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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센트럴 파크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12월
평점 :
판매중지
10년 전 쯤 기욤 뮈소를 처음 접했을 때가 아득히 기억납니다. 당시에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가 선풍적인 인기였고, 저 역시 돌풍에 동참하여 읽었습니다. 그의 차기작이 출판되고 몇 권 더 읽다가, 이제 이 작가와는 인연을 끊어야 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소재가 다 똑같습니다. 모든 책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남녀의 사랑이였습니다. 책장에 아직도 책들이 꽂혀있는데 볼때마다 드는 생각은 어찌 저렇게 같은 소재를 우려먹을까하는 것입니다. 이 책들을 또 읽을 바엔, 사골곰탕을 한 번 더 먹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뜩 기욤 뮈소의 <센트럴 파크>가 스릴러 장르에 있는 것을 보고는 아! 소재가 바뀌었구나 싶어서 한 번 읽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참으로 질긴 인연입니다.
다시 읽어본 기욤 뮈소는 달랐습니다. (예전에 기욤 뮈소를 처음 접했을 때에는 책도 많이 안 읽어봤고, 안목이 별로 없었기에 더욱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소설 곳곳에 아름다운 구절도 있고, 이야기가 극에 달할 때의 우중충한 날씨 묘사 등과 여러가지 복선 등은 그의 명성을 다시 한 번 각인 시켜주었습니다. 흔히 잘 쓰여진 스릴러 소설을 읽으면 이야기에 푹 빠져 사소하게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 마저 신경이 쓰이는데 이 소설이 그렇습니다. 주인공들이 잠시 들린 식당의 종업원의 과도한 친절이 뭔가 수상한 느낌이 드는 정도로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습니다.
열정적이고 다혈질의 형사 알리스는 전날 밤, 친구들과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술을 마신 후 다음 날 일어나보니 낯선 곳에서 잠을 깹니다.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있고 수갑의 반대쪽은 낯선 남자 가브리엘의 손목을 채우고 있습니다. 수상한 남자와 동행할 수 밖에 없는 알리스는 곧 자신과 그 남자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자신이 예전에 쫓던 연쇄살인마라고 생각하며 그 연쇄살인마를 쫓기 위해 갖가지 단서를 모으며 이야기를 파헤쳐 나갑니다. 범인을 알듯말듯한 긴장감과 소설이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도 풀리지 않는 가브리엘에 대한 알리스의 의심은 마치 소설이 범죄 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소설 속에 이런 경구가 나옵니다.
"현실에는 두 종류의 삶이 존재한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알고 있는 삶과 당신만이 아는 삶이다. 후자의 삶이 늘 문제다. 우리가 당신에 대해 열렬히 알고 싶어하는 건 바로 그 삶이다."
이 문장이 소설 <센트럴 파크>를 나타내기에 가장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알리스의 소설 속 현재를 진행해나감과 동시에 과거의 아픔 역시 조명해 줍니다. 현재를 다른 사람들이 알리스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삶이라면, 과거의 아픔은 알리스 자신만 아는 삶인 듯 보입니다. 사실 알리스에게는 현재보다 과거가 문제였습니다. 그녀는 과거 크나큰 시련과 아픔으로 인해 삶의 의지를 상실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알리스에게는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듯 보입니다. 후자의 삶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녀가 과거에 잃었던 것들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은 아니였는데 말이죠. 기욤 뮈소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후자의 삶까지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려는 것 아니였을까요?
"그는 나에게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누구나 그녀처럼 좋은 친구들 옆에 두는 행운을 누리지는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