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탄생 -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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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탁월한 멋진 책이다! 이어령 선생님이 괜히 추천의 말을 썼겠는가.
다만 너무나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에 번역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다른 독자들과 출판 관계자 분들께 문제의식을 촉구하고 싶다. 가장 큰 문제는 원문을 최소한 20-25% 이상 누락했다는 것. 자세한 지적은 <마이 리뷰>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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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탄생 -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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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탁월함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우리말 번역도 처음엔 술술 매끄럽게 읽히고 보기 좋게 편집되어 있어서 접근하기 편한 장점은 인정해야 한다. 간단한 인물 소개를 곁들여준 번역자(또는 편집자)의 친절함도 고맙다. 그렇게 심각한 오역이 곳곳에서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어서 이렇게 문제제기 없이 그냥 넘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문을 보고 싶게 만드는 곳이 군데군데 있었다. 


원문과 번역을 대조하면서 살펴보기 시작한 다음부터 밀려드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어찌나 크던지, 오죽하면 이렇게 11년만에 <마리 리뷰>를 쓰고 있겠는가.


원문을 좀 더 정확하고 꼼꼼하게 옮겼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은 그나마 사소한 불평이다.

예를 들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창조적 사고를 하는 숱한 사람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정신들"이 아니라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신들"이다. 서문(Preface)은 짧으니까 원문과 대조해본 결과를 이 리뷰 끝에 첨부하도록 하겠다. 


어쨌든 두루뭉술하게 한두 문장씩 건너뛰며 전체적인 문맥을 잡아 전달하면 된다는 취지였을까? 그렇더라도 서문부터 시작된 누락의 정도는 첫 장부터 점입가경이다. 

20세기 위대한 창조적 정신들의 생각과 인용을 대단히 풍부하게 예시한 것이 원문의 특징인데, 너무 풍부한 것도 독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는지, 곳곳에서 누락이 속출하기 시작하더니 원문의 한 페이지 가운데 20-25%, 많으면 40%까지도 빼먹고 번역하는 일이 비일비재다.


번역자 혼자서만 이렇게 본문을 취사선택한 번역 글을 내놓을 수는 없다. 


읽는 노고를 줄여주려는 출판사의 배려였을까? 이런 식으로 원문을 훼손한 자의적인 번역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유형과 독서의 목적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서가 훌륭하면 할수록 안타까움과 아쉬움은 크기 마련이다.


아무튼 원서의 서문을 보고 나서야 각주가 번역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았고, 참고문헌 뒤에 유익하고 유용한 실천의 길잡이 자료(Minds-On Resources)도 누락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마인드-온 리소스>는 텍스트에서 기술한 생각 도구들을 독자들이 실천하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흥미로운 자료 목록이다. 이 자료 목록이 번역되었다면 관심 있게 볼 독자들이 꽤 있지 않았을까? 


이 책의 우리말 번역을 구입한 것은 2016년이었다. 당시 47쇄였으니 지금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서 자극과 도전과 영감을 얻었을지 궁금하다. 


에코의서재에서 나온 이 아름다운 책은 나 자신을 포함해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고 끼칠 것이 틀림없지만, 원서의 가치와 매력을 희생하면서 얻은 수확은 어째 받을 것을 다 못 받은 기분을 남긴다. 


이렇게 원서보다 더 보기 좋게 꾸민 튼튼한 책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출판사는 세상에 별로 많지 않다. 이제 그만 말을 맺자. 출판사와 번역자는 분명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줄 수 있었다.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가 아니다. 주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별첨. Preface 원문과 <작가의 말> 번역 비교

 - 수정한 부분과 누락된 부분은 {  } 안에 표시함


  이 책은 '창조적으로 생각하기'{창조적 사고}에 관한 책이다. 모든 분야에서 창조적 사고는 언어로 표현되기 전부터 나타나며, 논리학이나 언어학 법칙이 작동하기 전에 감정과 직관, 이미지, 몸의 느낌을 통해 그 존재를 드러낸다. 창조적 사고의 결과로 나오는 개념{착상ideas}은 {논리 이전의 형태에서 충분히 발전된 다음에야 비로소} 공식적인 의사전달 시스템{소통 체계}, 이를테면 말이나 방정식, 그림, 음악, 춤 등으로 변환{변역}될 수 있다. 이 변환{번역}의 산물은 {무한히} 각양각색이지만(그림, 시, 과학이론, 수학공식 등) 그 과정{번역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보편적이다. {그러므로} 한 분야의 창조적 사고를 배운다는 것은 다른 {모든} 분야에서 창조적 사고를 할{이해할} 수 있는 문을 여는 것과 같다. {이런 보편적인 창조적 사고를 교육하는 것은 내일의 혁신을 일굴 수 있는 평생 학습자들을 만들어내는 열쇠인 것이다.}


  창조적 사고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은 통합적이고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여러 분야를 가로지르기 때문에}. 따라서 ‘종합적 이해’라는 {새로운} 직물을 짜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지식들이라는 실을 먼저 풀어놓지 않을 수 없다. {사고 그 자체의 이해를 위한 목적만이 아니라 교육적인 또 사회적인 이유 때문에도 새로운 종합이 필요하다.} 전문화 추세가 가속화되면서 지식은 파편화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정작 그것들의 기원이나 의미는 무엇인지,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거의 파악하지 못한다. 전문적 지식의 양은 늘어나는 데 비해 학문 간의 교류는{커뮤니케이션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어 종합적 이해력을 퇴보 일보에 있다. 현대사회는 지식의 풍요 속에서 오히려 암흑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은 오로지 새로운 방식으로 지식을 재통합하고, 이 통합{새로운 종합}을 이끌어낼{스스로 직조할} 수 있는 新르네상스인{새로운 세대의 르네상스인}을 양성할 때 이겨낼{해소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지적인 사업기획은 인식적 토대와 교육적 토대를 모두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프로젝트에는 날줄과 씨줄이 있다. 창조적 사고의 본질을 이해하는 일이 날줄이라면, 창조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 시스템에 대한 모색{의 창안}이 씨줄인 셈이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 우리는 책을 ‘짜기 위한 베틀’을 놓을 것이며, 창조적 사고에 대해 현재 횡행하고 있는{통용되는} 오해들, 그리고{그 다음으로} 창조적 사고를 가로막고 있는 교육 시스템에 대해 말할 것이다.


  우리는 역사상{20세기의} 가장 위대했던 ‘정신’{정신}들의 경험을 둘러보는 것으로 이 책의 출발점을 삼을 것이다. 그들은 ‘생각하기’{생각하기}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으며 생각하는 법을 어떻게 배웠는지 알려줄{설명해줄} 것이다. 창조적인 일을 할 때 사람들은 매우{거의 무한대의} 다양한 방법으로 ‘생각의 도구’들을{일반 목적의 공통된 생각 도구 세트를} 사용한다. 이 도구들은 창조적 사고가 무엇인지에 관한{사고 자체의} 본질을 보여준다.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이들 도구는} 과학, 예술, 인문학, 공학기술 사이에 놀라운 연관성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연관을 짓는다}. {창조적 상상의 수준에서는 모든 사람이 비슷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창조적 사고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우리의 인식적 범주들을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지식 개념을 구상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교육 형태를 공식화한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는 창조의 과정{창조적 프로세스}에서 개념들{착상들ideas}이 어떻게 변형되고 종합되는지를 다루고 있는데, 독자 여러분들은 날줄과 씨줄이 어떻게 엮여 ‘통합적 이해’라는 멋진 직물이 되는지 보게 될 것이다{이해의 전체 태피스트리를 만들어내는지 예시한다. 마지막 장은 우리의 인식적 재구성이 특정한 교육 개혁을 통해 이행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한다. 결과로 나온 지적인 직물의 경이는 그것이 마치 진짜 직물처럼 거의 무한대의 것들로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그러므로 우리의 새 재료는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미래의 예술가, 과학자, 인문학자, 기술자들이 세계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휴머니스트와 공학기술자가 그들의 세상을 가공해낼 때 쓸 원료이다. 마지막 노트를 하나 남긴다. 각주와 참고문헌 뒤에 수록한 Minds-On Resources 부분은 우리가 텍스트에서 기술한 생각 도구들을 독자들이 실천하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책은 그저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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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것이 미술일까?
신시아 프리랜드 지음, 전승보 옮김 / 아트북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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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좋은 책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현재 미국의 예술철학자이자 미술평론가로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Arthur Danto가 이 책에 대해 언급한 다음과 같은 칭찬 그대로이다:  

 "나는 오늘날 그렇게 신속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예술가 사회가 전투를 벌이는 지역을 두루두루 밟아나가는 저작을 알지못한다."  

 이 문장을 번역자(전승보)는 다음과 같이 오역했다.  

"나는 오늘날 어떠한 예술작품도 그렇게 신속하게 작용할 수 없으며, 예술과 사회가 전투를 벌이는 지역을 떠나서도 작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트북스에서 출간된 이 책의 속표지 바로 다음 장부터 시작된 이 어이없는 오역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시종일관 이어지는 기나 긴 오역의 행렬은 끝이 없다. 특히 1장과 5장의 오역 수준은 가관일 정도인데, 2장에서 발견된 오역만을 짚어보기로 하자.     

 ------ 2장. 페러다임과 목적 

51~52쪽 “우리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출발해), 중세 (샤르트르)로, (그 다음에) 베르사유의 형식적 정원들(1660~1715)로 나아가고, 1882년에 만든(→ 초연된) 리처드(→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로 이동할 것이다.

52쪽, 첫 단락 마지막 줄: “디오니소스의 죽음과 부활을 재연했던 비극은 종교(적 의미), 시민(적 의미), 정치적 의미 등 여러 층위에 걸쳐 있다.”  

 

53쪽, 2~3줄"이데아의 모사인 현실세계를 모방했다.”   → 이데아의 모사인 우리 세계의 사물들의 한낱 모방들만을 제공했다.      

 

53쪽, 아래서부터 8줄 이하“어떻게 훌륭한 사람이 불행에 처하게(→ 불행을 맞닥뜨리게) 되는가를 보여준다면 […] 악행을 저지르는 오이디푸스 같은 사람을 그려낸다(→ 재현한다).”   

 

53쪽, 아래서부터 2줄도덕과 미적 기준을 융합하고 있는 『시학』을 통해 볼 때, […].”   → 그러나 도덕적 기준과 미적 기준을 융합하고 있는 『시학』을 . . .   

 

 

54쪽, 4줄“영웅 제이슨(→ 이아손)이 귀한 황금함대(→ 양털)를 얻는 것을 돕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를 배신했던 외국(여인 혹은) ‘야만인’ 여자 메데이아에 관한 것이다.”  

 

54쪽, 마지막 단락: “에우리피데스는 플라톤이 (분명) 부적당하다고 생각했을 장면들을 묘사하면서, 급변하는 살인 사건의(→ 살인사건의 급변하는 정서적) 체험 속으로 관람객을 끌어들인다.”  

 

55쪽, 1줄 이하“[…]에서 그것을(→ 소름끼치는 행위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가라, 가거라. (……) 나는 너희들을 볼 수 없다.  

나는 고뇌에 빠졌고 길을 잃었다.  

내가 하는 일이 악하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의 의지보다 열정이 나를 이끄는구나(→ 더욱 더 충동질하는구나).   

 

55쪽, 아래서부터 4줄 이하 ~ 56쪽:

“디오니소스를 숭상하는 전 도시의 종교적인 축제의 일원(→ 일환)으로서 비극 공연에 참석했다. […]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시민적이고 종교적인 차원에 관해서는(→ 차원들을) 분명하게 논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이라는 예술을 그런(×) 맥락에서 분리시켰기(→ 추상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다른 분야(→ 시대)의 비극(,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적용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비극의 주인공이 악한 의도에서가 아니라) ‘하마티아’, 즉(→ 혹은) 실수로 행동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소위 ‘비극적 결함’이라는 이론으로 왜곡되었고, [. . .] 인간의 나약함에서 비롯되는 실수를 저지르는(→ 단지 저질렀던) 선한 주인공을 보여주어야 한다.”

 

57쪽, 1줄 이하: “그러나 (많은 발전들이(혹은 ‘정반대의 자료들’이) 예술의 모방론을 구성해온 많은 자료(혹은 ‘정반대의 자료’)는 지난 세기부터는 설득력이 약화된 듯하다(→ 지난 세기에 점점 더 그럴 듯 해보이지 않게끔 만들었다). 회화는 특히 최근에 출현한(→ 벼락출세한) 새로운 매체인 사진의 사실성(→ 리얼리즘)에 의해 도전을 받았다. 19세기 말경에(→ 후반 이래로), 모방은 인상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추상주의 등의 점점 더 많은 미술 장르의 목적이 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57쪽, 마지막 줄: “샤르트르의 종교적이고 시민적인 속에 잘 녹아든 예술형식을 (또 다시) 발견할 것이다.”   

 

63쪽, 아래서부터 4줄 ~ 64쪽:

“[…] 다른 이야기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학예’(→ 리버럴 아트)― 그리고 그 속의(×) 기하학과 수사학 같은 (각각의) 분야들 ―는 신학에 의해 지지되고 완성(→ 신학을 지지해야 되고 신학에 의해 지배)되어야 함을 보여주면서, 피타고라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된 조각상들 아래쪽에 위치한 출입구의 기둥 위에 있다. 이와 유사하게 훌륭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아래쪽에 구약이야기, 위쪽에는 예수의 묘사와 관련되어 있다.”

  

68쪽, 8줄 이하: “칸트는 베르사유를 판화를 통해 보았을 것이고, 하노버의 헤렌하우스(→ 헤렌하우젠) ―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대화록 중의 (몇몇) 장면 ―에 필적하는(→처럼 베르사유를 열심히 흉내낸) 정원들을 알고 있었을지라도 그곳에 가본 적은 없었다.”

 

68쪽, 아래 인용문:  

칸트는 베르사유의 정원사를 ‘형식들을 가지고 그리는’ 사람으로 간주했고, 그의 순수미술(→ 파인아트fine arts) 분류체계에 정원을 삽입했다.  

 

 풍경을 가꾸는 것은 (……) (몇몇 아이디어에 따라 상이하게 배치되었을 뿐,) 자연이 우리에게 단지 다르게 배열되고 어떤 이념에 따라 나타나는 것과(→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동일한, 잡다한 다양성(잔디, 꽃, 관목, 나무들, 그리고 심지어 물, 언덕과 골짜기)으로(→ 을 가지고) 치장(→ 장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69쪽, 7줄 이하:  

“그 대신 정원에 ‘아름답다’는 명칭을 붙이게끔 하는, 훌륭한 형식이 생산하는 ‘그 속성들(→ 인식능력들)의 조화’를 강조했다. 칸트는 지나치게 규칙적이고(→ 규칙적이지도 않고) 예측가능하지는 않지만(→ 예측가능하지도 않으면서) 질서정연한 면에서 베르사유를 찬양했을지 모른다. 작은 숲이나 관목 숲에 들어갈 때 사람들은 식물, 조각상, 꽃병, 분수들의 (제각각) 새로운 배열과 (서로 다르지만) ‘적절한’ 배치에 놀라게 된다. 칸트는 ‘그로테스크한 것으로(까지) 상상력의 자유를 밀어 넣기’ 때문에, (물 흐르듯 좀)더 ‘자연스럽게’(→ 자연스러운) 흐르는(×) 영국식 정원을 비난(→ 비판)했다. 지속적으로 변하는 베르사유 풍경의 다양성, 특별한 목적이 없는 외관상의 질서, (그리고 특히) 다양한 분수에서 비롯되는 감수성의(→ 분수에 의해서 환기되는 감각작용들의) 유희는 그것을 아름답게 ―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를 자극하는 어떤 것을 ― 만들 것이다.”    

 

 

70쪽, 아래서부터 2줄:  

"워홀의 초기 서명 작품(→ 가장 뛰어난 장기)인「브릴로 박스」(1964)를 살펴볼 것이다.” [* signature piece: 가장 뛰어난 장기(長技), 정평 있는 것을 가리킴]  

 

71쪽, 아래서부터 2줄:   

“비평가들은 이 오페라를 숭고하다거나 혹은 퇴폐적이라고 부르며 애정과 증오를 함께 보낸다(→ 좋아하거나 아니면 싫어하거나 둘 중 하나다).”    

  

73쪽, 5줄 이하:   

“그 음악은 성 금요일을 배경으로 한 마지막 장에서 기쁨에 찬 영적 전환을 보여준다. (이제) 성배의 기사인 파르지팔은 성창으로 인해(→ 성창을 가지고) 부상을 입은 왕을(→ 왕의 상처에 갖다댐으로써 그 상처를) 치료한다. 그 마지막 가사는 ‘구세주(→ 구원자)를 위한 속죄(→ 구원)’이다.”   

  

73쪽, 중간 시작 단락:    

“철학자 니체는 1876년의 바그너의 권위 있는 작품 「니벨룽겐의 반지」의 (초연을)  작곡가 리스트, 차이코프스키, 그리고 수많은 군주와 귀족과 나란히 첫 공연을(×) 관람했던 (예전의)  팬이었다. 니체는 1868년에 바그너를 만났고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은 바그너에게 헌정되었고, ‘비극의 재탄생’이라는 열렬한 용어로 바그너를 이야기했다. 철학자(→ 문헌학자)이자 젊은 교수였던 니체는 비극의 기원을 디오니소스 신의 숭배로부터 설명했다. 비극적인 상상력은 의미나 정당성이 없는 격렬함과 고통스런 삶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74쪽, 중간 시작 단락:   

“그러나 188년 니체는 바그너와 「파르지팔」을 호되게 꾸짖는 『바그너의 문제(→ 경우)』를 발간했다. […] 너무 ‘기독교’적인 것이라고 거부했다. ‘붕괴와 절망과 퇴폐를 겪으면서 바그너는 (……) 성호를 긋기 전에(→ 기독교 십자가 앞에서) 무기력하게 파산한 채 가라앉았다.’ 니체는 그것의 구성(→ 플롯)이 삶을 부정하고 ‘병들고’ 완전한 긍정이 아니라는 ― 진정으로 디오니소스적이지 않다는 ―점을 발견했다.”   

  

75쪽, 8줄:  

“이것은 상당히 최근까지도 그의 음악이 이슬람권(→ 이스라엘)에서 비공식적으로 금지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사연 때문이 아니더라도 어떤 사람들은 장엄한 주제와 구성(→ 플롯) 때문에, 혹은 듣기에 버거운 40분짜리 사랑의 이중주(→ 이중창)를 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같은 자기도취적인 성격(→ 캐릭터들) 때문에 바그너를 비웃는다. [ . . . ] 니체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바그너의 오페라를 평가할 때, 자신들의 미적이고(→ 미적인 관심사와) 도전적인(→ 도덕적인) 관심사가 (충돌하여) 곤경에 처하는 것을 경험한다.”   

  

76쪽, 3~4줄:  

“라고 했고, ‘사람들은 누구나 (15분 동안) 유형해질 수 있다’라는 냉소적인 슬로건을 만들기도 했다.”       

 

76쪽, 아래서부터 2줄 이하:  

“워홀은 1964년 뉴욕의 스태블러 화랑(→ 스태이블 Stable Gallery)에서 수공으로 등사한 베니어판 상자들을 전시했을 때 이미 상업적인 미술가로 성공했다.”   

  

79쪽, 인용문 다음 줄부터:   

“단토는 어떤 특정한 형태의 예술을 찬성하는 일을 피하려고 한다. 그의 다원주의적 이론은 왜 예술이(→ 예술계가 오늘날) 피의 축제, 죽은 상어, 그리고 성형 같은 다양한 작품을 예술로 수용하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79쪽, 아래서부터 6줄 이하:  

"세라노와 관람객은 그 사진작품을 예술로 여길 수 있는 어떤 배경이론과 상황(→ 배경이론이나 맥락)을 공유한다. 그것은 물리적인 매체를 통해 사상과 감정을 전달(→ 의사소통)한다.  

 

단토는 각 시대와 상황(→ 맥락)에서, 역사적이고 제도적인 상황(→ 맥락)이 주어진다면 예술가는 어떤 것을 예술로 창조한다고 주장한다. 토는 어떤 특정한 형태의 예술을 찬성하는 일을 피하려고 한다.”   

  

82쪽, 1줄 이하:  

“나는 의미와 가치의 문제들을 더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비 서구 예술의 실례들을 살펴보기 위해 먼저 (지구를 빙 둘러 이번에는) 세계여행을 더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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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러모로 유익하고 유용한 책이다. 아무쪼록 재번역을 통해 다시 출간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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