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아편 세창클래식 14
레몽 아롱 지음, 변광배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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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레몽 아롱(1905-1983)은 사르트르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철학자이자 정치사상적인 면에서는 양 끝에 위치했던 유명한 학자라고 한다. 책의 제목에 대해서도 잠시 말해보자면, 마르크스가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라고 말한 것에 대해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는) 지식인의 아편'이라 빗대어 지은 것이라 한다. 


<지식인의 아편>은 '공산주의는 어떻게 이데올로기의 광신도를 만들어 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정치, 역사, 지식인들의 삶 속에 침투하여 스스로 종교가 된 사상에 대한 비판이며, 또한 이러한 사상을 올바른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광신적 좌파에 대한 비판이다. 


마르크스주의가 등장하기 전, 18세기 대혁명의 여파로 프랑스는 혼란스러웠다. 정책은 정권을 잡는 자에 따라 부화뇌동하고, 귀족과 대지주에 대항하며 혁명을 일으킨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야만 했다. 하지만 사상적 기반이 불충분했던 그들이 택한 것은 결국 '공포'와 대항하여 파괴하고자 했던 '계급의 구분'이었다. 


산업 혁명 후, 대혁명의 원인이 되었던 농민-귀족계급은 노동자-고용주라는 새로운 불평등의 관계로 재정비되었다. 그들이 그토록 외치던 계급의 평등과 소득의 분배는 100여 년이 지난 후에도 요원한 일이었던 것이다. 노동자라는 새로운 계급은 100년 전 농민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노예에 맞먹을 정도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그런 혼란의 와중에 '노동자들의 지상낙원'을 약속한 마르크스주의가 등장했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는 어떻게 이데올로기를 넘어 종교에 가까운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을까? 종교에 내포된 '예언'은 주로 현재의 상황을 비판하고, 이 상황으로 벌어질 미래를 보여주고, 선택된 개인이나 집단이 빛나는 미래를 약속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천년지복설을 가져올 구세주로 스스로 신이 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정작 '진정한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단지 신도화된 인텔리겐치아만이 있었다. 


인텔리겐치아는 자신들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또 다른 폭력과 공포를 선택했다. 이 교조주의를 포기하지 않은 한 '진정한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한 '진정한 좌파'는 없을 것이다. 


레몽 아롱은 서문에서 이 책을 통해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할 것이라 밝힌다. 그중 나 또한 진정으로 알고 싶었던 것은 '경제 발전이 마르크스의 예언을 뒤엎은 나라인 프랑스에서 대체 어떤 이유로 마르크스주의가 유행하는가?'에 대한 답이었다. 지금의 러시아나 독재국가, 공산국가들의 상황을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될 때면,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세력이 아직도 존재하며, 덜떨어진 주장을 펼칠 때마다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아편>은 레몽 아롱의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마르크스주의보다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닐까 싶다. 여러 나라로 이뤄진 유럽 대륙의 특성과 공산주의를 직접 겪어 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솔직히 무리였지만, 공산주의가 종교화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제3부 지식인들의 소외편은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고, 공산주의도, 모든 이데올로기도 그때와는 다를 것이다. 또한 같은 이데올로기라도 국가와 민족에 따라 지향점은 분명히 다르다. 어떠한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고, 그에 따른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우리는 그들처럼 자신의 무오류성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보편성이 결여된 이데올로기는 우리에게도 아편이나 다름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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