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황교익 지음 / 지식너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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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황교익 / 출판: 지식너머 / 구성: 전 1권·332쪽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들이 우리를 '어떻게' 길들여 왔으며, 우리를 '길들인' 이면에 어떠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작용했는지에 대한 위험한, 그리고 도발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의 칼럼이 가득 들어차 있는 책입니다. ​ ​『당신의 미각을 믿지 마세요.』 이 말은 저자인 황교익이 처음으로 했던 대중 강연의 제목이었다고 하는데요, 소위 '관성화된 미각 흔들기'에 집중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죠.  

 

음식을 문화라고 하는 까닭은 한 집단의 기호 음식에 그 집단 구성원의 정체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22쪽) ​

 

음식이라는 것은 한 나라의 기후에 맞게 발전해 왔기에 '생존'이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요인을 담고 있을 텐데요, 거기에 조리를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더해져 태도와 맛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좁은 땅이라고 해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뚜렷한 사계절을 가지고 있고,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상 평지와 산, 바다에서 나는 여러 종류의 풍부한 식재료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식문화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인이 치킨을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인 개개인이 저마다의 독립된 기호를 바탕으로 치킨 맛을 판단한 결과이고, 그 낱낱의 기호가 집합을 이루어 '한국인은 치킨을 좋아한다'라는 집단의 기호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참으로 순박한 일이다. 집단이 처해 있는 먹을거리 확보 사정이 개개인의 기호를 결정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인간 집단이 어떤 음식을 맛있다고 생각할 것인지 판단하는데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 중 하나가 '집단의 구성원에게 넉넉하게 주어질 수 있는 음식인가' 하는 것이다... '많이 주어진'이라는 조건은 그 집단이 처한 자연과 사회·경제적 여건 등에 의해 결정된다.(27-28쪽)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를 읽다 보면, 그동안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었던 음식문화에 대해 생각지도 못한 반론을 제시하는 황교익 저자의 생각이 놀랍기도 하지만 불편하게 다가오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초반에 '떡볶이'와 '치킨', '유기농'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했음을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마치 프로야구가 군사정권 시대의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었다는 이야기가 새삼스레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나의 '쓴소리'가 향하는 궁극적인 지점은 대중이 아니다. 대중의 귀에 크게 들릴 뿐이다. 한국인이 먹는 음식의 질과 양을 결정하는 자본과 정치권력, 언론이 내 '쓴소리의 과녁이다.(33쪽)

 

​저자가 밝힌 대로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는 단순한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속에 내포된 정치·경제적 논리가 어떻게 우리의 '입맛을 유린해 왔는가'에 대한 심도 있는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우린 먹방과 쿡방, 하다못해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자율 감각 쾌락 반응-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에 중독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중독-네, 맞아요. 중독이네요-과도 같은 음식에 대한 집착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왜 우리는 타인의 먹는 모습에 열광하며 넋을 놓고 보게 되는 걸까요? 왜 마주하고 같이 먹는 사람이 쩝쩝거리는 소리는 비난하면서, ASMR는 일부러 찾아서 보게 되는 걸까요?

 

그 옛날 임금님께 '진상'되었다는 향토 특산물은 사실상 공물이었고, 세금이었으며 그로 인해 정작 그 수확을 누려야 할 당사자는 누리지 못했다는 사실, 향토 특산물의 유래가 그다지 좋은 이유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나, 여러 음식에 대한 역사 등은 참으로 불편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1970년대 철강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지금의 스뎅 밥그릇이 '규격화'되어 우리가 밥을 먹는 '양'마저도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고 하니 어쩐지 서글픈 생각마저 듭니다. 그리고 머릿속이 혼란해집니다. 우리가 먹고 마셔왔고, '맛있다'라고 느꼈던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라고 하는 저자의 주장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오늘 저녁에 먹은 된장찌개는 정말 '맛있던'걸까요, 아니면 '맛있다고 생각하도록 길들여진' 걸까요?

 

맛 칼럼니스트가 왜 정치·경제·역사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읊어대냐고요? 원래 그런 직업이니까요. 누가 그렇게 정했느냐고요? 내가요. 맛 칼럼니스트는 내가 처음이고 그러니 내가 그러면 그런 일을 하는 게 맛 칼럼니스트 맞습니다. 내가 만든 내 직업에 딴지 걸지 마세요. 대한민국에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으며, 나도 댁들의 직업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할 생각은 없습니다.(292쪽)

 

​붉은 달의 바람그늘

https://blog.naver.com/kaketz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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