 연기를 하면서 이제까지 몰랐던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나, 말인 부에게 집착하는 사라를 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모습은 오랜만에 힐링을 준다. 말의 동작 하나하나가 우아한 마장마술쇼를 보는 듯한 기분, 그리고 할아버지와 소녀의 애잔한 마음이 와닿은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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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3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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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은 『루공마카르 총서』의 제7권이자 <나나>의 주인공 '나나'(쿠포와 제르베즈의 딸), <작품>의 주인공 '클로드'(장남, 랑티에와 제르베즈의 아들), <제르미날>의 주인공 '에티엔'의 엄마인 '제르베즈'의 삶을 담고 있다.

 

●제르베즈 이야기●●●

'제르베즈'는 14세에 '랑티에'를 만나 '클로에'와 '에티엔'을 출산하고. 폭력적인 아버지 '마카르'에게 학대를 당하며 지내고 있었다. 22세의 미혼모 제르베즈는 어머니의 유산을 받은 랑티에와 함께 파리로 향했지만, 채 한 달도 안 돼 유산을 탕진하고 '보슈 부인'이 관리하는 공동주택에 세 들어 살게 된다(건물주는 '마레스코').

 

그러나 허영에 차 있던 동거남(정식 결혼을 안 했다) 랑티에는 같은 건물에 사는 매춘부 아델과 바람이 났고, 어느 날 그나마 쥐꼬리만큼 남아 있던 돈과 귀중품(이라 해봤자 옷 몇 벌)을 몽땅 들고 자취를 감춘다. 어린 아들 둘과 파리 한복판에 버려진 제르베즈는 '포코니에 부인'의 세탁소에서 세탁부로 일하며 하루하루 고단한 나날을 보낸다.

 

랑티에가 떠난 지 두 달 후, 겨우 안정된 생활을 하던 제르베즈에게 함석공 '쿠포'가 열렬히 구애를 했고, 그의 열정에 감동한 제르베즈는, 쿠포의 누나인 '로리외 부부'의 따가운 눈총을 무시하고 결혼을 한다. 그리고 딸 '나나'를 낳고, 착실히 모은 돈으로 세탁소를 개업할 기회를 얻는 등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하지만 가게 계약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쿠포가 지붕에서 추락해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가 나면서, 무기력증에 빠진 쿠포는 제르베즈에게 언어폭력을 행사하며 서서히 술독에 빠지게 된다. 그래도 나날이 번창하는 세탁소 덕분에 제르베즈는 나름의 행복을 느끼며 생활하고 있었으나, 어느 날 방탕한 랑티에가 돌아오며 그녀의 인생에 또 다른 불행을 예고한다.(1권)

 

이제 그녀의 삶은 바로 저 곳, 도살장과 병원 사이의 공간에 달려 있었다.(58쪽)

 

●●●●

 

1877년 출판 당시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이는 에밀 졸라의 '서문'에도 등장할 정도로 굉장한 이슈였던 것 같다. 143년이 지나 2020년에 읽는 <목로주점>은... '살인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은 제르베즈의 세탁소에 쌓여있는 세탁물의 악취가 느껴질 정도로, 마치 내가 그 시대에, 제르베즈의 곁에 있다고 느껴질 만큼 현실감을 가진다. 세탁소에서 끝없이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느껴져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녀의 주변 인물들 또한 너무 생동감 있게 표현되다 보니, 제르베즈의 처지에 대한 동정심이나 처연함보다는 '죽여버리고 싶다'라는 과격한 생각이 앞선다.

 

먹고사는 문제 외엔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의 잔혹함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에 대한, 또는 '어디까지 견딜 수 있나 보자'라는 식으로 몰아친다. 주변 인물들이 그녀에 대해 하는 짓거리를 글로 옮기다가는 내 명대로 못 살 것 같다.

 

답답하다. 에밀 졸라의 글은 너무... 너무... 괴롭다. 숨이 막힌다. 그런데 제르베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겠다.

 

내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악취를 풍기는 우리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한 노동자 가족이 돌이킬 수 없이 전락해가는 과정이다. 알콜중독과 나태함은 가족의 해체와 온갖 추잡함, 바르고 정직한 감정들의 점진적 상실을 야기하며, 종국에는 수치와 죽음을 안겨주고 만다. 이것이 바로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작금의 도덕론이다.

 

<목로주점>은 민중을 묘사한 최초의 소설로 거짓 없이 진실을 얘기하는, 민중의 향기를 담은 소설이다... 내 소설 속 인물들은 본디 성정이 나약한 것이 아니라, 배움이 부족하고, 거친 노동과 비참함이 지배하는 환경 때문에 망가진 것뿐이다. 부디 나 자신과 내 작품들에 터무니없는 끔찍한 혹평을 퍼붓기 전에, 무엇보다 전부를 읽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주기를 바란다. - 에밀 졸라, <목로주점> '서문' 중에서

 

●표지 이야기●●●

헨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La Blachisseuse(1886년 작, 라 블랑키 세 우스)>

모델은 낮에는 세탁소에서 일하고(31쪽), 저녁엔 매춘부로 일했던 품위 있고 겸손한 매춘부 '카르멘'이다. 이 그림은 노동 계급 여성의 고단한 삶을 완벽하게 묘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05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2,240만 달러(약 266억 800,000원)에 개인 소장품으로 낙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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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씨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송은주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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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씨>는 현대 작가들이 셰익스피어를 재해석한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이며, 원작은 『템페스트』이다.

 

● 원작-템페스트 ●●●

셰익스피어 로맨스극의 마지막 작품. 일반적인 설로 1611년 무렵 집필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작가관과 세계관이 두드러진 작품으로 그의 최후 걸작이라고 평가받는다.

 

동생 안토니오와 나폴리 왕 알론조의 음모로 추방당한 프로스페로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폭풍우Tempest를 다루는 마법의 힘을 손에 넣는다. 이를 이용해 결혼식에 참석하고 귀국하던 알론조 왕의 배를 난파시켜 자신이 머무는 섬으로 불러들인다.

 

조난당한 알론조는 아들인 페르디난드가 죽었다는 생각에 비통해 하고, 섬의 반대쪽에 상륙한 페르디난드는 아버지가 익사했다고 믿는다. 프로스페로의 지시로 요정 아리엘은 미란다와 페르디난드가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하지만 페르디난드의 마음에 의심을 품은 프로스페로는, 그를 시험하고 딸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동굴에 가둬버린다.

 

알론조 일행 앞에 모습을 드러낸 프로스페로는 그들에게 죄를 묻지만, 아들인 페르디난드가 죽었다고 생각한 알론조는 애통함으로 프로스페로에게 사죄를 한다. 이에 프로스페로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페르디난드와 미란다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앙숙 관계를 해소한다.

 

● 개작-마녀의 씨 ●●●

연극감독 자리를 탐내던 '토미'와 관계가 좋지 못했던 문화유산부 장관인 '샐 오낼리'의 합작으로 퇴출당한 천재적인 재능의 연출가 '필릭스'가 12년 동안 절치부심切齒腐心하여 복수를 하는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가 각색한 템페스트, <마녀의 씨>는 마치 '죽은 시인의 사회'와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섞어 놓은듯한 분위기다. 아내 '나디아'와 딸 '미란다'를 잃고 남은 것은 연극밖에 없던 그에게, 퇴출-그것도 동료의 배신으로 인한 퇴출은 엄청나게 큰 타격이었다. 시골의 한적한 집으로 숨어들어 '상상의 딸 미란다'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전부인 어느 날, 그는 복수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분연히 일어선다.

 

그는 자신의 <템페스트>를 되찾아야 했다. 어떻게든, 어디에서든 무대에 올려야 했다... 두 번째로, 복수하고 싶었다. 복수를 간절히 원했다. 토니와 샐은 고통을 받아야 한다. 지금 그가 겪고 있는 통탄스러운 상황은 그들이 만든 것이었다. 전부는 아니라해도 상당 부분은 그러했다. 그들은 그에게 부당한 짓을 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그런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인가?(67쪽)

 

그 첫걸음으로 필릭스는 그의 '섬' 플레처 교도소 문학 독해 수업 고교 과정을 맡게 되는데, 연극을 통한 셰익스피어 수업은 수감자 사이에서 의외로 큰 호응을 받게 된다. '연극'이란 매체는 필릭스와 수감자 모두에게 기적 같은 운명의 반전을 선사한다.

 

1. 언어의 정화

문학 독해 선생인 '듀크(필릭스)'의 수업은 언제나 대본을 읽고, 그 '대본에 등장하는 욕만'을 쓸 수 있다고 언어의 한계를 설정함으로 시작한다. 예를 들어 '템페스트' 수업시간엔 대본에 등장하는 '목매달 놈, 소란스럽고 시끄럽게 구는 놈, 마귀할멈한테서 태어난 얼룩덜룩 개새끼, 흙덩이 같은 놈' 등만 사용하도록 규정하는데, 범죄자들이 모인 곳에서 이런 단어들을 사용해 온갖 대화들이 오고 간다. 그리고 그 대화에 몰입하다 보면, 그곳은 교도소가 아니라 프로스페로의 섬에서 벌어지는 소동으로 보이는 놀라운 기적과 함께 참을 수 없는 웃음을 선사한다. '이런 우리 어머니가 오염된 늪에서 까마귀 깃털로 털어 낸 사악한 이슬을 맞고 죽을 놈들 같으니라고.' 참으로 시의적절한 아름다운 욕이다.

 

2. 문학 독해 수업 시간

최고다. 그저 최고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다. <마녀의 씨> 본문의 1/3 이상을 차지하는 이런 토론 식의 수업이 '템페스트'에 대한 관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캐릭터와 상황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통해 하나하나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으며, 이해시키는 과정은 정말 최고의 수업시간이다. 이 수업 시간은 수감자에게도 프로스페로인 필릭스에게도 새로운 발견,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특히 요정 '아리엘'을 슈퍼 히어로로 변화시키는 방법은 최고였다. 그리고 프로스페로가 딸인 미란다와 곤잘로의 아들인 페르디난드를 결혼시키는 이유에 대한 다른 해석 등 무척 흥미로운 수업 형태로 진행된다. 나만의 해석을 구성해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3. 마녀의 씨

가장 많이 생각을 해본 질문이다. 왜 <마녀의 씨>일까? 이는 원작에 등장하는 섬의 원주민이자 프로스페로와 끊임없이 대립하는 악역 '칼리반'이다. 칼리반은 섬에 첫발을 디딘, 끔찍한 외모를 가진 '시코락스'의 아들이자, 그 또한 끔찍한 외모의 소유자이다.

 

그는 프로스페로가 딸 미란다와 함께 그 섬에 오기 전엔 섬의 왕이자 지배자 였다. 그러나 프로스페로가 가진 마법의 힘 때문에 섬을 잃고 모든 지배력을 상실한다. 칼리반은 예술을 좋아하고, 섬에 대한 애정도 진심이다. 하지만 프로스페로에 대한 복수심에 미쳐 날뛰기도 하는 복합적인 캐릭터다. 끝없이 프로스페로와 반목하지만 프로스페로의 인생 여정과 가장 비슷한 인물 또한 바로 칼리반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상하게도 프로스페로의 복수는 '정의롭지만', 칼리반의 프로프페로에 대한 복수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왜일까? '차별'이라는 단어로 규정하기엔 뭔가 모자라다.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이 책에서 칼리반은 플레처 교도소의 '수감자들'이다. 원주민이자 저주받은 피를 가지고 태어난 칼리반, <마녀의 씨>. 필릭스의 복수가 성공하도록 전면에 나섰던 그들(비록 그들은 연극의 저의를 몰랐지만)... 범죄자이지만, 흉악범은 아닌 사회에서 배척당한 칼리반들, 고상한 필릭스의 동료에겐 없던 연극에 대한 '진심'과 '열정'을 가진 그 칼리반들 말이다. 그렇다면 원작에 나타나지 않은 칼리반, 그 <마녀의 씨>는 과연 어떤 열매를 맺었을까?

 

4.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문학 독해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연극이 끝난 후 시작되는 '그 후 그들은 어떻게 되었나'라는 마지막 수업시간이다. 배역을 맡았던 수감자들은 캐릭터 각자의 <마녀의 씨>가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는데 규정화되지 않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 후의 이야기들에 필릭스는 기쁜 마음으로 모두에게 '만점'을 외친다. '예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우린 편견의 감옥에서 자유로워 진다. 셰익스피어도 자신의 작품을 '고전으로 만들 생각' 따윈 없었다.

 

●●●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의 전前 작품이었던 3권, 시간의 틈·샤일록은 내 이름·식초 아가씨는 나에게 <마녀의 씨>였다. 그만큼 읽는데 공을 들이려 노력했으나 너무도 나를 힘들게 했던 작품들... 하지만 <마녀의 씨>가 이 네 번째 작품을 통해 너무나도 화려하고 달콤한 '열매'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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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바위 - 영험한 오하쓰의 사건기록부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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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바위 ; 영험한 오하쓰의 사건기록부>는 미야베 미유키의  『미야베 월드 제2막』 , 통칭 '에도시리즈'의 실질적 주인공인 '오하쓰'가 등장하는 장편소설이다.

 

 

●●●   

 

 

산겐초의 홀아비 양초장수 '기치지'가 장례식 도중 되살아나는 '시비토쓰키(사람의 시체에 나쁜 영이 깃드는 것)' 사건이 발생했다. 취미로 기담을 모아 '미미부쿠로'를 쓰고 있는 부교 '네기시'는, 제3의 눈을 가진 소녀'오하쓰'에게 빨간도깨비 후루사와의 아들인 '우쿄노스케'를 소개하고, 둘이 함께 산겐초 사건의 내막을 밝혀달라는 부탁을 한다.

 

사건 현장인 산겐초를 향하는 도중 오하쓰는 갑작스레 영안이 열려 마루야 기름집의 기름통에 아이의 시체가 있음을 '본다.' 오빠인 로쿠조의 도움으로 시체를 발견했지만, 사건이 해결되기 전 용의자는 사망하고, 또 다른 유아 살인사건이 일어나 에도는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때마침 100년 전, '아코 사건'에 가담했던 무사가 할복한 자리에 표시석으로 놓인  바위가 밤마다 움직이는 괴이한 사건이 발생하고, 네기시는 오하쓰, 우쿄노스케와 함께 다이묘의 저택을 방문하는데...

 

 

●●●   

 

 

네기시의 '미미부쿠로'에 실린 「기이한 돌이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장편소설이다. <흔들리는 바위>는 '주신구라', 즉 우리에겐 '추신구라'로도 익숙한 '아코 사건'을 모티브로, 그 이면에 담긴 '광기'를 이야기한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주군을 위해 47명의 로닌(낭인)이 원수를 갚고 장렬한 할복으로 생을 마감한 이야기는,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 가부키 등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주신구라를 다룬 영화 몇 편을 봤는데, 볼 때마다 도무지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이란 건 '과연 누구를 위한 정신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쇼군과 동료를 위해 자신의 생명은 물론, 가족과 피붙이를 죽이고 그들의 목숨을 등에 업고 가는 행위는 그저 이기심,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저자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신구라에 새로운 상상을 더해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혼돈의 시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그의 '광기'에 동정을 해야 할지, 비난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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