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행복 - 제44회 페미나상 수상작
가브리엘 루아 지음, 이세진 옮김 / 이상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 행복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면 밝은 이미지와 함께 희망,소망과는 가깝고 불행, 어둠, 절망과는 거리가 멀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 벅차오르는 단어에 품질이 떨어지는 뜻의 싸구려가 붙으니 처음에는 뭔가 싶었다. 책 표지만 딱 봤을 때 표지도 뭔가 강렬한 인상을 주고 제목도 심상찮은데다가 작가도 내가 아는 작가여서 관심이 갔었다. (그리고 사실 이게 1945년 작이고 산업혁명과 세계 2차대전을 바탕으로 쓰여진 줄 모르고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는 그런 좀 더 현대적인 소설인줄 알았다.) 처음에는 싸구려 행복이 어딨지? 그게 무슨 말이지? 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싸구려 행복의 의미를 되짚어보며 등장인물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행복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으며 언제가는 편하게 살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며 싸구려 행복일지라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캐나다의 생 탕리를 배경으로 다양한 주인공들이 생활에 찌들려 힘든 삶이지만 그런 삶 가운데서도 행복은 존재하고 그렇기에 삶이란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삶의 배경은 산업혁명과 세계 2차 전쟁에 놓여있다. 그 당시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고, 여러 가지 상품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그와 동시에 기계에 밀려난 실직자들이 넘쳐나고, 빈부격차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심각한 청년실업과 지속되고 있는 경기부진 또한 그들의 사회배경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런 점에서 65년 전에 쓰인 소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당시에도 젊은이들의 머릿속에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점점 심해져가는 빈부격차로 소외감을 받으며 절망으로 고통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걸 보면 아직 그건 해결되지 못한 세계의 문제가 가볍지만은 않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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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맞는 말이야. 난 학교를 나온 이후 단 하루도 일을 할 수 없었어. 이제 신문배달을 하기에도 나이가 너무 많아지려고 해. 빌어먹을 공장에서는 날 써주지 않고. 아무도. 어디에서도 날 원하지 않아.”


“아.그래! 내가 말해 줄게. 사회는 우리에게 유혹을 주었어.”





이 대목에서 사회가 우리들에게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우리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유혹을 주었다는 것에서 시대는 다르지만 큰 공감을 하며 이러한 현실이 아직까지도 존재한다는 것에 비탄을 하기도 했습니다.

 

 

 

 

 



 

문득 행복에도 질이 있는 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되었다. 고가의 집을 가진다고 행복한 것이고 그것이 과연 최상의 질을 가진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주변에서 행복하다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렇진 않았다. 누군가를 사랑해 줄 수 있어서 누군가에게 사랑 받을 수 있어서 사랑한다는 단 한 마디로도 이 세상을 전부 가진 듯 행복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것이고 일상에서 아가의 미소를 볼 때, 함께 할 수 있는 친구와 거리를 걸을 때 등등 값을 매길 수 없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에 우리는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기에 행복을 자로 재듯이 저울질 하여 비교한다는 것은 객관적일 수 없으며 지극히 개개인에 따른 주관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싸구려 행복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 것일까.

 



 

이 싸구려 행복의 원제는 ‘중고의secondhand 행복’에 가깝다고 하는데 처음부터 마음에 쏙 드는 새 것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쓸 만한 중고품을 기회가 닿아 손에 넣은 것 같은 행복의 일종의 요행을 의미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끔찍함의 대명사인 전쟁이지만 생필품과 월급까지 주는 군대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실업자에 비해 삶의 끈이 되고 희망이 되어 바라던 그대로의 행복은 아니지만 또 다른 행복을 꿈 꿀 수도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해가 되었다.

 

 

 

 

 

캐나다에 살고 있지만 프랑스인의 피를 이어받은 생 탕리 사람들은 프랑스의 참전에 관심을 갖는다. 가난에 지친 사람들은 실업자가 되느니 목숨을 담보로 군대에 입대하기도 한다. 가난한 집안의 장녀인 열아홉살의 플로랑틴은 가족의 생계를 홀로 짊어지며 '15센트'라는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비록 지금은 가난에 찌들려 지긋지긋하지만 진정한 사랑이 행복을 줄 것이라고 믿다가 인생을 걸었던 남자에게 버림받게 되어 사랑이 실패로 끝나지만 절망하지 않고 행복의 방향을 달리하며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그녀와 나는 똑같은 나이 열아홉 살이지만 나는 그녀와 다르다. 가난하기에 사랑만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을 이유도 없고 한 남자에게 내 인생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아직까진 해본 적도 없으며 그게 행복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게 싸구려 행복이 없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이건 각자에게 달려있는 것이므로 다른 것이다.

 



 



 

플로랑틴의 엄마인 로즈 안나는 현실감각과 무능력한 남편 탓에 하루하루를 가난에 찌들려 살고 있다. 한때는 날씬하고 아름답고 꿈도 많던 그녀가 지금은 하루하루 살아갈 걱정만 하고 그 와중에도 남편에 대한 크나큰 원망도 표출하지 않은 채 인내의 삶을 살아간다. 그녀가 바라는 행복은 결코 크거나 허황되지가 않다.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살 걱정 없고 가족이 건강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녀는 좀 더 이상적인 행복을 바랄 수도 있지만 싸구려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기에만 그러하고 그녀에게는 그게 가장 현실적인 행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로즈 안나와 같은 어머니들이 수 없이 많이 존재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금은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행복을 원하고 바라지만, 그 행복은 각자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실직한 아버지는 헛된 망상을, 어머니는 가족들의 행복을, 플로랑틴은 사랑을, 장은 오로지 성공이 목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시대보다 덜 빈곤한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훨씬 가난한 우리들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그들처럼 아무리 절망적이더라도 포기보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해주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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