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가끔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자지 않고 있다가, 아침을 먹는 나를 보며 커피를 마셨다. 화장을 지우면 엄마의 눈은 한결 작고 움푹해졌다. 누르뎅뎅한 피부에 얇게 썬 오이를 붙여놓을 때도 있었다. 의자에 한쪽 무릎을 세운 칠칠치 못한 꼴로 앉아 아침을 준비하는 나의 잰 솜씨를 칭찬했다.  

"매일 재미나게 지내고 있어?"

불쑥 그렇게 묻기도 했다.

"응."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뼛거리며 수영에서 3급을 땄다는 등의 보고를 했다. 엄마는 대개 좋아하는 목욕 가운을 입고 있었다. 본인 말로 그 목욕 가운은 '브리짓 바르도 스타일'이라는데, 길이가 짧고 하얀 바탕에 화려한 꽃무늬가 있는 것이었다.

"걱정할 거 없어."

뜬금없이 그런 말을 하기도 했다. -p124

 

 

삼촌이 처음 신붓감을 우리 집에 데리고 왔을 때, 엄마와 나는 거의 알몸에 가까운 꼴이었다. 무더운 날이었다. 속치마 바람으로, 집에서 가장 시원한 부엌 바닥에 누워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두 다리를 약간 들어 발바닥을 냉장고 문에 대고서.

부엌은 어둡고 서늘했다. 나는 싱크대 너머에 있는 조그만 창문을 보고 있었다. 열린 창문 너머로 초록이 짙은 나무가 보였다. 나뭇가지와 이파리, 살살 부는 바람. 한낮의 고요한 공기.

"안녕."

삼촌은 여느 때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곧장 집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 신이치 삼촌 왔어."

내가 말하자 엄마는 나른하다는 듯 팔을 천천히 들어 올려 햇살을 가리는 것처럼 눈 위에 턱 올려놓고, 그런가 보네, 하고 말했다. 나와 엄마는 발을 냉장고에 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 -p126

 

 

지난 여름 아플 적에 부교감 신경의 항진을 위해(쓰고 나니 웃기네)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단편집.

6~7편의 글 중 5~6편의 글이 구리거나 이 아줌마 또 시작이네, 싶지만

반드시 한 편만은 마음에 쏙 들어

버릴 수도 완전히 맘 놓고 좋아할 수도 없는 에쿠니 가오리.

눈으로 읽는 것보다 누가 자장가처럼 조용히 읽어주는 게 더 어울리는 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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