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장난 - 2022년 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손보미 외 지음 / 문학사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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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는 대상 수상작 손보미의 '불장난'을 비롯 우수작 강화길의 '복도', 백수린의 '아주 환한 날들', 서이제의 '벽과 선을 넘는 플로우', 염승숙의 '믿음의 도약', 이장욱의 '잠수종과 독', 최은미의 '고별' 등 7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현대문학의 핀시리즈,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등 중단편은 이미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는 요즘이다. 특히 몇 해 전부터 여성 작가들의 약진이 눈부셨는데, 여성 작가들의 글은 굵직한 감은 없어도 섬세한 미장센과 다양한 장르의 믹스를 통해 새로운 시선을 보여주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서도 7명의 수상자 중 남성은 이장욱 한 명뿐이다.


문학상 작품집을 종종 읽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작가를 접하게 된다는 즐거움도 물론 있지만, 수록된 작품 중 나의 취향에 맞춰 나름의 수상작을 선정해 보는 재미도 있다. 독후 기록을 작성한 후 심사위원들의 심사평도 꼼꼼히 읽어 보곤 하는데 내가 느낀 감정과 비슷한 심사평을 발견하면 왠지 내가 심사위원이 된듯한 기분이 들어 뿌듯해지기도 한다.


2022 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읽기도 전에 기대를 갖고 있던 강화길의 <복도>와 그와는 정반대되는 다소곳한 섬세함이 느껴지는 백수린의 <아주 환한 날들>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이상한 취향인데, 나는 유난히 문학이 표현하는 '불안'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게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 이후부터가 아닐까 한다. 불안이 공포의 권력에 굴복하게 되는 그 집요한 감정이 주는 옥죄는 느낌이 나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너무 매혹적이다.


강화길의 <복도>가 그런 작품이었다. 물론 단편 소설이라는 한계 때문에 만족할 만한 집요함을 담아내진 못했어도 언젠가 작가님이,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임대 아파트 1단지 100동 101호의 그녀를 확장시켜 주길 기대한다. 그와 더불어 불안에 침식당한 그녀의 미소 또한 보고 싶다는 변태적인 욕망마저 느낀다.


백수린의 <아주 환한 날들>은 70대 여성과 앵무새의 인연을 담고 있는 이야기다. 담담한 그녀의 일상과, 회상, 햇빛 비치는 거실에서 보이는 앵무새와 함께 함에 '앎'의 과정이 다소곳한 섬세함으로 표현된다. 맨 마지막 문장의 아름다움은 엄마를 생각하게 하고, 나의 삶도 그렇게 되길 바라게 한다. 담담함 속에 거센 후유증을 담고 있는 묘한 작품이다.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 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2022 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백수린 '아주 환한 날들', 2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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