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
펄 벅 지음, 안정효 옮김 / 문예출판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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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라고 읽고, 생명·어머니라고 쓰다

대지

펄 벅/ 안정효 옮김/ 문예출판사

 

대지라는 용어나 의미조차 잘 모르던 중학교 1학년 때 대지를 읽었다. 그 때 읽었던 대지는 땅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보다 오란이라는 여성의 삶에 더 집중해서 읽었다. 노예에서 못생겼다는 이유로 처녀로 남아 농부 왕룽의 아내가 되고 여자로서 보다 농부의 아내로서 땅과 노동에 매달리는 오란을 보며 어머니를 연상하기도 했다. 그 때 내가 바라보던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 다시 읽은 대지, 역시 농부 왕룽의 아내 오란의 마음으로 대지를 읽게 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홀아버지와 살고 있는 농부 왕룽은 결혼식 날 아버지께 차를 드리고 면도를 하고 장도 보는 농부로서의 최소한의 사치를 부린다.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부인을 맞이하러 황부자집으로 갔다. 오란은 열 살에 황부자집에 노예로 팔려와 10년 동안 부엌데기로 살았다. 왕룽은 전족도 안했고 예쁘지도 않은 오란을 얼굴이 얽지 않은 것만으로 만족하며 부인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오란은 말이 없고 부엌 살림은 물론 살뜰하게 아버지를 모시고, 밭일도 잘 하고, 아들도 연달아 두 명이나 낳았고 딸, 쌍둥이 남매도 낳아 번성한 가족을 만들었다. 왕룽과 오란이 지은 농사는 풍년이 들어 땅을 넓혀갔다. 더구나 오란이 황 부자집 땅을 사도록 말하기도 한다. 오란은 황 부자집 노예로 살면서 그 삶이 말로 표현 못할 만큼 싫었던 것인지 내 살림, 내 가족에 대한 충실함으로 그 원을 풀고 있다.

기근이 들어 왕룽 가족들은 남쪽 강소성으로 가서 구걸하고 인력거를 끌며 살게 된다. 그러다 폭동이 일고, 다시 자신의 땅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다시 농사를 짓고 살면서 안정을 찾을 때 즈음 오란의 가슴에 뭔가 불룩한 것이 있음을 확인한다. 남쪽에서 폭동이 일었을 때 부잣집 벽장 속에 감춰진 보석을 오란이 가져온 것이다.

왕룽은 오란이 남겨 달라는 진주 두 개만 남기고 무너져가는 황부자집 남은 땅을 사들인다. 왕룽은 이웃인 칭을 관리자로 두고 여러 일하는 사람을 부리며 땅을 가꾸었다. 큰아들은 학자로, 작은 아들은 장사꾼으로, 막내아들은 농부로 키우고자하는 소망을 이뤄가고 있었다. 그즈음 오란과 땅 일구기에 바빴던 왕룽은 살만하고 여유가 생기자 마음 한 켠이 허전함을 느낀다.

찻집을 드나들며 롄화라는 아이를 첩으로 받아들이고 황부자집 노예다가 주인 영감의 소실이던 토츄엔을 수발하라고 시킨다. 오란은 두 말 않고 상황을 받아들이지만 롄화와 토츄엔을 자기가 살고 있는 안채에는 들이지 않고 살림살이도 못 만지게 한다. 롄화에 빠져 있던 어느날 왕룽은 가을바람에 정신을 깬다. 그 다음 바로 바지를 무릎까지 올리고 밭으로 나간다.

그는 문간으로 나가 그의 논밭을 둘러보았다. 물이 빠져 빛나는 대지 위에서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고 태양이 이글거렸다

 

오란은 어느날 가슴에 불이 있다고 말하고 그 날 이후로 앓는다. 그 와중에도 자신의 병에는 돈을 쓸 가치가 없다고 말하며 끈질긴 생명력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남쪽으로 공부하러간 첫째 아들을 불러들여 며느리를 맞이하고 얼마되지 않아 백치 딸을 부탁하고 눈을 감는다.

 

오란은 그에게 아들들을 낳아준 어머니요 그의 집을 보살피고 그와 아버지와 아이들을 먹여주고 일을 하는 여자였다. ’

 

오란이 왕룽과 함께 생산을 했다면 작은 아버지네와 롄화, 그녀를 돌보는 토츄엔은 노동을 하지 않고 왕룽의 재산과 곡식을 축 내는 인물들이다. 또 그의 아들 세 명은 무작정 일하고 땅의 의미를 깊이 느끼는 왕룽과 달리 재산과 과시의 의미를 갖고 있다. 땅에서 난 곡식으로 곡물상에 내다팔고 부를 쌓은 왕룽은 황부자집까지 사들이고 거기에서 살게 된다.

더 나이가 들어 백치 딸과 젊은 노예 리화를 여자로 맞아들여 흙집에서 노년을 보낸다 . 그의 아버지처럼 양지 쪽 의자에서 잠을 자기도하며 자기가 일군 들판을 걷기도 한다. 손자는 사내아이 열 하나에 계집아이 여덟, 읍내에서 큰 집에 살고 있는 왕부자, 왕대인이 되었다. 이다. 군인이 되었다는 그의 막내아들의 소문에서 역사 속에 요동치는 중국 혁명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왕룽이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아들들은 그의 땅을 팔려고 한다. 왕룽은 아니지만 그의 아들 세대는 땅의 소중함을 저버리고 사치와 환락으로 허물어진 황부자집을 연상하게 한다. 그는 나이가 들어가고 봄이 오고가는 것이 희미해져 갔지만 더욱 간절해지는 것은 대지에 대한 사랑이다.

 

미국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펄 벅(11892~973)은 장로회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열 여덟 살까지 보냈다. 중국 농업연구의 권위자인 존 로싱 벅 박사와 결혼하고 두 딸을 두었고 1930년 초까지 중국에 살면서 동서양 문명의 갈등을 다룬 작품들을 발표했다. 중국이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중국에서 살았고 이후는 전쟁고아 문제에 관심을 갖고 펄벅 재단을 통해 전쟁고아 혼혈 사생아를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과의 인연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박진주라는 이름도 갖고 있는 그는 한국 혼혈아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쓰기도 했으며 한국에 펄벅 재단 한국지부를 설립하는 등 한국에 대한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대지는 생명이자 어머니

, 부동산의 경제적, 재산의 의미로 읽혀지는 요즘 땅의 본래적 의미가 퇴색되었다. 청나라 말기부터 중국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 까지 농부의 삶을 그린 대지는 자연과 여러 역경을 딛고 대지주가 된 왕룽의 땅에 대한 애착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또한 중국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노예 제도, 여성의 지위, 처첩제도 등 가족제도, 사회제도와 변발, 전족, 시장 풍경, 인력거 등의 중국의 일상이 잘 드러나 있다.

땅이 가진 생명과 생산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되는 대지를 읽으며 또 한 가지 가지게 되는 화두가 있다. ‘여성의 삶이다. 우리 어머니까지 겪어왔던 삶이기도 한 오란의 삶을 통해 전통사회 여성의 지위와 고난과 인내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아이를 낳자마자 혼자 미역국 끓여 먹고 물 길러 가셨다는 어머니들처럼 오란도 숨죽이며 산고를 혼자 겪고 바로 밥을 지었다.

산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밭으로 나가 묵묵히 일하고, 또 임신하고, 일하다가 배 아프면 슬며시 아이를 낳으러 가는 모습을 보며 여성으로서 인내만하는 어리석음에 대해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왕룽이 그토록 사랑한 것은 곡식을 키우는 땅이고 그 가치의 불변함이었다. 땅과 마찬가지로 여성은 생명을 낳고 기르는 너른 품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대지는 여성이자 생명이다.

 

생로병사, 희노애락애오욕

가난한 농부에서 가정을 이루며 안정을 찾고 가뭄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속에서도 아버지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왕룽, 땅에 대한 믿음을 가진 그도 인간이고 남자이기에 부를 쌓고 가정의 걱정이 없을 때 욕망을 나타낸다. 마냥 평온한 오란에게 얻지 못하는 미모와 앙탈부리는 매력이 있는 이성을 돈으로 찾아 나선다.

애정이 식은 후 다시 돌아가는 것은 역시 땅이었다. 그리고 그의 아내 오란에 대한 미안함과 연민, 믿음은 오란의 죽음 앞에서 그의 집에서 아무도 죽게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겠다는 다짐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좋은 관에 넣고 좋은 날을 잡아 오란을 매장하기로 한다. 그후 왕룽의 아버지도 죽어 하나 더 사놓은 관에 입관하고 오란과 같은 날 언덕의 좋은 땅에 나란히 묻는다.

저곳 내 땅에 내 삶에서 가장 훌륭했던 처음의 절반 이상인 그 무엇이 묻혔다. 그것은 마치 나의 절반이 그곳에 묻힌 셈이고, 내 집에서의 삶이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생각하며 왕룽은 흐느껴 울며, 오란이 가진 두개의 진주를 빼앗아 롄화에게 준 것을 후회하며 혼자 걸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집에서 손자가 태어나고 아들과 며느리, 작은아버지네 가족 등이 아웅다웅 살아간다.

황부자집을 사들여 살면서 큰 아들은 소작농과 집을 세내어 사는 사람들에게 횡포를 부리고 쫓아낸 사람들 집을 허물고 저택으로서의 위용을 갖추기 위해 연못을 만들고 비싼 가구들을 사다 들이며 왕룽이 모은 돈을 써간다. 모든 것에 체념을 할 때 즈음 여린 여종 리화를 보며 자신에게 남은 남자로서의 욕망과 질투를 발견하기도 한다.

왕룽의 일대기이기도 한 대지는 인간이 가지는 희노애락애오욕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삶을 살아가는 성실함, 고난, 풍요, 자식에 대한 사랑과 욕심, 만족, 욕망, 질투, 체념 등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의 덕목이 대지 속에 잘 버무려져 있다. 결국 인생이란 질문에 해답을 찾거나 혹은 그 질문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과정을 대지의 왕룽의 인생사에서 엿볼 수 있다.

외국인에 의해 쓰여졌지만 중국에서 자라난 중국을 잘 이해하고 작가의 애정을 담은 이 소설은 신해혁명 (중국인민공화국) 이전 중국의 생활사를 잘 보여준다. 사상을 덧입지 않은 중국인 다운 인물들, 중국의 시장과 들판 풍경, 생계를 이어가는 서민들의 보편적 사상을 읽어낼 수 있는 생활사 소설이기도 하다. 또 이를 통해 세계의 보편적 가치인 식량과 인간, 삶의 중요함을 다시금 느끼게 하며 사상과 정치가 서민의 밥을 먹여주는 가에 대한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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