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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연인
다이라 아즈코 지음, 김은하 옮김 / 글램북스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이 여자 저 여자 전전하면서 인기남을 자처하는 남자, 짝사랑 상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그의 옛 연인과 동거하게 된 여자, 사랑한다는 말이 입버릇인 중년 가장, 찌질하고 모자란 구석이 있는 남자만 골라 사귀는 여선생, 철없는 아버지와 고지식한 딸, 사랑을 숨기지 않는 게이와 사랑에 인색한 노처녀, 시아버지의 장례를 슬퍼할 틈도 주지 않는 유난스러운 시누이와 분통을 터트리는 젊은 새댁...
영화 <멋진 하루>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 다이라 아즈코의 작품 7편이 단편모음집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멋진 하루> 뿐만 아니라 <먹고 자는 곳 사는 곳>, <오늘의 레시피>처럼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일관적으로 느껴지는 유머러스함과 편안한 문체는 여전하다. 각각 별개의 이야기인데도 한 번 책을 잡으니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까지 순식간에 읽어 내렸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두 번째로 수록된 <짧은 동거>다. 유능한 커리어 우먼이지만 일보다 결혼이 하고 싶은 미유키, 책임감 있고 배려 넘쳐 보이지만 실은 그런 척을 하고 있는 아유무, 여자 눈에도 남자 눈에도 사랑스럽지만 설거지 하나 제대로 못하는 미나... 이런 세 사람이 서로 싸우고, 다투고, 목소리를 높여가며 감정을 부딪치는 와중에 각자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저 세 사람이 훌쩍 성장했을까? 그렇지 않다. 어떤 드라마틱한 반전은 없었다. 하지만 부족한 자기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변화를 향해 딱 한 발자국 내딛는 모습이 오히려 리얼하게 다가왔다. 마치 내 이야기, 혹은 내 주변 사람들 이야기 같은 기분에 코끝이 찡했다.
쉽게 읽히지만 여운이 남는다, 인생에 대해 논하지만 강요하지 않는다. 누군가 이 책에 대해 묻는다면 그렇게 대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