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 거짓과 혐오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
미치코 가쿠타니 지음, 김영선 옮김 / 돌베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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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거짓과 혐오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는 '독설의 서평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직설적 평론의 대가, 미치코 가쿠타니의 국내 첫 출판작 입니다. 이 책을 조금이나마 쉽게(?) 읽기 위해서는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에 대해 간략하게 집고 넘어가야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19세기 중엽-20세기 초중반, 즉 산업혁명 이후부터 냉전질서까지의 시기인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사조입니다. 모더니즘이 산업혁명의 여파로 '이성/식민지/제국주의/물질주의/도시화'로 대표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이성 중심에 대한 '회의'를 내포한 사상적 경향을 의미합니다.

 

특히 문화적인 면에서는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에서도​ '해체'로 표현될 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2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겪으며 '합리성은 옳은가'에서 시작되어 '이성 자체가 문제가 있으며 그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라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트럼프 대통령 정부에 대한 혹평으로 가득합니다. 이렇게 쓰다가 정보국에 잡혀가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요. 그리고 그 이면에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급진적 포스트모더니스트에 대한 비난은 포스트모더니즘 자체에 대한 회의가 짙게 깔려있기도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거대 서사를 거부할뿐더러 언어의 불안정성을 강조했다.(51쪽)

 

과학을 등한시하고,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자들에 대한 특혜(법을 바꾸고, 장관 임명에 사사로운 관계가 개입될 정도로), 가짜 뉴스의 유포 등 '이게 한 나라, 아니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대통령이 이런단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트럼프는 감정을 앞세우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과학은 호전적이고 친기업적인 우파 권력기구의 한 부문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것은 오염을 일으키고, 동정심이 없으며, 탐욕스럽고, 기계론을 따르는 데다, 성차별에 인종차별을 하며, 제국주의에 동조하고, 동성애 공포증을 갖고 있으며, 억압적이고 편협하다. 우리의 정신, 몸, 또는 대지의 영적이거나 총체적 안녕에는 신경 쓰지 않는 비정한 이념이 된 것이다.(49쪽/숀 오토 『과학 전쟁』에서 인용)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조가 팽창하면서 '나의 시대(by 톰 울프)'와 '나르시시즘의 문화(by 크리스토퍼 래시)'가 들불처럼 일어나 '전체'는 해체되고, '개인'이 중시되는 '방어의 시대', 자기 상황에 따라 재산의 총액이 달라진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대통령, 본인이 믿는 것만을 믿으며, 근시안적인 자아 추구에 치중하는 나라, 최고 권위자가 나서서 사람들의 두려움에 호소하는 거짓말을 생산해 내는 나라, 『멋진 신세계』가 실현되어 가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해 미치코 가쿠타니는 끝없는 독설을 쏟아냅니다.

 

사고의 저장탑(사일로 효과)에 갇혀 주위를 둘러보지 않은 채 '내가 믿는 것만'이 '진실'이 되는 작금의 상황 앞에,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과도한 포퓰리즘에 의해 결국 제국의 멸망을 불러온 고대 로마를 생각나게 합니다. 보편성이 사라지고, 언어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 '1984년의 멋진 신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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