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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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이라하면 어제는 거의 고전이 된 소설이다.

어릴 적 이 소설을 읽으려고 시도해보다가 너무 두꺼워서 나중에 크면 읽어야지, 하고 말았었다.


어느 늦은 밤 중에 마땅히 무얼 읽지, 생각나지 않고

옆에 잠이 든 남자친구가 괜히 내가 스탠드를 키고 책을 읽으면 깰까봐,

휴대폰 조명을 죽이고 조용조용 읽어야지.... 하며

구글 스토어에서 책들을 찾아보던 중이었다.


외딴 방.


무어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당시 나의 상황에 잘 다가오는 듯한 제목.

마침 이 책의 미리보기가 되어있었고 조심조심 그 첫 장을 펼쳐들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는 다시 단 숨에 미리보기 끝에 다가가 있었다. 순간적으로 끝까지 다 읽기를 일부러 멈추고 이 책을 주문했다.




이 소설이 이토록 자전적 글쓰기 일 것 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사실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인지, 나는 잘 모른다.



그녀가 살던 어린 시절에 이야기들이 나온다. 

나도 어디서 어렴풋 들어보거나 영화, 티브이 프로그램 같은 것에서 본 이야기들.

민주주의를 얻기까지의, 아니 그 보다 그저 발 밑에 있던, 정부에 의해 마치 군대 말단 명령을 당하는 듯한 국민들....

그 속에 있던 어린 신경숙. 그녀의 주변 사람들....


그녀는 몇번이고 문학이란 무얼까, 글쓰기란 무얼까에 대해 고민한다.

난 조금의 괴리감을 느낀다. 난 그녀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나 역시 작가를 꿈꾸었고 작가를 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녀만큼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였나, 하는 것. 

글을 쓸때만 내가 나라고 그렇게 느꼈던가, 그렇다면 그녀의 환경은 정말로 '복 받은' 환경이 아닐텐가,

하면서 환경탓을 해보려다가 도로 그만둔다. 아무래도 그녀가 살아온 시절은 너무 처절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나라면 과연 그런 것들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그녀가 가장 가슴아팠던 시절의 한 풍속화 속, '하계숙'에 의한 전화 한 통으로 이 글쓰기는 시작이 된다.


그녀에게 가장 아픈 시절이라 그녀는 오히려 그것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한 문장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내가 <몽정의 편지>라는 스릴러 소설을 썼을 때, 내 주변에서는 그런 그로테스크한 감성이 나에게 있었느냐고 놀라했다.

그리고 거기 나오는 나보다 나이가 든 남자 D부터 해서 여러 등장인물들이 본인들에게 참 와닿았다고들 했다.

솔직히 나에게 이것은 쉽지도 않지만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는 일이 말이다.


그러나 누군가 나에게 우리 할머니, 혹은 나의 초-중학교 때 시절을 쓰라고 한다면 나는 숨으려고만 들 것이다.


나는 그 시절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

마치 신경숙이 열 여섯의 신경숙을 다시 바라보는 데 오래 걸렸던 것처럼.

다시 그 외딴방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려웠던 것처럼.


그녀처럼 열망있는 작가가 아닌 나는 어쩌면 내 어린 시절에 관하여 한 문단도 쓰고 죽지 못할 지도 모른다.


가슴이 아파서 쓸 수 없을 것 같다.





글쓰기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들이 감히 공감이 가지만, 특히 이런 것이다.

문학이란 결국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라는 것.

작정을 하고 SF나 미래 소설을 쓰지 않는 이상,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라고....



오늘은 또 어떤 과거과 되어서 나의 문장으로 다가올 것인가?


이 책이 또 어떤 나의 하루를 만들어줄 것인가?


나는 언젠가 나의 '외딴방'을 돌아볼 용기가 생겨날 까?


홀로서 내가 돌아오는 길을 조용히 보고 있을 나의 외딴방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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