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둥이 완전 정복
마크 사버스 지음, 권경희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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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도 바람난다'라는 말을 접했다.  결혼전에 불타는 연애감정이 사라지는 이유란 무엇일까. 특히, 순정남이 바람둥이가 되어버리는 이유는 더 궁금하다. 얼핏 결혼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일리 있는 생각이다. 제도에 얽혀, 자유롭게 연애하며 이상하던 짝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결정타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부부 생활에도 연애 시절만큼이나, 이상이 있을 것이다. 그 이상, 즉 믿음이 흔들려서 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하게 되었다.  책의 주인공은 순정남이었다. 그런 그가 결혼과 동시에 바람둥이로 전락한 이유를 한 성인의 요절복통 웃음 성장 과정을 통해 밝힌다. 이 소설은 어른의 내면 성장기로 일축된다.

 

주인공,해리는 방사선과 의사다. 진료차 우연히 만난 아내, 안나는 완벽한 결혼 생활을 안겨 줄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도 둘은 상대의 내면을 향한 사랑을 키웠고 결혼에 골인했다. 그런데, 1년 후 사돈의 집에 인사차 방문하면서부터 순정남 해리는 이른바, 해리-Land에 안착게 된다. 해리 랜드는 어딘가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 해리 자신의 세계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요상한 사고의 순환, 즉 해리 우로보로스(P10) 내면에서 막무가내로 돌출하는 순간들이다. 순정남이 자제가 안 되는 공간에 갇혀 버린 것이다.

 

해리의 경우, 바람은 내,외적으로 일었다. 하나는 결혼 전에 없던 아내의 외모 지적에서 생겼다. 겉으로는 허리에 타이어를 두른 중년 남성의 표본에 태연한 척해도, 벌어진 아내와의 사이에서 그런 사소한 지적이 또 다른 해리 우로보로스(꼬리를 삼키는 자. 커다란 뱀 또는 용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삼키는 현상)를 꿈틀거리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주위에서 '제 2의 해리'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쪄면 당연지사가 된 한국 중년 남성의 비만 허리 둘레를 아내가 연달아 3번 지적하자, 큰 소리를 내셨다는 분이 계셨다. 단순히 소설속에서만 개연성을 가지는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가상세계가 우리 현실과 이토록 닮았다니! 이 같은 이야기를 실제 접하자,  애정어린 말에 대한 생각이 깊어져서 나도 빛-Land에 빠져 버릴 것만 같다...

 

또 다른 하나는, 가문과 명분을 중요시한 결혼 후 아내의 사고 이동이 문제였다. 둘은 자유연애로 결혼한 케이스다. 하지만, 결혼 후 아내는 실리 중시에 깐깐한 장모와 닮은 꼴로 변모해 간다. 해리의 학벌까지 허위직고를 하는 바람에 해리 랜드 속의 소용돌이는 끝이 없다.이 외모 집착 때문에, 결국 아내는 불상사를 당하게 된다. 남편의 외도를 눈치 챈 아내는 성형'이라는 아리송한 결단을 내리고,수술 중 사망에 봉착하는 것이다. 저자가 황당한 이런 결말을 우리에게 던지는 이유가 없지 않다고 생각했다. 해리의 속마음을 간과한 이런 결정에 해리는 무심했고, 아내의 갑잡스런 죽음에도 그리 슬퍼하지 못한다. 끔찍히 사랑했던 아내에 대한 해리의 복수는 매정해 보이기도 하고, 바보스러워 보이기도 하다.아직 해리랜드에서, 복수에 불타는 에드몽 당테스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뜻밖에 시선을 잡는 부분은 주인공과는 비교도 안 되는 할당량을 차지하는 아내의 언니이다. 그녀도 뚱보다. 해리의 표현에 따르자면, 그를 능가한다. 해리가 타이어 하나라면, 그녀는 두,세개쯤 걸쳤다. 배꼽잡는 부분은 이 처형의 돌같이 흔들림없는 성격이다. 돈으로 해결 못할 것이 없는 이 자매는 성격이 판이하다. 외모로 매력적인 아내 안나와는 달리, 처형은 내면이 더 아름답다.  남들이 혐오하는 뚱녀지만,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비만을 수정할 의향이 눈꼽만큼도 없다.날씬한 것이 대수냐는 그녀는 정말 당당하다. 해리도 아내보다 가난한 그를 심성만 보고(전에는 순진남이었다)  맞아준 처형에게 감사하고 놀랄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그녀를 '명문가 사교계의 이단아'라고 부르면 딱 어울린다. 외모로 사람 잡고, 배신하고 기만하는 사람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 인물 통쾌 그 자체다. 해리와 더불어 이 책의 백미.

 

작가는 <포보스>가 뽑은 인기 최고의 웹블로거이다. 그것을 감안하면, 그 문체의 적나라함을 상상할 수 있다. 우리도 한 때, 인터넷 소설이 화제 몰이를 한 적이 있다. 그런 류는 인기만을 노린 함정이 있기도 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코믹하기만 한 것이다.하지만 이 책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고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연이 필연이 된다고, 분노로 시작된 바람이 해리를 한층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시킨다.  부부간의 딜레마를 유쾌하게 끌어내면서도, 그 속에 진중한 인격의 수정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자칫 통속적이기 쉬운 주제를 , 방대한 독서를 한 작가는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아름다운 결혼 유지를 위한  미혼남녀가, 결혼 전에  읽어뒀으면 하는 책이다.딱히 꼬집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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