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창비시선 439
이영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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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나는되어가는기분이다'


그는 길 위에 있다.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도중(道中)에 내뱉는 뜬금없는 고해는 천박한 희망으로도 처절한 애씀으로도 보인다.

그를 허무주의자라고 ‘옹호하자는 건 아니다(*내가 알던 A의 기쁨)’.

오히려 그는 ‘낭만의 우아하고 폭력적인’, 바로 그것에 관하여 끊임없이 장면을 순환시킨다. 그건 이미 과거를 지나쳐와 ‘아름다운 시대’를 무턱대고 입에 올리는 사람들의 허황처럼 보이고 ‘야금야금 뜯어먹히’다 노을을 보고 꼬리를 흔드는 들개들의 천진함처럼 보인다. 그는 정확히 알고 있다. ‘그 어떤 사랑보다 편협할, 우리가 시작하는 힘으로 가할 폭력적인 사랑의’낭만을 말이다. 맺지 않고 끝나는 낭만은 일각을 다투다 뻔뻔하게 사라지는 허상이다.

길 위에서 보이는 게. 그게 다여서. 오로지 작위만이 “깨끗하고 매끄럽다(*미지)”. 원래부터 없던 것처럼 ‘조용하고 깨끗한, 그리울 수 없는’ 이별 마냥 있다. ‘뭐,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다(*암묵)’. 이렇게 그는 순순히 허무주의에 갇히는 것 같은데. 이상하다.

이런 와중에도 내가 부여하는 원인과 핑계는 ‘실패마저 되’고 ‘사랑마저 되’고 만다.

‘되’고 있거나 ‘되어’가거나 ‘되’었다가 ‘되’지 않음으로 시는 연민하는 허무주의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허무의 바깥으로 걸어 나온다. 아니 이미 나는 알 수 없게, 시는 허무와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허무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보는 그는 그의 말대로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는 듯하다. (강조하지만, 반대가 아니다) 이쪽에서 걸어 나와 저쪽으로 가도 그는 안도하지 않는다. 언제든 내가 걸어온 이쪽도 지금보다 더 ‘아니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허무가 ‘될 리 없고’ ‘될 수 없고’ ‘아니’라고 말한다. 시인은 이를 반복하며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끊임없이 알려 하고 언어를 통해 감각해낸다.

시 안에서 착종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운명은 운명 아닌 것이 되어 다른 무엇도 종속하지 않고 그저 ‘환하고 더디’다고, 이건 통조림이고 이것은 방이라고 말한다. 그 안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목적이 되지 못한 ‘오브제’뿐이다.

뭐.

그러나 조금의 허상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따져 오는 그가 있다. 살아있다는 감상에 빠지려는 때 시는 한순간 몸을 돌린다. 이곳도 아니라는 것 같다.

외면일 뿐이잖아.

측면일 수도 있어.

외면일 뿐이잖아.

정면에 뭐라도 있을 것 같아? (*이 사과는 없다)

절대로 아무것도 미워하고 싶지도, 믿지도 않겠다는 듯 단호한 태도는 ‘반대편은 반대편으로 인해 증명되는 반대편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나의 옹졸도 여태의 결연일지 몰라서’라는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어쩌면 이미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지 모른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 운명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모르는 것이다.

모르는 채로 길 위에서 걸었다면 길 아래로도 걷는다.

길 위에 환상으로나마 남아있던 허상은 길 아래에 선 지금 더 이상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이 무심함은 이상하고 익숙하다.



교묘한 지점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우리는 교묘한 약속이어도, 된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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