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백민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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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마들렌의 영매술

-백민석 작가의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을 읽으며

 

망각은 삶을 미화하는 방법 중 하나다. 시간은 이 순간이라 칭하는 순간마저도 과거로 만들고,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과거를 망각한다. 그 순간 과거는 신화로 만들어진다. 망각을 통해 어렴풋한 원형만 남은 과거는 끝없이 가공되면서 그 자체를 미화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를 살기 위해 과거를 미화시키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문학 또한 현재에 맞서서 잊혀진 과거를 구원하는 방법론 중 하나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이를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는 장면으로 구체화했다. 그는 그 감촉을 통해 과거의 바다로 뛰어들어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는다. 반면 백민석의 방법론은 이와 대척점에 서있다. <장원의 심부름꾼>의 소설 주인공들은 대체로 과거를 찾으려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들 또한 각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계기로 과거의 바다에 뛰어들지만 그들은 가치를 찾지 못하고 상실해버린다.

백민석의 소설은 부패한 마들렌을 먹는 행위다. 프루스트에게 마들렌이 과거를 되찾게 만드는 계기였다면, 백민석의 장원은 자신을 어두운 과거를 되찾게 만든다. ‘마들렌의 느낌과 외형은 그대로 지니고 있지만, 맛 자체가 다른 매개체이다. 그는 과거를 통한 현재를 미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과거를 통해 피폐해져버린 자신의 원형을 찾아나서는 과정을 내세운다. 그의 소설은 모든 가식을 뚫고 자신과 현실을 직시하는 추잡한 날엉덩이의 미학(이 친구를 보라)”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그에게 아름다운 과거는 가식에 불과하며, “무슨 수수께끼가 이렇게 많은 걸까(구름들의 정류장)”라는 문제의식을 가진다. 그의 소설은 미화라는 허상으로 가득 찬 현재를 파괴함으로 의식의 어두운 한 편에 닻을 내린다. 그의 단편에서는 일그러진 기억이 유령과 장원, 낯선 아이, 극장, 작은 구멍 등등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환기되어 나타난다. 주인공들은 저마다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는데, 이는 대부분 태생적 결핍 때문에 욕망에 다다르지 못한 자들이 내는 흐느낌이다. 이 슬픔의 근원이 장원에서 드러나는 가난(혹은 이로부터 파생된 계급)이든, 인정받지 못하는 욕구이든, 주인공들은 그 욕망의 실체를 알아냄으로 좌절한다. 그래서 결국 문학이란 실패담에 불과하다는 불쾌한 진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백민석은 이러한 작업을 통해 상처로 가득한 유년을 드러낸다. 그의 소설을 읽는 행위는 고통스럽고도 슬픈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유년의 이름들을 쉽게 명명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알파벳을 붙임으로 그들의 원래 이름을 지운다. 기표를 삭제해버림으로 일부러 그들을 망각한다. 우리 또한 기억 저편에 잊힌 누군가를 기억할 때 그 이름은 기억하지만, 그 사람 자체를 기억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온전한 타자이다. 그의 소설은 우리 안의 내재된 타자를 찾아나서는 과정이며, 자기 자신을 아름다운 주체로 포장하려는 망각을 거부한다. 그의 소설은 자신의 미적 가치를 포기함으로 자기 안에 내제된 어두운 타자를 스스로 인정하는 과정이다.

그의 소설이 출간된 이후로 한국 문학에서 여전히 독보적인 것은 한국 문단을 넘어서는 상상력 때문이다. 카프카와 이청준을 이어받은 기묘한 일에서의 얻은 통찰,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의식 소설, 포스트모던에 기반을 둔 메타-픽션들을 넘어서 진정한 소설적 성취를 이뤄냈다. 그 동안 소설들이 거대 이데올로기의 산물이었다면 그는 진정한 개인을 찾아냈다. 그는 장원이란 부패한 마들렌을 통해 과거의 악함을 발견하는 새로운 망각술을 창조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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