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유대인
슐로모 산드 지음, 김승완 옮김, 배철현 감수 / 사월의책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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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 <매트릭스: 레저렉션>을 보았다. 4편을 보고 나니 문득 잊고있던 그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만들어진 유대인>을 읽고 있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영화는 매트릭스라는 견고한 틀 안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에 추호의 의심도 갖지 않고 생활하는 가상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토머스 앤더슨(이름도 어찌나 흔한지)도 '네오'가 되기 전엔 그저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니 어찌나 '유대인의 서사'를 떠올리게 하든지... 일단 한 번 그런 쪽으로 받아들여지다 보니 도무지 방향 수정이 잘 안됐다. 그래서 4편도 역시 유대인 서사의 연속성으로 볼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이 책과 연관 지어 기록해 두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매트릭스>에는 자신이 가상 인간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세계가 현실이고, 그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평범한 시민들 말이다. 하지만 그중 모르피어스와 트리니티를 비롯해 일찍이 매트릭스의 정체를 알게 된 소수의 '반항군'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인간들을 무지몽매에서 깨어나게 하기 위해 수십 년째 구세주 '네오'를 찾고 있다. 그리고 시스템에는 스미스처럼 지독하리만큼 그들을 추적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내던지는 자도 있고(4편의 스미스는 상당히 독특한 캐릭터로 변화하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오라클처럼 그들을 도우려는 매트릭스 내부자도 있다. 자, 우선은 여기까지. 이제 이 부분을 대입해 보자.


매트릭스는 세계다. 그리고 매트릭스의 안락함에서 추방당해 멸망한 지구를 떠도는 모르피어스 일행은 디아스포라를 겪은 유대인이다. (시온에 살면서) 모르피어스 일행을 괴롭히는 망명자들은 팔레스타인 아랍인이다. 그리고 모르피어스 일행의 최종 목표는 인류의 마지막 도시 '시온(자이온)'을 지키는 것이다. 아마 여기까지만 설명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금방 눈치챌 것이다.


<만들어진 유대인>의 제1장 민족 만들기에는 모르피어스 일행(유대인)이 매트릭스를 파괴하고 시온으로의 회귀가 어떻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관해 참고할 만한 이데올로기에 관한 글들이 담겨 있다. 저자인 슐로모 산드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므로 '제우스'인 시오니스트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읽으면 읽을 수록 슐로모 산드의 후속작을 과연 읽을 수 있을 것인가 걱정이 앞선다.


어떤 계급이 오래도록 통제력을 유지하려면 눈에 보이는 권력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윤리적이고 법적인 규범들을 생산할 필요가 있다. 이럴 때 식자층이 나서서 계급 구조를 받쳐주는 헤게모니에 대한 옹호 논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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