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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다라마바사 - 문무학 한글자모시집
문무학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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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에서는 ‘한글 자모를 바라보고, 읽어보고, 써보고, 이리저리 굴려보기도 하니까 그 메마르고 딱딱하기만 할 것 같은 기호 속에 우리네 들뜨고 기쁜 삶과 시리고 아픈 삶이 골고루 녹아 있었다.’고 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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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다라마바사 - 문무학 한글자모시집
문무학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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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배우던 처음의 마음으로 세상 앞에 서다

- 문무학 한글자모시집가나다라마바사를 읽고

문무학/도서출판 학이사/2020220/ 104/11,000

한글에 대한 단상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할 때가 생각난다. , , , , , , 카드와 자음 모음이 합쳐진 글자카드로 주입식 교육을 하고 고사리 손에 연필을 쥐게 하게 꼭꼭 눌러쓰게 하던 기억들~ 아이는 그 때 한글을 부담감으로 혹은 꼭 알아야하는 세상의 많은 것들 중 한 가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그 후 그 한 글자 한 글자에 담긴 의미 역시 어학교재 앞 단원에서 혀의 높낮이와 입모양에 따라 구분되는 표는 한글을 더 어렵게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론적 지식으로만 배웠던 한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에 새겨졌고 일상 속에서 흩어지고 모이면서 우리 삶 속에 공기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한글의 의미에 세상을 담은 시적 실험

문무학 시인은 이전 문장 부호와 품사, 낱말을 시로 엮은 시집 낱말과 홑 글자로 108개를 시조의 종장에 담은 시집 을 통해 한글에 대한 다양한 의미와 삶의 접점을 풀어냈다. 그러면서도 시인의 실험적이면서 창의적 발상이 돋보였고 한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라는 점에서 중·고등학교 검인정 교과서에 여러 편 실리기도 했다.

그럼 한글자모시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가나다라마바사는 어떤 시가 펼쳐져 있는지 그 첫 장을 열어보자. 첫 장에는 문무학 시인의 소개길이 네 줄로 간단히 적혀 있다. ‘1982년 제38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으로 데뷔하여 삶의 바다에 낚싯대 하나 걸쳐 놓고 괜찮은 시 한 편 낚아 올리려 아등바등 살고 있다.’ 시 세계로 입문한 계기를 현실적으로 현재 진행형의 삶은 이태백을 떠오르게 하는 시적인 표현으로 소개했다. 그리고 독자에게는 자신들이 무엇을 낚을 낚싯대를 드려놓고 아등바등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시인의 말에서는 한글 자모를 바라보고, 읽어보고, 써보고, 이리저리 굴려보기도 하니까 그 메마르고 딱딱하기만 할 것 같은 기호 속에 우리네 들뜨고 기쁜 삶과 시리고 아픈 삶이 골고루 녹아 있었다.’고 적고 있다. ‘오로지 한글을 아는 그것만으로 평생을 먹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 한글이 너무 고마워서 한글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은 21세기가 오기 전이었고 한글에 대한 고마움과 한글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한글과 관련되는 여러 가지를 시로 쓰는 일을 요량하게 되었다.’는 문장에서는 시인이 왜 그동안 한글에 대한 작업에 매달렸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대목이다.

 

한글 자모로 지은 시의 집, 한 채

이번 시집은 시인이 삶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한글 자모를 소재의 시 55편을 5부로 나눠서 싣고 있다. 1부 한글 자모 시로 읽기/닿소리, 2부 한글 자모 시로 읽기/홑소리, 3부 한글 자모 시로 읽기/ 겹닿소리·겹홑소리, 4부 한글 자모 시로 읽기/사라진 자모, 5부 겹받침 글자의 풍경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닿소리(자음)으로 시작하는 1부의 첫 시, 닿소리 은 훈민정음 언해본의 서문을 인용해 이 창제의 이유를 기억하라는 시로 풀어냈다. 114편의 시는 자음 14자의 원리와 어감, 의미 등을 시로 풀어냈다. 2부 홑소리(모음)에서는 삶의 구석구석을 살펴서 발견한 모음의 의미를 담아냈다. 홑소리 아픔과 아름다운이/ ‘로 시작되는 건/ 아픔 없는 아름다움/ 그 어디도 없다는 걸/ 알뜰히 알려주려고/ 함께 하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은 /모두자 권속이다/ 아버지가 그렇고/ 아내에 아들까지/ 세상사 중한 것들도/ ‘하나면 족하다/’고 쓰고 있다. 이어지는 모음 시에 삶의 구비 구비를 담백하게 풀어내고 있다. 3부의 겹닿소리, 겹홑소리를 소재로 한 시는 시인의 상상력과 다양한 실험이 빛나는 구간이다. 4부 사라진 자모에서는 아래아, 순경음비읍, 된이응, 반치음은 잃어버린 자모의 소리를 찾는 과정이 삶에 묻어있다. 5부 겹받침 글자의 풍경에서 시인은 겹받침으로 만들어진 글자의 의미에 천착한다. , , 앉다, 얹다, 못지않다, 마지않다, 읽다, 늙다, 젊다, 닮다, 넓다, 얇다, , 외곬 등 일상에 흩어진 겹받침 글자의 의미들을 다시금 되뇌며 삶의 군더더기는 덜어내고 본질만 들여다보게 된다.

 

한글을 배우던 처음의 마음으로

이 책의 작품 해설은 문학평론가 박진임이 2019시조정신문학청춘에 실었던 내용을 재수록 했는데 문무학 시인을 언어의 본질과 기능을 분석하며 언어의 능력을 예언하는 언어철학자이다.’라고 평가하면서 그의 시는 우리말의 자음과 모음이 지닌 소리의 맛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이름을 붙인다. 모든 음()들이 각자 하나의 세계와 그 나름대로의 우주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을 적고 있다. 시인이 찾아낸 음()의 세계와 나름대로의 우주는 시를 읽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 찾아낸 삶의 기쁨과 슬픔 사이 그 어디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문 시인이 2019년 한 해 동안 시조 21, 나래시조, 서정과 현실, 좋은시조, 정형시학, 문장, 시조시학등 문학잡지에 발표한 시들이기도 하다. 이전 문학적 탐구와 의미 찾기를 이어온 문 시인이 2019년에 다시 살피고 다듬어 내놓은 작품들로 여전히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집 가나다라마바사를 읽으며 가, , , , , , , 사를 읊으며 한글을 배우던 처음의 마음으로 세상 앞에 서서 삶의 장면 하나하나가 곱고 부드러운 발음으로 펼쳐지면 좋겠다. 이제 문 시인의 한글에 대한 애정은 어디 즈음에 다시 머무를지 기대된다. (남지민)

삶의 바다에 낚싯대 하나 걸쳐 놓고 괜찮은 시 한 편 낚아 올리려 아등바등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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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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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김훈 / 해냄

 

김훈의 전작의 소설은 문장 하나 하나가 심장을 파고드는 아름다움과 섬세한 묘사가 있었다. 그 여운은 김훈의 신작 소식에 미리 예약 주문을 할 만큼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배송 소식에 설레었다. 연인의 편지를 기다리는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 오랜 기억을 더듬어 본다.

 

만주에서 활동한 마동수, 흥남부두에서 남편과 아이를 잃은 이도순, 부산에서 병원 빨래를 하며 만난 두 사람 사이에서 낳은 마장세, 마차세 두 형제, 이들 모두는 고단한 대한민국 현대의 강 위를 건너고 있다.

만주에서 한의사 공부를 하던 마동수는 그 일을 그만두고 마르크스 사상의 하춘파를 만난 마동수는 배달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 일본군의 패전으로 서울에 돌아와 여러 일을 전전하다 6.25를 맞아 부산으로 피란행렬에 들어가고 거기서 흥남부두에서 혼자 살아남아 월남한 이도순을 만난다.

피난살이 가축우리 천막살이에서 두 아들중 장남 마장세는 베트남전에 참여했다가 거기서 행한 불미스러운 일로 생긴 트라우마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괌에서 불법, 은밀한 사업에 기웃거리고 아버지 장례식, 어머니 장례식에 돈을 보내는 것으로 맏아들의 소임을 한다.

마차세는 군제대 후 대학 졸업을 못하고 경제신문사 수습과 3개월의 정식 기자가 되자 미술 전공 동기 박상희와 결혼 한다. 결혼 후 해직당하고 11개월 동안 8번의 면접에서 떨어지고 고속물류 오토바이 기사로 살아간다.

군 동기 오장춘이 형의 사업과 관련이 있어 마차세는 장춘무역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 사이 딸이 태어나고 출장으로 형이 있는 괌으로 출장을 다녀오기도 한다. 어머니 이도순은 사망하고 화장을 하고 49재를 지낸다.

형 마장세는 미크로네시아 지방정부에서 마약 밀반입 혐의와 위장 고철 수출 용역을 한 혐의로 남산경찰서에 압송되었다. 오장춘은 마약 밀매 사건에 연루되어 파산했고 동부전선 근처 여관에서 자살했다. 마장세는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마차세는 취직이 되지 않아 다시 물류회사 배송기사로 일하고 부인은 옷가게를 차렸으며 딸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남루 혹은 아픔

이 소설을 보면 김훈의 전작의 아름다운 문장으로 읽히기 보다 짧지 않은 2대 세 남자의 고단한 인생스토리로 읽혀진다. 그리고 참 힘든 시대를 살았다 혹은 살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마동수 세대는 이념으로 삶을 헤쳐 나왔다면 마장세 세대는 경제력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약초를 캐러 다닌다며 한 달에 한번 정도 양식거리나 돈을 들고 집으로 들어오는 아버지를 보며 마차세는 생각한다.’ 아버지가 헤집고 다니는 세상의 가장자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가장자리를 넘어서 저쪽으로 아주 건너갈 것인지를 망설이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마차세는 짐작했다.‘라고.

마차세는 세상의 가장자리를 두리번거리며 세상의 ‘in'’out' 사이, 36천만 년 전 모든 생물의 조상인 물고기에서 아직 아가미를 닫지 못한 그 건너편을 기웃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아왔다.

 

작가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을 엮은 글이라고 하면서 등장인물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고 후기에서 적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최근 드라마에서 나오는 화려한 일상에 비하면 정말 남루하기 그지 없다. 마동수, 이도순, 마장세, 마차세, 박상희, 오장춘, 오춘파 등의 인물은 각기 자기가 주어진 사회 환경과 생활환경에서 아픔을 갖고 있다.

파란만장한 일제시대와 6.25를 건넌 마동수와 이도순은 잃어버린 가족과 시대를 살아온 아픔이 남은 생이 쓰디 쓴 약을 못 삼키고 목구멍에 걸려 있다. 베트남에서 부상된 전우를 죽이고 적진에서 도망쳐온 트라우마가 그를 귀국하지 못하게 하고 외국을 전전하게 하고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가게 한다. 그리고 장남의 무거운 책임감도 동생에게 넘기고 살아야하는 찝찝함 등이 삶의 악순환을 만든다.

마차세 또한 부모의 신산스러운 삶과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일의 어이없음과 낙태를 하러 갔다가 돌아온 출생의 비밀을 안고 삶을 있는 순응하며 살아간다.

 

현대를 살아오며 등장인물들은 나름의 시대적, 개인적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남루하지만, 아프지만 그래도 살아내었고, 살아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도 그들 삶의 쳇바퀴에 한 발을 디디고 그 바퀴 속에 뛰어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공터에서는 전작 칼의 노래, 현의 노래등에서 보여준 김훈의 유려하고 사실적, 감성적인 묘사를 내려놓았다. 대화와 기억을 더듬으며 삶의 교차점으로 소설을 엮은 공터에서는 왜 제목이 공터에서인지를 계속 생각하게 한다.

김훈의 공터에서에 들어오면 복잡한 시대, 얽히고 설킨 인연과 사건, 모든 잡생각들이 바람 한 바퀴 휘돌아 나가는 공터-막막한 세상에 몸 비빌 수 있는 작은 거점-처럼 훤해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이 책을 펼쳐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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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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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수와 그 두아들의 근현대 통과하기는 어렵고 우울하다.정상과 안정적인 삶이 없는 현실에서 견뎌내고 살아내기, 우리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의 살아낸 삶이 짠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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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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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다

종의 기원

정유정 강편소설

 

 

종의기원책 표지의 수영장 모서리와 수영장 아래로 내려가는 사다리, 수영장 물빛이 어른거리는 물비늘은 인간의 자아인지도 모른다. 그 깊은 수면 아래로 어떤 자아가 숨어 있는지 모른다. 피 비린내와 그것을 덮기 위한 락스 냄새가 작품 전체에 번갈아 풍겨나오듯 유진의 과거와 현재의 사건과 생각이 얽혀 있다.

 

찰스 다윈의 종의기원과 동명소설인 정유정의 소설 종의기원은 악에 대한 이야기이다. 악이 태어나느냐, 키워지는가? 진화하는가? 에 대한 물음이 읽는 내내 끊임없이 회전문 돌듯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원래 종의기원은 영국의 생물학자이며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이 최초로 진화론과 자연선택설에 대하여 서술한 책이다. 소설 종의기원은 찰스다윈의 종의기원과 맥락을 같이 하는 생물학 책이 아니다, 생물에 관한 것도 아니다. 인간의 악이 태어나서 진화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작가의 가상공간 군도신도시에서 살고 있는 가족에게 새벽에 일어난 알 수 없는 일을 진실을 한유진이라는 인물이 하나 둘씩 밝혀가면서 군도신도시 여성 살해 사건과 자기 집에서 일어난 사건이 자신에 귀결되는 것이며 그의 성장의 과거가 얽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침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깨어 지난 밤이 까마득한 유진. 같이 가족으로 살고 있는 친구 해진의 전화였다.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다. 아래층으로 내려온 유진은 피로 낭자한 집을 마주하게 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추해간다. 정신과 의사인 이모에게서 처방받은 약을 끊게 되면 모든 감각은 예민해지고 힘이 넘치고 밤마다 거리를 헤매게 된다.

약을 먹지 않으면 보게 되는 효과는 수영선수시절 며칠 약을 끊고 유망한 우승후보가 되었다가 대회 당일에 발작이 일어나 실패를 경험했고 수영 선수를 접었다. 그리고 리트시험을 준비하며 약을 끊었다가 해진이 영화를 찍고 있는 목포에 갔다가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어린 시절 가족여행을 갔다가 등대 아래서 형이 떨어지고 아빠가 구하러 갔다가 들 다 목숨을 잃었다. 그 후 엄마랑 살았던 유진은 친구 해진과 가족이 되어 살아간다. 해진은 할아버지와 함께 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진 어머니가 손을 내밀어 함께 살게 되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해진은 유진 어머니에게는 성실하고 믿음직한 새로운 아들이었다.

유진에게는 두 개의 자아가 있다. 청군과 백군. 청군은 현실과 타협하며 자기를 합리화 시키는 자아이고 백군은 현실주의자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아이다. 유진은 약을 끊고 사이코 패스라는 원초적인 자아를 만나게 되었다.

군도신도시 새벽녘 버스 정류장에 내린 한 아가씨를 죽이고 그것을 목격한 어머니도 살해한다. 자신에게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을 간섭하고 사이코 패스라는 낙인을 품고 있는 어머니에게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고 사진의 살인을 목격한 목격자로 인식하고 어머니마저 살해한다. 어머니를 찾아온 정신과 의사이자 유진에게 사이코패스라는 진단과 약을 먹게 한 이모까지 살해했다.

유진의 여러 행동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그때 끝냈어야 했어’, ‘너는 이 세상에 살아서는 안 될 놈이야라는 말을 남기며 유진에게 목숨을 내주었다. 친구 해진에게 모든 것이 발각되고 자수를 권유받고 군도 지구대로 해진이 운전하는 차를 눈 오는 도로를 따라 타고 간다. 그 순간 은하수 전망대 들렀다가자는 유진은 그 순간까지 해진이 자신을 놓아주길 바랐고 경찰차가 따라오는 순간 악의 본능은 해진을 밀치고 차를 바다를 향해 차를 돌진시킨다. 안전벨트를 풀고 수영선수였던 실력으로 그는 유유히 헤엄쳐 도망친다.

유진의 주먹에 바다로 빠져 숨진 형 유민처럼 해진은 바다에 빠져 죽고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아야한다는 세간의 평가와 뒷말을 들으며 유진의 죄를 뒤집어썼다. 이상하게도 운명은 유진 편이었다. 모든 범행의 증거가 해진의 영화 점퍼, 바지에 든 면도칼, 유진이 메일로 선물한 리우데자네이로 행 비행기 티켓 등 과 유진이 끌려갔다는 증언조차 운명은 유진의 편이었고 악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나는 잡고 있던 어머니의 왼손을 놓았다. 대신 내 겨드랑이에 들러붙은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아 뒤로 꺾었다. 어머니는 신음을 토하면서도 이를 빼지 않았다.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더 깊이, 더 세게, 더 자근자근 물어뜯었다. 이가 빠진 건, 어머니의 머리가 등 뒤로 완전히 꺾인 후였다. 나뭇가지처럼 가느다란 목이 좁은 시야를 가득 채웠다. 희고 얇은 살갖 위로 둥근 목뼈들이 툭툭 불거졌다. 새파란 핏대가 성난 뱀처럼 튀어올라 펄떡거렸다. 나는 면도칼을 움켜쥔 어머니의 손을 그 위로 끌어 올렸다.

수천 개의 감각들이 느릿느릿 나를 통과해갔다. 머리를 얼리는 한기, 내장을 뒤틀며 맹렬하게 번지는 불의 열기, 신경절 마디마디에서 폭발하는 발화의 전율을 규칙적으로 뛰는 내 심장 소리, 왼쪽에서 출발한 칼날은 삽시에 오른쪽 귀밑에 이르렀다.

p 8182

 

 

정유정의 소설 종의기원은 사뭇 잔잔하고 냉철한 주인공 유진이 서술자로서 사건을 이끌어 나간다. 소설 속 사건은 살인이나 사건이 놀랍고 경악스러운 것이지만 독자에게는 그리 경악할 만한 것이 아닌 듯 그저 이야기로만 전해진다. 위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범죄 사실을 알고 격분하여 자신을 물어뜯는 어머니와 그에 대응하는 유진의 아비규환의 현장을 이렇게 차분히 냉정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가의 요동치는 상상력을 글로 차분하게 풀어 낼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다.

작가 정유정은 ’66년 전남 함평 출생으로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와 건강평가 심사원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내 심장을 쏴라>로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7년의 밤, 28등을 펴냈고 이번 종의기원을 통해 한 온라인서점 독자 투표에서 한국소설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작품의 리얼리티는 혹시 이 작품을 모방한 범죄가 생기지 않을까?’, 차분하고 담담한 서술은 유진의 행동과 감정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이되지 않을까? ’하는 기우마저 든다.

고개를 돌리지 못할 만큼 섬뜩한 공포를 주는 악이 우리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지 않은지 의심하게 된다. 사이코 패스 유진이라는 인물과 그를 둘러싼 사건과 성장과정을 마치 악이 아닌 듯, 범죄가 아닌 듯 늘 일상처럼 그려낸 작가의 문체는 독자가 자꾸 악의 기원을 찾아가게 하는 호기심과 끈기를 갖게 한다.

뉴스에서 나오는 사회 범죄, 아동학대, 청부살인, 시신훼손 유기, 존속살인 등 경악할 만한 뉴스들이 자주 나온다. 이제 더 이상의 범죄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정도로. 그러나 우리는 익숙해지지 않고 그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놀랍고 무섭고, 한숨이 나온다. 유진을 통해 본 사이코패스의 머릿속은 악동시절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철없는 아이의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또 애정결핍과 잘못을 잘못이라고 꾸짖어 줄 수 있는 어른의 부재와 무관심이 불특정 사회 환경과 만났을 때 폭발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책을 읽으며 수없이 되뇌였던 악이을 발음하면 아기가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은 악하다는 성악설 믿게 되는 지점이다. 악을 키우는 것은 내 안에, 사회 안에 있다. 오직 치유는 격리나 화학적 성분의 약이기 보다는 악의 관심과 사랑의 씨앗을 키워 악의 씨앗과 싹을 감싸 안는 방법이 먼저이다. 장편소설 종의기원은 악의 최악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인간 본성의 성찰과 반성을 통한 성선과 사회의 최선을 찾아 나가게 한다.

지난 여름. 나는 피 비린내가 설핏 지나는 혹은 울부짖음이 페이지 구석 어딘가에 숨어 있는 장편소설종의기원으로 피서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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