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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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대한 동경이 있다. 그런데 이런 동경 나만 있는 건 아닌듯하다. 요새는 자비로 자신의 책을 출간하게 도와주는 업체도 있다고 하니 말이다. 

우연한 계기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를 읽게 되었다. 하루키로 말할것 같으면, 내가 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소설가이다. 심지어 요즘 그의 책에 한창 빠져있으니, 매우 적절한 시기에 이런 책을 보게 되었다. 소설가로서의 그를 들여다보는 재미 이외에, '이 책 읽고 나도 소설하나 써 봐야지'하는 얄팍한 기개 같은것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니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 오히려 내가 이제와서 백인이나 흑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소설가란 나란 다른 인종일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

장편 소설을 쓸 때에 하루키는, 매일 오전에 정해진 이른 시간에 일어나 6시간 정도 소설을 집필한다. 이후에는 다른 잡일도 하지만, 하루 한 시간의 달리기는 빼놓지 않는다. 그러고는 이른 시간에 잠이 든다. 꽤나 재미없는 인생이다. 반면 마약을 해놓고도 걸린 후에 위축되기는 커녕 당당하게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해서 유명한 프랑수와즈 사강의 경우, '매일 규칙적으로 글을 쓸거면 뭐하러 작가를 하나. 공무원을 하지'라는 류의 말을 했다고 한다 (문장은 정확하지 않다만). 이런 사강이 하루키를 보면 혀를 끌끌 차는것도 모자라 작가망신 그만 시키라고 드잡이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강과 하루키는 단지 양 극단에 있을 뿐, 그 본질은 비슷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유명한 작가라는 인간들은 보통 그 위치, 예를 들어 얼마나 건전한가 불건전한가 같은 것 보다는 얼마나 '극단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방탕의 극단에 사강같은 인물이 있고, 건전의 극단에 하루키같은 인물이 있어서, 이들이 각 극단에서 극단으로 오지 못하고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머무르는 범인들에게 뭔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주는 거 아닐까. 반대로 평범한 (나같은) 인물은, 건전하게 살다 보면 불현듯 '아 이게 사는거냐. 오늘은 코가 삐뚤어질때까지 마셔야지'라고 하고, 그러다 술을 마시다 보면 '아 내일 힘들것같애. 이제 그만 마셔야지'하는, 어정쩡한 중간을 왔다갔다 하다보니 중요한 '나만의' 하고싶은 얘기는 생길 틈도 없는게 아닌가 싶다. 결국 작가가 되기위해 중요한 건, 타인의 기준같은거 신경쓰지 않는 '나만의 기개'같은 게 아닐까 싶다.

하루키는 소설을 쓸 때에 무슨 얘기를 할지 고민한 적이 없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소설이라는 것은 샘솟듯 '퐁퐁' 써야지, 그게 아니면 뭐하러 소설을 쓰느냐고. 자신은 소설을 억지로 쓰진 않고, 그냥 인생을 (수필이니 번역이니 하면서) 살다보면 어느날 불현듯 자신의 뇌속 캐비넷에 하고싶은 얘기가 가득 찬다고 한다. 그럼 이제 수필도 번역도 다 끊고 오직 장편소설을 쓰는 태세로 전환한다. 하고싶은 얘기가 있다보니 소설을 샘솟듯 '퐁퐁' 쓰고, 그렇게 장편소설을 완성하면 반쯤 제정신이 아닌 상태가 된다고 한다. 덧붙여, 제정신인 인간은 원래 장편소설을 쓸 리가 없다고 생각한단다. 다만 자신은 하고싶은 얘기들을 했을 뿐인데 소설로 먹고사는 작가가 되어 그 부분에선 그저 감사한 일이라고. 놀라운 얘기다. 당장 내가 만약 '상실의 시대' (원제: 노르웨이의 숲)의 인세를 받고 있다면, 아마 후속작을 쓸 생각이 들었을까. 전작의 아성을 뛰어넘을수 있을까 걱정이며, 한편으로는 이 돈이면 평생 먹고 살겠다는 나태한 마음이며 들면서, 더 이상 작가로선 그저그런 삶을, 살아간다기보단 그냥 늙어가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 하루키는 진정으로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은 것 같다. 그저 자신의 하고픈 이야기를 소설의 형태로 우리에게 들려주었을 뿐.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하루키의 지극히 개인적인 소설가에 대한 견해다. 다만 그 책에서 세계를 호령하는 하루키라는 작가의 일면을, 보고 배운다기보다는 그냥 경탄하는 마음으로 스윽 바라본 것 같다. 하루키는 책에서 지극히 겸손한 어투로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따위의 말을 반복하지만, 그 문장 너머의 하루키가 가진 단단함이 책에서 느껴진다. 그래서 오히려 읽으면 읽을수록 '이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런 단단함을 느끼는 건 이 책을 읽는 독자 개개인에 크게 좌우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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