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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여름 - 태양, 입맞춤, 압생트 향… 청년 카뮈의 찬란한 감성
알베르 카뮈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8월
평점 :
<결혼, 여름>을 대학생 때 이후로 처음으로 펼쳤다. 거의 7년 만이라서 지금은 이 글을 보고 설렐지 궁금했다. <이방인>과 <전락>의 건조하고도 투명한 문체, <페스트>의 추리소설에 가까운 긴장감이 넘치는 문체도 매력이 있지만, 내가 정작 카뮈의 세계에 매력을 느낀 문체는 이 책의 문체다. 자연에 대한 감각적인 묘사가 과잉이라 부르기에도 과한, 책 너머로 넘쳐서 흐르는 듯한 <결혼>의 묘사가 특히 그러하다. 후각에 집중된 카뮈의 묘사는 압생트 향으로 시작한다. 이윽고 아랍인이 파는 오렌지 꽃향 아이스티 등으로 이어진다. 카뮈의 오색찬란한 묘사는 카뮈가 중간중간에 드러내는 실존적인 인식이 없이도, 이 사람이 어떻게 생을 감각하고 있는지가 선명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여름>을 쓸 동안에 카뮈는 조금 진지해졌나보다. 신화와 관념 등에 대한 묘사가 한껏 늘기 시작했다. 인생론이 감각 묘사를 대신한다. 다만 카뮈 본인도 <티파사에 되돌아오다>에서 고백하듯 살아간다는 감각이 변한다는 것마저 그의 사유의 일부가 아닐까 싶다. 까뮈를 한 편의 영화라고 할 때 <결혼>은 <이방인>부터 <시지프 신화>까지의 초기 카뮈의 티저라면 <여름>은 그 이후의 카뮈의 사상을 담은 티저라고 할 수 있다. 보는 동안에 한 사람의 인생을 다 훑은 느낌이었다. 덮고 난 뒤에 살짝 남은 씁쓰름함이란 이런 것일까. 일단 믿고 보는 번역자 중 한 분인 장소미 선생님이니 번역에 대한 의심은 제쳐두어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