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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평점 :
내 안에 惡 있다
종의 기원
정유정 강편소설
『종의기원』 책 표지의 수영장 모서리와 수영장 아래로 내려가는 사다리, 수영장 물빛이 어른거리는 물비늘은 인간의 자아인지도 모른다. 그 깊은 수면 아래로 어떤 자아가 숨어 있는지 모른다. 피 비린내와 그것을 덮기 위한 락스 냄새가 작품 전체에 번갈아 풍겨나오듯 유진의 과거와 현재의 사건과 생각이 얽혀 있다.
찰스 다윈의 『종의기원』과 동명소설인 정유정의 소설 『종의기원』은 악에 대한 이야기이다. 악이 태어나느냐, 키워지는가? 진화하는가? 에 대한 물음이 읽는 내내 끊임없이 회전문 돌듯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원래 『종의기원』은 영국의 생물학자이며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이 최초로 진화론과 자연선택설에 대하여 서술한 책이다. 소설 『종의기원』은 찰스다윈의 『종의기원』과 맥락을 같이 하는 생물학 책이 아니다, 생물에 관한 것도 아니다. 인간의 악이 태어나서 진화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작가의 가상공간 군도신도시에서 살고 있는 가족에게 새벽에 일어난 알 수 없는 일을 진실을 한유진이라는 인물이 하나 둘씩 밝혀가면서 군도신도시 여성 살해 사건과 자기 집에서 일어난 사건이 자신에 귀결되는 것이며 그의 성장의 과거가 얽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침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깨어 지난 밤이 까마득한 유진. 같이 가족으로 살고 있는 친구 해진의 전화였다.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다. 아래층으로 내려온 유진은 피로 낭자한 집을 마주하게 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추해간다. 정신과 의사인 이모에게서 처방받은 약을 끊게 되면 모든 감각은 예민해지고 힘이 넘치고 밤마다 거리를 헤매게 된다.
약을 먹지 않으면 보게 되는 효과는 수영선수시절 며칠 약을 끊고 유망한 우승후보가 되었다가 대회 당일에 발작이 일어나 실패를 경험했고 수영 선수를 접었다. 그리고 리트시험을 준비하며 약을 끊었다가 해진이 영화를 찍고 있는 목포에 갔다가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어린 시절 가족여행을 갔다가 등대 아래서 형이 떨어지고 아빠가 구하러 갔다가 들 다 목숨을 잃었다. 그 후 엄마랑 살았던 유진은 친구 해진과 가족이 되어 살아간다. 해진은 할아버지와 함께 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진 어머니가 손을 내밀어 함께 살게 되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해진은 유진 어머니에게는 성실하고 믿음직한 새로운 아들이었다.
유진에게는 두 개의 자아가 있다. 청군과 백군. 청군은 현실과 타협하며 자기를 합리화 시키는 자아이고 백군은 현실주의자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아이다. 유진은 약을 끊고 사이코 패스라는 원초적인 자아를 만나게 되었다.
군도신도시 새벽녘 버스 정류장에 내린 한 아가씨를 죽이고 그것을 목격한 어머니도 살해한다. 자신에게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을 간섭하고 사이코 패스라는 낙인을 품고 있는 어머니에게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고 사진의 살인을 목격한 목격자로 인식하고 어머니마저 살해한다. 어머니를 찾아온 정신과 의사이자 유진에게 사이코패스라는 진단과 약을 먹게 한 이모까지 살해했다.
유진의 여러 행동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그때 끝냈어야 했어’, ‘너는 이 세상에 살아서는 안 될 놈이야’ 라는 말을 남기며 유진에게 목숨을 내주었다. 친구 해진에게 모든 것이 발각되고 자수를 권유받고 군도 지구대로 해진이 운전하는 차를 눈 오는 도로를 따라 타고 간다. 그 순간 은하수 전망대 들렀다가자는 유진은 그 순간까지 해진이 자신을 놓아주길 바랐고 경찰차가 따라오는 순간 악의 본능은 해진을 밀치고 차를 바다를 향해 차를 돌진시킨다. 안전벨트를 풀고 수영선수였던 실력으로 그는 유유히 헤엄쳐 도망친다.
유진의 주먹에 바다로 빠져 숨진 형 유민처럼 해진은 바다에 빠져 죽고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아야한다’는 세간의 평가와 뒷말을 들으며 유진의 죄를 뒤집어썼다. 이상하게도 운명은 유진 편이었다. 모든 범행의 증거가 해진의 영화 점퍼, 바지에 든 면도칼, 유진이 메일로 선물한 리우데자네이로 행 비행기 티켓 등 과 유진이 끌려갔다는 증언조차 운명은 유진의 편이었고 악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나는 잡고 있던 어머니의 왼손을 놓았다. 대신 내 겨드랑이에 들러붙은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아 뒤로 꺾었다. 어머니는 신음을 토하면서도 이를 빼지 않았다.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더 깊이, 더 세게, 더 자근자근 물어뜯었다. 이가 빠진 건, 어머니의 머리가 등 뒤로 완전히 꺾인 후였다. 나뭇가지처럼 가느다란 목이 좁은 시야를 가득 채웠다. 희고 얇은 살갖 위로 둥근 목뼈들이 툭툭 불거졌다. 새파란 핏대가 성난 뱀처럼 튀어올라 펄떡거렸다. 나는 면도칼을 움켜쥔 어머니의 손을 그 위로 끌어 올렸다.
수천 개의 감각들이 느릿느릿 나를 통과해갔다. 머리를 얼리는 한기, 내장을 뒤틀며 맹렬하게 번지는 불의 열기, 신경절 마디마디에서 폭발하는 발화의 전율을 규칙적으로 뛰는 내 심장 소리, 왼쪽에서 출발한 칼날은 삽시에 오른쪽 귀밑에 이르렀다.
p 81∼ 82
정유정의 소설 『종의기원』은 사뭇 잔잔하고 냉철한 주인공 유진이 서술자로서 사건을 이끌어 나간다. 소설 속 사건은 살인이나 사건이 놀랍고 경악스러운 것이지만 독자에게는 그리 경악할 만한 것이 아닌 듯 그저 이야기로만 전해진다. 위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범죄 사실을 알고 격분하여 자신을 물어뜯는 어머니와 그에 대응하는 유진의 아비규환의 현장을 이렇게 차분히 냉정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가의 요동치는 상상력을 글로 차분하게 풀어 낼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다.
작가 정유정은 ’66년 전남 함평 출생으로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와 건강평가 심사원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내 심장을 쏴라>로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7년의 밤』, 『28』 등을 펴냈고 이번 『종의기원』을 통해 한 온라인서점 독자 투표에서 ‘한국소설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작품의 리얼리티는 ‘혹시 이 작품을 모방한 범죄가 생기지 않을까?’, 차분하고 담담한 서술은 ‘유진의 행동과 감정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이되지 않을까? ’하는 기우마저 든다.
고개를 돌리지 못할 만큼 섬뜩한 공포를 주는 악이 우리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지 않은지 의심하게 된다. 사이코 패스 유진이라는 인물과 그를 둘러싼 사건과 성장과정을 마치 악이 아닌 듯, 범죄가 아닌 듯 늘 일상처럼 그려낸 작가의 문체는 독자가 자꾸 악의 기원을 찾아가게 하는 호기심과 끈기를 갖게 한다.
뉴스에서 나오는 사회 범죄, 아동학대, 청부살인, 시신훼손 유기, 존속살인 등 경악할 만한 뉴스들이 자주 나온다. 이제 더 이상의 범죄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정도로. 그러나 우리는 익숙해지지 않고 그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놀랍고 무섭고, 한숨이 나온다. 유진을 통해 본 사이코패스의 머릿속은 악동시절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철없는 아이의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또 애정결핍과 잘못을 잘못이라고 꾸짖어 줄 수 있는 어른의 부재와 무관심이 불특정 사회 환경과 만났을 때 폭발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책을 읽으며 수없이 되뇌였던 ‘악이’을 발음하면 ‘아기’가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은 악‘악’하다는 성악설 믿게 되는 지점이다. 악을 키우는 것은 내 안에, 사회 안에 있다. 오직 치유는 격리나 화학적 성분의 약이기 보다는 악의 관심과 사랑의 씨앗을 키워 악의 씨앗과 싹을 감싸 안는 방법이 먼저이다. 장편소설 『종의기원』은 악의 최악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인간 본성의 성찰과 반성을 통한 성선과 사회의 최선을 찾아 나가게 한다.
지난 여름. 나는 피 비린내가 설핏 지나는 혹은 울부짖음이 페이지 구석 어딘가에 숨어 있는 장편소설『종의기원』으로 피서를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