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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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비밀과 비밀이 아닌 것

 

잠들 때마다 꿈을 꾼다. 방충망을 찢고 창살 틈으로 기어 들어가 거기서 추락하는 방법으로 도망치려는 꿈. 누군가 내 방 창문 밖으로 지나가다 돌아와 내 이름을 부르는 꿈. 무섭고 시시한 악몽들이다.

그래서 꿈의 해석을 찾았다. 한 학문에 획을 그은 저명한 사람이 비춘 꿈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간결하고 명징한 학문 앞에서는 모든 게 아무것도 상관 없어질 것 같았다. 방 안에 도사렸던 낮이 물러갈 때까지 책을 읽었다. 딱 그 속도만큼 천천히. 냉정해질 수 있었다. 그가 나를 혐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공중을 떠돌던 공황이 가라앉은 그날 밤이다.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혐오는 차별이라고 배웠다. 세상에 달고 나온 몸이 그렇고 사랑이 그렇고 나이 듦이 그렇다. 그는 원초적인 나의 몸이 더럽다고 말했다. 말했었다. 그러니까 그의 이론을 빌리자면 그는 그가 더 이상 세상의 비밀이 아니게 된 나의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를 전부 부정한 것이다. 그가 밝혀냈던 비밀을 꺼버리는 방식으로.

 

내가 그의 무덤에 찻잔을 올렸을 때, 거기 있던 건 무덤도 그도 아니었다.

그건 무엇이었나.

 

누군가를 찾고 동시에 버려졌던 일이 적지 않지만. 이렇게 존재 자체를 부정당할 때마다 도리어 침착해진다. 그리고 칼을 갈게 된다. 무뎌지지 않은 칼로 누구든 찌를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해야 누군가 '우리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게 나를 슬프고 강하게 만든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하고 불미한 여성으로 쳐다보는 그들의 시선을 안다. 나는 느낀다. 그들의 시선이 두려운 건 아니다. 아니다, 사실 두렵다. 그 시선에 내가 나를 잊거나 잃을까 두렵다. 진저리가 날 정도로 싫다.

누구에게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일이 있다. 비밀들은 전부 어디로 갈까. 우리가 비밀을 잃어버리는 걸까 비밀이 우리를 잃어버리는 걸까. 사실은 싫다고 말하고 싶지만 괜찮다는 말로 대신했던 사실은 어째서 비밀이 되어 버렸을까. ‘싫어요라는 단어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우리는 어디로 걸어왔을까.

나는 제야의 2008714일을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었을까. “끔찍한 오늘을 찢어버리고 싶다.”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부터? 백일장에서 만난 수지에게 제야가 은비도 잘 있어?”라고 물었을 때부터? 내겐 아무 잘못이 없다. 아무 잘못이 없다는 말을 제야가 두 번 반복했을 때부터? 제야가 부딪힌 남자 어른의 손과 바지에, 제야의 옷에 아이스크림을 묻혔을 때부터?

나는 어떻게 제야에게 일어날 일을 짐작할 수 있었나. 그 애가 컨테이너 박스에 혼자 갔을 때부터였나. 비가 그 애를 그 안으로 피하도록 만들 수밖에 없었던 때였나. 그 안에서 잠깐 담배를 피우던 그 애가 있는 곳으로 그가………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몸을 움츠렸다. 그 애가 당장 뛰쳐나와 아무도 없는 곳으로 달려가길 바랐다. 세상을 살면서 배운 온몸의 감각이 저 애는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애가 겪을 세상의 시선과 말에 대해서도 나는 알았다. 악몽 같은 공포였다.

그간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는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꺼려 하고 혐오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변두리로, 변두리의 바깥으로 쫓아냈다.

그렇다면 이들의 자리는 도대체 어디 있을까.

이 질문을 소설을 쓰는 내내 생각했다고 작가는 말했다.

제야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도대체 내 자리는 어디 있지? 제야에게는 분명히 자리가 있었다. ‘하루하루를 꼭꼭 눌러서 살 수 있는 만큼 다 살아내고 싶. 돌아갈, 돌아갈 수 있는. 그건 정말이지 당연한 거여서 없어져 버려서는 안됐다. 언제든 어느 때든 제야의 자리가 있어야 했다.

제야의 자리를 없앤 건 무수한 어른들이었다. 뺏거나, 더럽히는 것을 떠나 없애버리는방식으로 그들은 제야를 지우고자 했다. 그들에게 제야는 한 달에 거둬들이는 돈이 얼만데 젊어서 여자애 하나 건드린 게 무슨 대수가 되는 아들의, 남성의 비밀조차 되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사장이 그런 일을 저지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술이 문제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여자 문제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제야를 위한다며 이런 말을 했다. 여자애가 아직 어려서 뭔가 착각을 한 거 아니야? 나이 많은 여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정말 그런 일을 겪었다 쳐도, 그래도 너는 잘못이 있다.

제야는 혼자 울고, 남들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잘못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했어요.

그 말을 그들이 믿거나 듣지 않아도 제야는 힘을 주어 말해왔다. 조각나도 잃어버리지 않는 방식으로, ‘손도끼를 갖고 나오긴 했어도, 그걸 방파제에 두고 오는 방식으로 제야는 살아나갔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서, 나가며, 제야는 제니를 만나러 갈 것이다. 소원을 빌고 촛불을 껐던 자정을 떠올리며.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너를 기다렸어, 라고 쑥스럽게 말해주며. 사랑해, 제니야. 편지를 쓰듯 꾹 꾹 눌러가며. 마음을 다해.

 

p.s 정확해지기 힘든 소설이었다. 자꾸만 추상 속으로 숨어 들것 같아서 커피 대신 물을 마시며 적었다. 몸으로 적었다.



잠이 오지 않으면 불을 켜도 된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같이 쫄면을 먹으러 가자고 청해줘서 고마워.
가만히 방문을 닫아줘서 고마워. 나를 옷장에서 끄집어내지 않아준 것도.
네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말하고 매번 내게 달려와줘서 고마워.
어두운 밤 같이 나가주고,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를 손에 들고 있어줘서 고마워.
내가 시비를 걸 때조차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어렸을 때부터 네가 부러웠어. 너를 생각하면 용기가 났어. 너를 사랑하지 않은 순간은 단 한번도 없어.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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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놀이터
박성우 지음, 황로우 그림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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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덩이만큼의 시간



  하루 일과 중 아이들이 가장 손꼽는 놀이 시간은 바깥놀이 시간이다. 햇빛이 쨍하게 내려오는 날도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날도 모두 환영이지만, 가장 환영받는 시간은 비 오는 날이다.

  노랗고 파란, 저마다 몸에 꼭 맞는 우비를 입고 단추를 채우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바깥을 쳐다보며 발을 구른다. 단단히 준비를 마치고 바깥으로 달려 나와 자유롭게 놀이할 때면 아이들은 ‘잠자던 풀씨를 흔들어 깨우고’, 거미, 개미, 무당벌레와 함께 잔디 위를 뒹군다.

  유난히 날이 궂은날 바깥에 나가지 못하게 되면 아이들은 창문에 무리 지어 코를 대고 있다. 웅덩이에 고여 드는 빗방울의 모양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이따금 하늘에 햇빛이 들면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해가 떴는데 비가 온다며 상상과 사실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소나기 놀이터>는 바로 그런 날 아이들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은 동화다.

  놀이터 모래밭으로 뛰어내리는 여름 소나기는 비 오는 날 놀이터로 달음박질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닮았다. 모래알로 공기놀이를 하고 꽃들을 간질이며 짓는 빗방울들의 표정은 아이들로 하여금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게 할 만큼 사랑스럽다. 놀기 좋은 날 내려와 놀고 싶은 만큼 논 다음, 땅을 비춘 햇빛 한 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빗방울들의 뒷모습을 향해 손 흔드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나 역시 웃음이 나온다. 

  좋은 동화책은 재밌는 단어와 문장의 반복, 타 영역과의 통합에 의미를 두는데, 이는 유아가 동화를 통하여 책의 즐거움을 알고 이를 통해 정서적 순화-욕구의 충족을 경험하며 구어 발달, 어휘 습득,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자연스럽게 발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책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곧 언어 발달뿐 아니라 유아의 수, 과학, 도덕적 능력에도 동화책이 상당한 영향을 미침을 뜻한다.

  <소나기 놀이터>에는 감각적인 단어와 표현이 등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수·음악 등 타 영역과도 자연스럽게 연계가 된다. 모래알 세 개, 서른 개, 삼백 개… 크고 추상적인 숫자는 아이들의 수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거미줄로 치는 ‘둥당둥당 기타’, 키는 ‘디리리링 하프’, ‘찌잉찌잉 바이올린’ 등은 ‘친다’, ‘킨다’는 세밀한 언어 구사와 더불어 음악에 대한 흥미까지 끌어당긴다.

  빗방울들과 함께 실컷 놀다 보면 이내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빗방울들이 돌아가는 동안에도 웅덩이들은 놀이터 이곳저곳 고여 있다. 아마 웅덩이는 함께 놀았던 시간을 하늘에 비춰보고 땅으로 속삭이듯 스며들며 오래 기억할 것이다.

  빗방울이 하나 둘 모두 하늘로 돌아가는 순간에도 아이들의 웃음과 기억만은 웅덩이처럼 남아서 오래 거기 고여 있기를. 늘 마음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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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하는 여자들
대니엘 래저린 지음, 김지현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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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하는 여자들

 

말하는 남자들

 

공학(共學)을 다녀본 여성들이라면 알 것이다. 어리고 말이 많은 남성들이 얼마나 무례하고 폭력적인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서 대학교에서 와서도 이 진술은 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젠가 분노에 떨며 온몸으로 반박했던 순간이, 불쾌감이 그대로 드러나던 표정이, 차라리 못 알아들은 척 말을 돌리던 치욕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일상에서, 의견을 주장하고 말을 하는 사람들은 남성들이고 거기 반박하거나 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주로 여성들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그건 논점에서 어긋나는 이야기다) 남성들은 대체로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비판하지 못하고 여성들은 자신의 의견을 너무나 많이 검열한다. 이 사실이 극명히 드러나는 차이점은 사과.

내가 사랑하는 아이돌에게 못 먹는 감이라고 칭하고 타인에게 너 페미니스트니?’라고 물었던, 지속적으로 혐오적 콘텐츠를 재생산 해내는 래퍼와 가수, 유튜버들. 이 중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반면 여자 아이돌은 <82년생 김지영>을 읽어 논란이 되었고 애교 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청자와 미디어의 질타와 조롱을 당했으며 더 이상 소속사와 사회의 요구에 맞춰 짧은 치마를 입지 않는 그들에게 남성들은 페미 코인을 탄 거냐며 삿대질을 해대고 있다. 그들은 응당 받아야 하는 징벌인양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고 대중에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더 이상 그 이슈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방법으로 사과해야 했다.

그가 어떻게 그 책을 읽게 됐는지 그 책이 정말로 그런책인지. 그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애교를 강요당했는지 그런 사회에서 살아온 그가 최근 어떤 일을 겪어야만 했는지. 그가 남성들로부터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요즘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그들은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이들은 평화로운 세상에 불만을 가진 주제에 권력을 쥐여준 예쁨마저 거부하려 드는 이상한 존재. , 마녀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필요한 것은 솔직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건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솔직함의 조건은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욕망을 자기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그들의 욕망은 한 눈에 달콤하고 짜릿하다. 말 한마디와 행동 한 번에 지금 당장 해소되며 굳이 어렵게 찾지 않아도 네이버 연관검색어에 전시되어 있다.

반면 여성들은 욕망을 드러내면 이분되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돈을 좋아하면 된장녀고(김치녀는 훨씬 더 포괄적인 혐오 개념을 내포한다) 돈을 아끼면 간장녀가 된다. 남성을 구원하면 성녀가 되고 남성에게 애원하면 창녀가 된다. 운전에 서투르면 김여사가 되고 우는 아이를 달래지 못하면 맘충이 된다. 그간 많은 지식인들이 지적해왔지만, 이러한 무수한 대명사 속에 여성은 없다.

<반박하는 여자들>의 여성들은 오해하고 이혼하며 사랑하고 정사한다. 이게 내 욕망이고 나는 한순간 우리 관계를 전복 시킬 만큼 큰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또 한 편으로 그들은 망설이고 선택하고 후회한다. 결코 타자화되지 않는다. 솔직하게, 나는 어리석었다고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스펙터클한 사연을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사회가 말하는 정상성의 범주에는 이미 한참 벗어나 있다. 도리어 이혼녀, 꽃뱀, 창녀라고 함부로 칭해지던 역할을 맡는 것처럼 보인다.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여기 있다. 그들은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한다. “맞으면 뭐 어쩔 건데.”

16편의 단편 중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단편은 <거미 다리><반박>이다.

<거미 다리>의 나는 거짓말을 한다. 내용은 주로 아빠나 엄마를 안심시키려는 내용이고 또 스스로 정말로 그렇다고 믿음으로써 안전해지고픈 절실함에 대한 것이다.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아빠를 안심시키려고 하지만 아빠는 나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다만 당부한다. “착하게 지내다 오렴.” 아빠의 낭패감과 죄책감에는 진짜 가 없다. 새 가족을 꾸려 가지게 된 딸의 이름을 호프(Hope)’라고 지을 만큼의 되직한 자기 연민에 있을 뿐이다.

엄마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엄마는 내가 엄마와의 유일한 관계성이라고 믿는 유년 시절에 살았던 아파트를 이미 청산한 상태다. 엄마는 내가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물론 중요하다고 말하며 이 이사는 모두에게 좋다는 걸 나에게 설명하려고 들지만 그건 나에게 있어 알아들을 수 없는(듣고 싶지 않은) 외국어와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이복남매와 함께 산 따뜻한 핑크색 스웨이드 구두는 너무 예쁘지만 왠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한 갈래로 묶은 머리와 옅은 주근깨가 난 얼굴은 아이 같은데, 낮은 굽 위로 들려 올라가서 생겨난 종아리의 곡선은 어른인 여자로 비치는 거울 속 모습은 그가 끊임없이 욕망했던 가족애처럼 이질적이다.

나는 그 구두를 신고 이복남매와 함께 정신이 없을 정도로 술을 마신다. 그리고 게임을 한다. 부모가 이혼 절차를 밟고 있었던 시절 남매가 가출하여 고아 마냥저지르고 다녔던 수준의 게임이다. 택시를 탄 세 사람 중 (이복 남매 중 한 명)’이 기사에게 가짜 주소를 말하고 기사가 길을 찾는 사이 세 사람은 택시에서 내려 세 방향으로 갈라진 후 쿵쿵 뛰어간다. 택시가 쫓아오는 건 나다.

하지만 나는 택시가 건널 수 없는 다리를 찾을 수도, 형제들이 찾으러 와줄만한 어두운 장소를 찾을 수도 없다. 아름다운 새 구두는 내가 모퉁이를 도는 찰나에 부러지고 나는 무력하게 주저앉는다. 나는 엄마에게 받았던 돈의 전부를 택시 기사에게 건네며 기사의 가래를 얼굴로 받아낸다. 기사가 떠나고 나를 찾아 위로하는 남매를 밀쳐내고 싶지만 그는 그러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을 밀쳐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혐오한다.

모두와 헤어진 후 찾아온 성당에서 나는 우리가 가족을 이루려던 노력이 소용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마지막 증거임을 담담히 깨닫는다.

이렇듯 내가 겪어내는 모든 상황은 타의적으로 이뤄지지만, 그것 역시 나의 자의적인 선택이다. 나는 내가 끊임없이 집착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상황에서도 여전히 퍼즐 조각이다. 결국 부정하고 싶어 했던 것들을 인정하며 자신을 위한 자리를 내주는 여자의 친절을 거절하지 않는 마지막 장면은 그가 독립적이되 외롭지 않은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게 한다.

<반박>은 세 면의 페이지에 불과한 아주 짧은 단편이다. 파티에서, 남자 친구의 친구는 (본 단편은 화자를 너라고 칭한다)’에게 네가 너라서 참 유감이네.” “네가 그 녀석 차지라서 참 유감이야.” “제기랄, 그것만 아니었으면 난 너한테 온갖 짓을 다 할 텐데.”라고 성희롱 한다. 하지만 는 위축되는 대신 그를 호젓한 계단으로 이끈다. ‘의 몸짓 몇 번에 그가 사정하는 장면은 되려 그를 우습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는 남자친구와 사람들에게도 침묵으로 일관하며 반박한다. 반박이 어떻게 저항이 될 수 있는지 나지막이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소문의 여성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 다 진짜가 될 수 있는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는다.

여성에게는 이미 너무 많은 대명사가 붙여져 있다. 옮긴이의 말처럼, ‘그들의 삶과 존재는 어떻게든 그 범주를 초과한다.’

끝으로, 물론 그렇지 않은남성들도 있다. 하지만 남성들은 나는 그렇지 않다며 고통에 대한 논의를 본인의 것으로 만드는 대신 피해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여자아이에게는 달랐다-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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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벙!
베로니카 카라텔로 지음, 하시시박 옮김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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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어른들에게 포상으로 가장 많이 받은 간식은 사탕이었다. 막대 사탕도 아니고 봉지 사탕 한 알. 선생님들과 할머니, 엄마가 쥐여줬던 사탕 한 알은 내가 그때 가장 자주 먹었던 간식이었고 가장 뿌듯한 마음을 들게 하는 상이었다.

독후감을 다 쓰거나 연극 연습을 마무리하거나 부반장으로 당선이 되거나 하는 등의 일들이 끝날 때마다 사탕은 주어졌다. 어렸을 적엔 밥도 씹지 않고 입에서 빨다가 삼킬 만큼 단맛을 좋아해서 단맛의 결정체인 사탕 한 알은 내겐 커다란 동기였다. 사탕을 받을 때면 어른들의 칭찬도 함께였다. 잘했네. 잘했다. 같은 한 마디 말과 사탕 한 알을 받아 나는 그 순간들을 달게 삼켰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얼마간 사탕도 칭찬도 받지 못하면 이상하게 모든 일이 재미가 없었는데, 혀와 마음에 맴돌던 단맛이 사라지고 떨떠름한 떫음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 시절 내가 사탕을 받기 위해 필요했던 건 시작이었다. 하지만 시작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어서, ‘시작’ 전에는 반드시 용기가 필요했다. 글쓰기를 마무리할 용기, 연극 배역에 지원할 용기, 학급 선거에 나갈 용기 등은 그 시절 가장 씩씩한 마음을 먹어야 가능했던 일이었다.

<첨벙>의 주인공인 엠마는 ‘다이빙대에서 높이 뛰어오를 때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매일매일 다이빙을 아주 열심히 연습’하며 ‘매일 저녁 다른 다이버들의 모습도’ 챙겨보는 멋진 다이버가 꿈인 아이다. 하지만 노력이 결과의 전부가 아닐 때가 아이에게도 오고 아이는 그 순간에 부딪힌다. 순간에 부딪혀 속상한 아이에게 친구가 찾아온다. 작은 동전 ‘페니’다.

언젠가 언니가 내게 글쓰기는 계단 같은 것이어서 평평한 오르막길을 걷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계단을 스스로 하나씩 밟거나 때로는 계단 같은 벽을 부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한 적 있다. 그 순간에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눈을 감는 일도 필요할지 모른다. 그냥. 한 번 해보는 것이다. 엠마는 다음 계단을 친구와 함께 오른다. 오르기 위해서는 친구와 어른의 말과 아이의 용기가 필요했다. 어린 시절 내게 필요했던 것이 사탕 한 알과 어른의 말과 용기였던 것처럼.

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용기를 전해줄 마음 한 알이 아이들에게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 한 알이 아이들에게 다음 계단을 오를 마음을 먹도록 도울 수 있길 소원한다.


이탈리아의 한 작은 마을에 멋진 다이버가 꿈인 엠마라는 소녀가 살았어요.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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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어떻게 여성을 차별하는가 - 불평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알고리즘 시대의 진실을 말하다
사피야 우모자 노블 지음, 노윤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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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아 무식은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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