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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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은 폐암의 원인이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이 알고 있다. 하지만 원인의 원인, 즉 흡연의 원인에 대해서는 대체로 고민이 부족하다. 보통 흡연은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흡연이 사회구조에 의해 결정된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위험한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흡연율은 평균보다 훨씬 높다. 당장 눈앞의 죽음을 실감하다보니 흡연이 불러올 먼 미래의 죽음은 가볍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과연 이들의 흡연도 개인의 탓일까? 이들의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독특한 프로그램이 적용되었다. 금연교육과 현장안전관리 교육을 병행한 것이다. 그러자, 어떠한 금연정책에도 흔들리지 않던 이들의 흡연율은 유의미하게 낮아졌다. 
이 책은 질병의 원인을 탐구한다. 하지만 이 책은 대게 들여다보는 원인에서 한발짝 더 들어가 '원인의 원인'을 탐구한다.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무겁게 다가갔으면 하는 이유는, 원인의 원인이 대게 사회적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어떤 이의 질병의 원인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책에 따르면, 어떤 질병의 원인은 사회구조인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동성애가 에이즈를 일으킨다는 가설은 어떨까. 만약 동성애가 에이즈를 일으킨다면 우리는 동성애를 혐오하고 금지해서 에이즈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이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곳에서 에이즈 유병률이 유의미하게 더 높다. 그 이유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문화에서 동성애가 음성화되어, 성행위의 방법이 비합법적으로되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질문해볼 수 있다. 에이즈의 원인은 동성애인가? 어쩌면 동성애를 혐오하는 문화가 아닐까?
원인의 원인이라는 이야기가 너무 멀게 느껴질 수 있다. 질병 치료는 의사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보면, 우리도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이는 생각보다 쉽게 이뤄진다. 아주 많은 질병의 원인이 '편견'으로 정리된다. 동성애에 대한,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한, 즉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우리의 편견. 이는 우리가 운이 좋아 아직 질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우리도 언젠가 타인의 편견에 의해 질병에 걸리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로세토라는 마을은 마을 하나가 한 가족같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그 당시 이 마을은 다른 마을보다 심장병 발병률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은 로세토 마을도 심장병 발병률이 다른 마을과 비슷해졌다.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후 핵가족화와 공동체의 붕괴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관계가 가난하면 질병에 취약해진다. 관계의 가난도 재산의 가난만큼, 어쩌면 재산의 가난보다도 더 중하게 여겨져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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