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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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이런 책은 없었다. 이것은 시집인가, 산문집인가! ‘시가 있는 산문집’이라는 글을 보자마자 이 대사가 바로 떠올랐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정호승 시인이다.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본 시인인데 나는 우리 학교에 강연 오셨을 때도 뵌 적 있었다. 나는 시 읽기를 참 어려워한다. 물론 좋아하긴 하지만 내 머리로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시들이 많기 때문에 시보다는 글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단순한 시집도 아니고 단순한 산문집도 아닌 ‘시가 있는 산문집’이라고 해서 어떤 구성으로 되어 있을지 궁금했다. 우선 책 두께만 보더라도 시집 보다는 산문집에 더 가까워 보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 읽기를 힘들어하는 나에겐 시 참고서, 시 설명서와 같은 책이어서 좋았다. 시 한편이 먼저 나오고 그 뒤에는 시를 쓰게 된 배경이나 시에 담긴 의미들이 나온다. 그래서 시인이 어떤 생각으로 시의 소재를 잡고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써내려갔는지 알 수 있다. 순서가 시를 읽고 뒤에 시에 대한 글이 이어지다 보니 시를 읽은 순수한 나의 감상을 먼저 느끼고 이 시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알 수 있어서 시를 더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아마 책 제목도 그렇고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신 것 같다. 나는 처음 시 ‘수선화에게’를 읽었을 때 이 시가 작가가 홀로 고독하게 핀 수선화를 보고 사람의 삶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외로움이라는 소재를 먼저 잡고 외로움에 색이 있다면 아마 수선화같은 연한 노란색일 것 같아서 제목을 그렇게 정했다니! 이 책이 아니었으면 평생 몰랐을 사실이었다. 읽어나갈수록 계속 놀랐던 것 같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요약을 잘 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장편 소설보단 단편 소설, 단편 소설보다는 시를 쓰는 사람이 더 대단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한 번 들은 적 있다. 어렸을 때는 시 쓰는 걸 좋아해 아무 주제나 잡고 내 마음가는 대로 시를 쓴 적이 있었다. 점점 커가면서 내가 쓴 글이 부끄러워지고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과 비교했을 때 내 시가 너무 형편없이 느껴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잘 안 쓰게 됐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계속 썼으면 어땠을까싶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시는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시를 쓸 때는 학생 때 배웠던 비유법, 반어법, 역설법 등과 같은 많은 표현들을 녹아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랬기 때문에 가볍게 쓰던 시에 무게를 느끼게 되고 어려워서 점차 쓰지 않았다. 강연 질의응답 시간에 이런 질문을 한 적 있다. “작가님께서는 우리가 배우고 있고 시험을 치기 위해선 외워야 하는 표현방법들을 다 염두에 두고 쓰시나요?” 작가님은 웃으며 아마 그걸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시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 대답하셨다. 그리고 그 표현 방법에 얽매이지 않고 시를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 책이 그 때 들었던 강연의 연장선인 것 같아 더 반가웠다. 시는 어렵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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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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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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