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미래에 보내는 편지 - 소멸하는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것
대니얼 셰럴 지음, 허형은 옮김 / 창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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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3세기 사람들이 21세기 사람들을 역겨워 할까 봐 두렵다.

지금의 우리가

19세기와 20세기의 폭력을

역겨워 하듯이 말이다

목소리를 드릴게요, p.264, 정세랑, 아작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할 수 있는 말은 없어서 작가 정세랑의 말로 시작해본다. 이 책은 혹시 있을수도 있는 내 아이에게 쓰는 편지이니 말이다.

정세랑의 말처럼 미래의 아이들은 자신을 데려다 놓은 것을 무책임하다 비난하고 원망할 것이다. 우리의 지나친 소비와 무분별한 개발을 혐오할 것이다.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그 문제’를 야기한 우리를 역겨워 할 것이다.


뜨거운 미래에 보내는 편지는 현재의 우리가 이런 미래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말해주고 -혹시라도 이 책을 읽을수도 있는- 아이들을 향한 당부이지 변명이고 결국엔 현재를 독려하고 자신을 다독이는 책이다.



점점 먹구름을 드리우는 예측에도 불구하고 모든 최고 경영자와 국가수반 들이 차라리 네가 죽기를 바라는데도 살아있는 너를 그려봤어. 그때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걸, 사랑이 집요함으로 보일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

(P. 62)



지금 우리는 지구가 내어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미래에 써야할 것들까지 끌어다 사용하고 있는데 여전히 성장이 필요하다고 한다.

연일 경신하는 최고기온의 대책으로는 각 가정의 전기사용량 줄이기를 권고하면서 기업들은 싼 전기요금으로 24시간 꺼지지 않는 용광로를 달군다.

이런 세상에 살아있는 내 아이를 그려본다는 것은 얼마나 집요한 사랑인가. 이 사랑을 지키지 위해 저자는 여태 지나온 세월보다 더 많이 절망하고, 부단히 희망해야했다.



불과 며칠 전 우리나라에 퍼부어진 폭우를 생각해보자. 도시가 물에 잠겼고, 그때 우리는 재난 상황에 부재한 컨트롤타워를, 가난한 곳에 더 많은 피해를 낳는 불평등을 보고 분노하고 슬퍼했다. 천재지변은 어쩔 수 없다고 하는 말은 높은 곳, 안락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하지만 모두 아다시피 그것은 인재다. 우리 모두가 만들어낸 기후 재난이다. 우리는 화가 났고, 대부분은 그뿐이었다. 행동으로 옮겨가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분노는 어떻게 행동이 되는가를 보았다.



사적인 비통함을 행동으로 전환하려는 그 몸부림이. 확성기에 대고 자신의 슬픔을 발화하고 그것이 의사당 복도에 울려퍼지는 것을 듣는 것이. 그 순간 든 생각은 그 친구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어야 한다는 것뿐이었어. 누구에게든 이렇게까지 하게 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P. 147)

슬픔과 분노를 동력으로 삼은 행동들이 승리할 때는 짧은 희망을 느꼈고, 패배할 때는 긴 비통함을 느꼈다. 결국 우리는 시시각각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패배에 무력해져선 안된다.

달군 철판 위 처럼 뜨거운 땅 위에서 폭우와 지진, 해일을 수시로 맞으며 부족한 식량으로 살아내다 결국 절멸을 향해 갈 모든 생물들을 위해, 그리고 지금 소멸하는 지구에서 현재의 우리를 위해 ‘대부분은 아마 무서운 시나리오겠지만 그중 어느 것도 전적으로 예측 가능하지 않’으니 ‘불확정성의 잠재력’(P.331)을 믿을 것. ‘눈에 불을켜고 살아 있는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포기할 수 없’ (P.330)다는 것을 기억할 것.




분배가 축적을 대신해야 하고, 절제가 산업을 대체 해야 해. 역성장이 최종 목표가 되어야하며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는 감속을 취해야 해. 아마 그렇게 한 뒤에야, 마침내 우리는 내려놓고 쉬는 법을 배운 뒤에야, 집단적 식히기가 점점 심해지는 열기를 꺾을 수 있을 거야

(P.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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