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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씨 ㅣ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송은주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평점 :
<마녀의 씨>는 현대 작가들이 셰익스피어를 재해석한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이며, 원작은 『템페스트』이다.
● 원작-템페스트 ●●●
셰익스피어 로맨스극의 마지막 작품. 일반적인 설로 1611년 무렵 집필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작가관과 세계관이 두드러진 작품으로 그의 최후 걸작이라고 평가받는다.
동생 안토니오와 나폴리 왕 알론조의 음모로 추방당한 프로스페로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폭풍우Tempest를 다루는 마법의 힘을 손에 넣는다. 이를 이용해 결혼식에 참석하고 귀국하던 알론조 왕의 배를 난파시켜 자신이 머무는 섬으로 불러들인다.
조난당한 알론조는 아들인 페르디난드가 죽었다는 생각에 비통해 하고, 섬의 반대쪽에 상륙한 페르디난드는 아버지가 익사했다고 믿는다. 프로스페로의 지시로 요정 아리엘은 미란다와 페르디난드가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하지만 페르디난드의 마음에 의심을 품은 프로스페로는, 그를 시험하고 딸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동굴에 가둬버린다.
알론조 일행 앞에 모습을 드러낸 프로스페로는 그들에게 죄를 묻지만, 아들인 페르디난드가 죽었다고 생각한 알론조는 애통함으로 프로스페로에게 사죄를 한다. 이에 프로스페로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페르디난드와 미란다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앙숙 관계를 해소한다.
● 개작-마녀의 씨 ●●●
연극감독 자리를 탐내던 '토미'와 관계가 좋지 못했던 문화유산부 장관인 '샐 오낼리'의 합작으로 퇴출당한 천재적인 재능의 연출가 '필릭스'가 12년 동안 절치부심切齒腐心하여 복수를 하는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가 각색한 템페스트, <마녀의 씨>는 마치 '죽은 시인의 사회'와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섞어 놓은듯한 분위기다. 아내 '나디아'와 딸 '미란다'를 잃고 남은 것은 연극밖에 없던 그에게, 퇴출-그것도 동료의 배신으로 인한 퇴출은 엄청나게 큰 타격이었다. 시골의 한적한 집으로 숨어들어 '상상의 딸 미란다'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전부인 어느 날, 그는 복수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분연히 일어선다.
그는 자신의 <템페스트>를 되찾아야 했다. 어떻게든, 어디에서든 무대에 올려야 했다... 두 번째로, 복수하고 싶었다. 복수를 간절히 원했다. 토니와 샐은 고통을 받아야 한다. 지금 그가 겪고 있는 통탄스러운 상황은 그들이 만든 것이었다. 전부는 아니라해도 상당 부분은 그러했다. 그들은 그에게 부당한 짓을 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그런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인가?(67쪽)
그 첫걸음으로 필릭스는 그의 '섬' 플레처 교도소 문학 독해 수업 고교 과정을 맡게 되는데, 연극을 통한 셰익스피어 수업은 수감자 사이에서 의외로 큰 호응을 받게 된다. '연극'이란 매체는 필릭스와 수감자 모두에게 기적 같은 운명의 반전을 선사한다.
1. 언어의 정화
문학 독해 선생인 '듀크(필릭스)'의 수업은 언제나 대본을 읽고, 그 '대본에 등장하는 욕만'을 쓸 수 있다고 언어의 한계를 설정함으로 시작한다. 예를 들어 '템페스트' 수업시간엔 대본에 등장하는 '목매달 놈, 소란스럽고 시끄럽게 구는 놈, 마귀할멈한테서 태어난 얼룩덜룩 개새끼, 흙덩이 같은 놈' 등만 사용하도록 규정하는데, 범죄자들이 모인 곳에서 이런 단어들을 사용해 온갖 대화들이 오고 간다. 그리고 그 대화에 몰입하다 보면, 그곳은 교도소가 아니라 프로스페로의 섬에서 벌어지는 소동으로 보이는 놀라운 기적과 함께 참을 수 없는 웃음을 선사한다. '이런 우리 어머니가 오염된 늪에서 까마귀 깃털로 털어 낸 사악한 이슬을 맞고 죽을 놈들 같으니라고.' 참으로 시의적절한 아름다운 욕이다.
2. 문학 독해 수업 시간
최고다. 그저 최고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다. <마녀의 씨> 본문의 1/3 이상을 차지하는 이런 토론 식의 수업이 '템페스트'에 대한 관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캐릭터와 상황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통해 하나하나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으며, 이해시키는 과정은 정말 최고의 수업시간이다. 이 수업 시간은 수감자에게도 프로스페로인 필릭스에게도 새로운 발견,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특히 요정 '아리엘'을 슈퍼 히어로로 변화시키는 방법은 최고였다. 그리고 프로스페로가 딸인 미란다와 곤잘로의 아들인 페르디난드를 결혼시키는 이유에 대한 다른 해석 등 무척 흥미로운 수업 형태로 진행된다. 나만의 해석을 구성해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3. 마녀의 씨
가장 많이 생각을 해본 질문이다. 왜 <마녀의 씨>일까? 이는 원작에 등장하는 섬의 원주민이자 프로스페로와 끊임없이 대립하는 악역 '칼리반'이다. 칼리반은 섬에 첫발을 디딘, 끔찍한 외모를 가진 '시코락스'의 아들이자, 그 또한 끔찍한 외모의 소유자이다.
그는 프로스페로가 딸 미란다와 함께 그 섬에 오기 전엔 섬의 왕이자 지배자 였다. 그러나 프로스페로가 가진 마법의 힘 때문에 섬을 잃고 모든 지배력을 상실한다. 칼리반은 예술을 좋아하고, 섬에 대한 애정도 진심이다. 하지만 프로스페로에 대한 복수심에 미쳐 날뛰기도 하는 복합적인 캐릭터다. 끝없이 프로스페로와 반목하지만 프로스페로의 인생 여정과 가장 비슷한 인물 또한 바로 칼리반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상하게도 프로스페로의 복수는 '정의롭지만', 칼리반의 프로프페로에 대한 복수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왜일까? '차별'이라는 단어로 규정하기엔 뭔가 모자라다.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이 책에서 칼리반은 플레처 교도소의 '수감자들'이다. 원주민이자 저주받은 피를 가지고 태어난 칼리반, <마녀의 씨>. 필릭스의 복수가 성공하도록 전면에 나섰던 그들(비록 그들은 연극의 저의를 몰랐지만)... 범죄자이지만, 흉악범은 아닌 사회에서 배척당한 칼리반들, 고상한 필릭스의 동료에겐 없던 연극에 대한 '진심'과 '열정'을 가진 그 칼리반들 말이다. 그렇다면 원작에 나타나지 않은 칼리반, 그 <마녀의 씨>는 과연 어떤 열매를 맺었을까?
4.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문학 독해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연극이 끝난 후 시작되는 '그 후 그들은 어떻게 되었나'라는 마지막 수업시간이다. 배역을 맡았던 수감자들은 캐릭터 각자의 <마녀의 씨>가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는데 규정화되지 않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 후의 이야기들에 필릭스는 기쁜 마음으로 모두에게 '만점'을 외친다. '예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우린 편견의 감옥에서 자유로워 진다. 셰익스피어도 자신의 작품을 '고전으로 만들 생각' 따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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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의 전前 작품이었던 3권, 시간의 틈·샤일록은 내 이름·식초 아가씨는 나에게 <마녀의 씨>였다. 그만큼 읽는데 공을 들이려 노력했으나 너무도 나를 힘들게 했던 작품들... 하지만 <마녀의 씨>가 이 네 번째 작품을 통해 너무나도 화려하고 달콤한 '열매'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