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섹슈얼리티의 위계 - 누구도 페니스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계정민 지음 / 소나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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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섹슈얼리티의 위계>는 영문학을 전공한 저자의 '범죄소설의 계보학-탐정은 왜 귀족적인 백인 남성인가'에 이은 두 번째 저서입니다. ​ 저자 계정민 교수는 2005년에 쓴 논문을 바탕으로 이 글을 썼다고 하는데요,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 문학 속에 담겨 있는 남성섹슈얼리티에 대한 역사와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남성 생식기의 소유자에게 주어졌던 젠더적 특권에서 제외된, 남성집단에서 비정상적이고 부적합하다고 평가된 섹슈얼리티를 지닌 남성 하위등급을 조명하며, 사회적으로 특히 영미 문학을 통해 그들에 대한 위계 인식의 역사를 말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계정민 교수가 말하는 남성 섹슈얼리티의 위계는 규범적/지배적·패권적/특권그룹으로 규정되며, 성인/이성애자/가부장/비장애남성의 속성을 가진 '상위등급'과 주변적/종속적/비규범적/동성애자/독신남성/소년/장애남성의 속성을 가진 '하위등급'으로 구분 지어진다고 합니다. 이러한 위계질서는 산업혁명의 시대에 '생산'의 기능이 없는 남자의 성적 에너지는 자본주의적 가치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어 배제되거나 부인되는(22쪽) 상황에서 규정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소년과 독신남성의 비생산성은 충분히 교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남성 동성애자는 사회적 협상의 가능성이 '근원적으로' 봉쇄된 계층이라 교정의 가능성조차 없는 부류로 취급되었는데요, 이로 인해 그들은 국가 내란죄와 맞먹는 형벌을 감수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들에 대한 처벌이 정점에 다다랐던 18-19세기의 영국은 프랑스에서 동성애에 대한 변화의 기미가 보이자 '프랑스식 부도덕'의 극치라며 동성애에 대해 더욱 빗장을 걸어 잠그기도(129쪽) 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문학에서 장애남성을 그린 3부 장애남성 중 '훼손된 남성섹슈얼리티는 어떻게 치유되는가-『제인 에어』'였습니다. 『제인 에어』는 읽어 보신 분이라면 누구나 로맨스의 정석 중 하나로 꼽는 작품이고, 저 또한 그 책을 읽고 가슴 설레며 로맨스를 꿈꿨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인 에어』는 서술부터 파격적이었다고 하는데요, '나(I)'가 화자인 1인칭 시점의 소설은 요즘은 흔한 일이지만, 샬롯 브론테의 19세기에는 '나=죄인(sinner)'라는 의미가 있어, 참회록이나 고백록을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않는(215쪽) 시기였다고 합니다. 그런 시기에 '나=제인'이라는 공식의 소설이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는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예쁘지도, 여성스럽지도 않은 전형성을 탈피한 제인이라는 여자 주인공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고, 성격조차 나쁜 로체스터가 '장애남성'이 된 후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에서, 계정민 교수는 '공정한 세상 이론'에 의해 장애 남성이 된(천벌) 로체스터가 제인에 의해 구원을 받고, 그들 사이의 첫아이 출산은 그가 드디어 '상위 등급'으로 인정받았음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즉 가부장의 위치로 재배치된 그에게 마침내 성적 시민권이 부여(241쪽) 되었다고 보는 거죠. 

 

이렇듯 <남성섹슈얼리티의 위계-누구도 페니스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남성성의 위계를 통해 차별과 배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모두 조금씩 불편해지고 조심하는 삶이 문명이고 진보라고 책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문득 우린 남성의 성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졌었나 되돌아보게 됩니다. 페미니즘에 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커졌는데, 정작 가부장 사회의 지배층에 속한 남성에 관해서 깃발을 세우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 아마 남성의 권리 주장 운운했다가는 뼈도 못 추릴지 모르지만요.

 

하지만 남성과 여성은 다를 뿐, 틀리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보면 어떤 면에서 남성도 참 가엾기도 하고 그래요. 이건 누가 더 불쌍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문제라고 보이니까요. <남성섹슈얼리티의 위계>를 통해 남성성의 역사에 대해서도 접하게 되었는데요, 이를 시작으로 모두가 조금만 서로 보듬어 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성섹슈얼리티에 대한 긴 이야기를 마칠 시간이다. 모두가 조금씩 불편해지고 조심하는 삶이 문명이고 진보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다. 누군가는 확신에 차서 무례하고 난폭한 말을 큰 소리로 외치고, 다른 누군가는 위축되고 침묵해야 한다면, 그것은 원색적인 야만이고 퇴행이다. 소년이 침묵하고, 동성애자가 두려워하고, 장애남성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곳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끔찍한 미래다. 이미 충분히 힘들고 슬픈 이들이 많다. 더할 필요는 없다.(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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