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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7년 8월
평점 :
흔히들 추리소설(추리만화도 포함해서)하면 일반적인 플롯이 정해져 있다. 어떤 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은 모른다. 그리고 범인을 알고 싶은 탐정역이 있다. 소설이 진행되며 사건에 관한 단서가 하나씩 탐정역에 주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단서들을 조합해, 탐정역은 마침내 최종 범인을 찾아낸다. 이 플롯의 핵심은 범인을 알아가는 과정에서의 긴장감이다. 독자들은 주어진 단서들을 퍼즐의 조각처럼 이용하며 소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 적극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사건의 진상, 그리고 범인에 대한 궁금증. 당연히 이런 적극성은 독자들이 탐정역에 감정을 이입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용의자 X의 헌신은 이 플롯을 철저하게 파괴한 소설이다. 첫 챕터에서 범인이 나온다. 사건도 상세히 기술된다. 또한 소설의 화자가 한번은 범인측으로 한번은 탐정측으로 계속 바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독자의 긴장감을 전혀 흐트리지 않고 전개된다.
소설은 대략 네 명의 화자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네 명은 각각 범인, 형사, 범인의 조력자, 형사의 조력자이다. 놀랍게도, 범인은 소설의 중심이 아니다. 그 이유는 범인이 사건을 저질렀음에도, 사건의 핵심에 접근을 못 하기 때문이다 (뭔 소린지는 소설을 보면 알게 된다). 형사도 소설의 중심이 아니다. 범인과 마찬가지로 사건의 핵심에 전혀 접근을 못 하기 때문이다. 사건의 키는 범인의 조력자가 쥐고 있다. 이 조력자가 사실상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다. 한편 형사 측 조력자인 네 번째 화자는 사실상 또 다른 주인공으로,이 사건의 핵심을 파헤치는 역할이다. 트릭의 정체는 마지막에야 밝혀진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독자는 범인의 조력자가 마련해준 (심지어 범인마저도 모르는) 트릭 덕분에 긴장감을 잃지 않고 빠져들게 된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에서는 독자가 사건을 한 쪽의 입장, 즉 탐정역에서 바라보게 되는 반면에, 이 소설은 독자가 범인역과 탐정역 양 쪽 모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한다. 그 덕에 책도 더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책 자체도 호흡이 결코 느리지 않지만, 마지막 반전에서는 그야말로 소설이 몰아치듯 전개된다. 구성, 전개, 트릭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흠잡을 데 없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