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들 플라워
김선우 지음 / 예담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2008년 봄, 나는 무엇을 했을까? 2008년 봄이라는 시간이 마치 1987년 6월이라는 것처럼 까마득히 멀게 느껴졌다. 채 2년이 안 되었는데 왜 그랬을까? 어쩌면 2009년에 너무 많은 일들을 겪어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이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잊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맞아. 그랬었지.’ 아니, ‘그랬다고 읽었지, 신문에서.’

 

나는 2008년 봄에도 내 작은 우물 안에서 정신없는 일상을 견디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만드는 사람도 푸는 사람도 행복하지 않은 문제집을 만들면서 ‘코코돌코나기펭’ 주문을 외우는 희영처럼. 희영의 모습은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희영은 철거촌에 살고 있으면서도 철거문제에 관심 없고 친구들이 촛불집회에 매일 나가도 심드렁한 모습을 보였다. 어릴 적 보았던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세계와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픈 공항이 그녀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2008년 봄, 나는 쇠고기 협상 문제를 들으며 분개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촛불집회 이야기를 읽으면서 놀라워하긴 했다. 내가 사는 지방에서도 촛불집회가 열린다고 했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한번 가볼까 생각만 했을 뿐,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 사회적인 문제엔 언제나 구경꾼. 그러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 삶에 있어서도 주어지는 대로 살아온 방관자는 아니었을까?

 

지오는 시 같은 사람이다. 캐나다 오지에서 여신이라 칭하는 할머니, 엄마, 엄마의 애인 아줌마랑 살아간다. 자연 속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며 충만한 삶을 살다 열다섯 살 성년을 기념하여 첫 해외여행을 한국으로 왔다. 엄마의 생물학적 아버지도, 지오의 생물학적 아버지도 한국인, 그렇다고 아버지를 찾아온 건 아니고 꿈속에서 만난 바유, 쌍둥이를 찾으러 왔다. 그녀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열 가지 다른 나라 말을 할 줄 알지만 학교엔 다니지 않으며 동물과 식물의 말까지 할 수 있다! 그녀는 희영의 집에 머물며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여러 사람들의 고비 고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숙자씨와 휴지 줍는 할아버지도 시 같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시인이라고 직접 말하기도 한다. 지은이가 시인이어서일까? 문장도 시처럼 아름답다. 그렇지만 평범한 독자에게 어떤 시는 이해가 안 되기도 한다. 숙자씨의 사연을 ‘사과’라는 이름의 개를 통해 듣긴 했지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서울 한복판에 소를 끌고 온 것이. 그리고 마지막까지 부탁한 ‘박각시’도 다소 뜬금없이 느껴졌다. 간첩설 스토리에 필요했나 싶기도 하고. 고물상 시인 할아버지는 숙자씨의 친구이며 헌 신문과 헌 책으로 세상을 공부하며 존 덴버의 이매진을 흥얼거리는 사람이다. 촛불로 시를 쓰고 타성에 젖는 촛불들에게 거침없는 깨우침을 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실제로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몇 번 봤기에 이 시인 할아버지는 농담 같다.

 

지오는 처음부터 함께 있었던 존재를 느끼는데 민기는 왜 그렇지 못했을까? 삶의 환경이 그만큼 달랐던 것. 지오는 새벽부터 밤 열두시까지 학교에 앉아 공부한다는 말을 듣고 가장 충격을 받았다.

“표정, 몸매, 향기가 날마다 달라지는 나무들과는 언제 놀고? 새들과는? 사슴과 너구리, 꽃과 약초들, 곰과 토끼랑은? 수영은 언제하고 요트는 언제 타고? 산책은? 날마다 발을 동 동 구르게 하는 신기한 모양의 구름들은 언제 바라보지?” (p.226)



정말 눈물이 났다. 감성과 영성을 빼앗긴 채 박제된 지식을 강요당하는 수많은 민기들 때문에. 난 그런 민기들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힘없는 어른. 그리고 한 가지 더, 민기는 지오에게서 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고 했다. 그것 또한 지오와 민기의 중요한 차이점이 아닐까?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 내가 그 말을 하지 않으면 나의 아이들도 하지 못할 테니까.

 

[캔들 플라워]가 세상에 나온 건 다행스러운 일인 것 같다. 희영이 결국 화사한 노란 원피스를 입고 촛불에 동참했듯이 이 책이 곳곳에 촛불을 붙여 줄 수 있으리라. 그리고 희영이 행복하지 않은 일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찾는 데 빛이 되어 줄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이 책이 조금만 더 빨리 나왔더라면 용산에서 그 일이 있고 난 뒤에도 전국에 캔들 플라워가 흐드러지게 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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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도서관 2010-07-27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동대문도서관 입니다^^
『근대의 책 읽기』 저자 천정환 교수님의 강좌 <독자, 그들의 대한민국 - 근현대 문학과 독자의 문화사>가 9월 7일부터 매주 화요일 7시에 동대문도서관에서 열립니다.
4주차 강의에서 김선우 작가의 <캔들 플라워>에 대해 다룹니다.

강의에 관한 더욱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blog.daum.net/ddmlib/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