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유대인
슐로모 산드 지음, 김승완 옮김, 배철현 감수 / 사월의책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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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유대인>은 저자 슐로모 산드가 후기에 밝혔듯 오랫동안 만연해온 유대인에 대한 역사학 개념들과 그 구축과정을 비판하는 내용의 책이다. 국내 출간으로는 앞섰지만, 이 책의 후속작인 <유대인, 불쾌한 진실>을 먼저 읽은 나로서는 후자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의미 있는 책이기도 하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은 왜, 언제부터 시작되었던 걸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은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건국 선언으로 정점을 찍는다. 멀쩡히 살아왔고, 살고 있는 자기네 땅에 어디서 굴러들어 온 지도 모를 돌이 플래그를 세운 꼴이니 말이다. 건국 선언을 하기 전까지 공식적으로 유대인에게 '돌아가야 할 땅(그것도 자기네들이 정한)'은 있었지만, '돌아갈 수 있는 국가'는 없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교 역사학 교수인 슐로모 산드는 분쟁의 기원을 제일 먼저 '이데올로기'에서 찾는다. 처음 그가 들려주는 몇몇 지인과 가족의 짦은 이야기에서 우리는 유대인의 '종족주의'와 '종교 공동체'라는 특이한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디아스포라 이후 전 세계에 퍼져 살게 된 유대인들은 소수 민족의 동지적 감상으로 자신들만의 종교 공동체를 확립했다. 유대인들은 주로 전문직에 종사하며 벌어들인 경제적 이익을 자신들의 '종교 공동체' 안에서만 소비했는데, 이것은 경제적 불황을 겪는 유럽인들에게 반발을 불러오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남들이 자신들을 차별한다며 '우리끼리'라는 신념으로 뭉친 그들이 오히려 역차별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는 사실은 아이러니 하다.


민족주의라는 안성맞춤의 이데올로기를 찾은 유대인들은 이제 '약속의 땅'에 플래그를 세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것은 '모세의 종교' 뿐이었다. 종교 안에서 역사를 찾는 그 원대한 과업은 역사학자들의 피, 땀, 눈물로 '신화역사'라는 괴상한 장르를 만들어냈고, 무사히 실제 역사 안에 안착하게 된다.


제3장 너무 많은 유대인 편은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은 챕터로, 슐로모 산드의 목숨이 붙어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위험한 발언이 가득 담겨있다. 흩어진 유대인이 어떻게 자신의 종족을 보존했는가에 대해 '개종'이라는 위험한 해답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앞서도 유대인에 대한 신화는 조작되었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유대인과 가열차게 반목 중인 이슬람인과의 상호 개종을 언급한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조마조마 해진다.


이제 역사적으로도 도덕적 정당성을 획득한 '성서신화'는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 유전학, 인류학 하다못해 골상학까지 들이밀며. '우리는 너네와 달라'를 줄기차게 주장했다. 슐로모 산드의 <만들어진 유대인>을 읽고 있자니 운명의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줄기차게 내세웠던 역사, 종교, 과학적 증거들 모두가 결국 그들을 해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내가 보기엔 유대교나 이슬람교 모두 종교 근본주의에 빠져 불필요한 소모전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왜 싸우는지도 모르고, 싸워왔으니까 싸우고, 앞으로도 계속 싸울 것이다'라는 심정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초기 시오니스트들이 주창했던 대로 '시민적 민족주의'는 지금의 그들에게 가능할까? 아니면 그들이 화해하기에는 이미 너무 먼 길을 와 버린 걸까?


이스라엘 정체성 정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조치들 하나하나의 배후에는 영원한 민중과 인종이라는 개념이 길고 검게 드리운 그림자처럼 도사리고 있다. (505p)


참고로 본문을 읽기 전 감수를 맡은 배철현 교수의 <감수의 글> '나는 누구인가?'를 먼저 읽고 시작하기를 권한다. 종교학, 언어학의 권위자인 배철현 교수의 글은 <만들어진 유대인>을 위한 전초기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데, 특히 유대인들에게 왜 '신화'가 필요했는가를 설명한 글은 책의 도입부에서 읽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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