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자 1 - 20세기의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때 한국근대사에 흥미를 느꼈다. 사학과에 진학한 이유도 한국근대사, 특히 독립운동사를 깊이 공부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며 더욱 관심이 갔던 부분은 1920년대 공산주의 운동사였다. 주로 박헌영, 김산(장지락)의 행적을 좇았고,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상해파 고려공산당, 조선공산당의 활동을 더듬어 갔다. 그러면서 함께 분노하고 슬퍼하고 기뻐했다. 비록 중국현대사로 전공을 바꾸긴 했지만, 여전히 공부하고 기억해야 할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나는 자만하기도 했다. 한국근대사, 특히 독립운동사는 줄줄 꿰고 있다고. 착각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부끄러웠다.

   『세여자』의 주인공은 총 6명이다.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를 주축으로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 등 6명의 혁명 활동이 줄거리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인물들이다. 아마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경쟁, 체제 경쟁에 따라 공산주의 활동을 한 인물들은 주목되지 않거나, 심지어 매도되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1920년대 공산주의 운동은 이데올로기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당시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독립운동의 한 방법으로 받아들인 사상이지 결코 소위 ‘적화’나 전복을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이 책은 6명의 이야기를 통해 혁명가들의 독립에 대한 열정과 애국심을 잘 드러내고 있다.

   『세여자』는 소설이지만 역사서이기도 하다. 책에 나오는 인물, 사건, 상황 들은 전부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한다. 그 사이사이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엮어냈다. 사실 역사학이라는 게 원래 사료 파편들을 상상, 추론 등을 통해 논리적으로 엮어내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좋은 역사서로 보아도 무방하다.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한테도 쉽게 읽히고, 주인공들과 함께 분노하고 좌절하기도 했다.

   당시 자신 한 몸을 바쳐 조국의 독립을 이루고자 했던 많은 의사, 열사, 혁명가가 그렇듯 이들도 조국의 운명처럼 고난의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나라를 빼앗긴 결과는 비참했다. 어디 한 곳 맘 편하게 다리 뻗고 잘 곳이 없는 현실. 그들은 조선에도, 일본에도, 중국에도, 소련에도 편안히 살 수 없었다. 어딜 가나 이방인이었다. 다들 필요에 의해 이용당하고, 그 뒤에 남은 것은 간첩으로 몰려 총살당하거나, 추방되거나, 체념하는 것뿐이었다. 대부분의 조선인 혁명가들이 간첩으로 몰려 총살당했다. 김단야는 소련에서, 김산은 중국에서... 그러다 꿈에서나 상상했던 해방을 ‘갑작스럽게’ 맞았다. 그렇지만 환희로 떠들썩해야 할 해방공간에서도 이들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일본이 빠져 나간 자리에 이번에는 미국과 소련이 지도 위에 마음대로 선을 긋고 땅을 나눠먹었다. 그 결과는 무시무시한 체제 경쟁이었다. 어지러운 사회 속에서 해방된 조국을 찾아 왔던 이들은 다시 한번 혼란의 시기를 겪는다. 『세여자』는 1956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정확히는 1955년 주체사상의 등장과 1958년 연안파의 숙청까지다. 왜 해방까지도 아니고, 남북한 모두 단독정부가 수립될 때까지도 아니고 1956년일까. 그 해답은 작가의 말에 있었다. 작가는 순수한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이 주체사상의 등장과 함께 끝났다고 보았다. 주체사상은 김씨 일가를 위한, 김씨 일가에 의한, 김씨 일가의 사상이지 결코 혁명가들이 꿈꾸었던 사상이 아니었다.

   한국근현대사의 혼란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슬퍼하고 분노하고 공감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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