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산책 - 일본 유명 작가들의 산책잡담기 작가 시리즈 3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외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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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에 사랑을, 두 걸음에 고독을, [작가의 산책]

 

많이는 아니지만 책 앞머리에 실린 이 산문집의 주인공들이 쓴 책을 몇 권 읽어보긴 했다. 조금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책들도 있었음을 떠올리다가 벚꽃이 그려진 표지의 산뜻함에, 그 희한하게 느껴지는 괴리감에 잠시 주춤하다 책을 읽어내렸다. 다행히도 이 책에 실린 산문들은 전에 읽었던 그들의 작품만큼은 무겁지 않았다.

 

와카야마 보쿠스이의 어느 날 점심은 벚꽃이 지는 걸 실감한 작가가 갑자기 먹을거리를 챙겨 무작정 산으로 나선, 아주 짧고 평범한 어느 하루의 몇 시간을 그린 글이다. 이 글에 큰 사건은 없다. 갑자기 산행을 떠남, 그리고 갑작스레 소나기를 맞이함이 사건이라면 사건이다. 작가는 별것 없는 주위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열심히 관찰하며 세밀하게 써 내려간다. 글의 장르 특성상 역자의 글솜씨도 어느 정도 반영이 되었겠지만 그래도 원글의 작가가 어느 정도로 꼼꼼히 그날의 시간을 글에 눌러 담았는지는 예상이 되고도 남는다. 그렇게 비가 살짝 온 산의 풍경에서는 마른 풀에서 새빨간 꽃이 피어나고 솔잎 끝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며 바다는 빛나고 잔물결은 살랑거린다.

이렇게 자신이 사는 일본의 어느 곳을, 파리를, 베네치아를, 잘츠부르크를 그들은 산책하며 저마다의 시선으로 풍경을 사색한다. 산책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작가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무거운 시간도 글을 쓰고 난 뒤 어느 시점에 와서는 조금이라도 무게를 덜 수 있었기를 바래본다.

 

작가들의 산책 잡담기라는 깨알 같은 부제처럼 산책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주가 된 이색 콘셉트의 책이 반갑다. 그들의 산책만큼 우리 중 누군가가 할 오늘의 산책도 여운 가득한 시간으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오카모토 가노코의 복숭아가 있는 풍경에서 본 마지막 글귀를 떠올려본다. ‘인간은 괴로워도 예술로 구원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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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출간 15주년 기념 백일홍 에디션)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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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았고 또 살아갑니다, [호미]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작가 박완서의 산문집 [호미]는 읽고 있자면 마음이 따스한 봄날처럼 평화로워진다. 복작이는 내 일상도 잠시 동안 숨을 죽이고 저자의 느긋함과 여유로움에 분주했던 내 시간도 조용히 젖어 든다.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을 보고서야 이 산문집이 저자가 일흔이 넘어 쓴 글들의 모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거 거저먹은 나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보고 피식 웃었는데, 과연 그 말이 무색하지 않게 산문집은 일상과 삶을 연결 짓는 날카로운 시선에 탄탄한 필력이 더해져 있다.

 

글의 특성상 별 의미는 없어 보이지만 네 개의 큰 주제로 산문들이 구분되어 있는 이 책에서는 꽃과 나무를 사랑한 저자, 일상과 주변인들을 사랑한 저자, 가족과 특별히 더 가까웠던 이들을 사랑한 저자의 모습 등이 각각 저마다의 형태로 드러난다.

특히 누구나 한 번쯤 살며 경험해보았을 깁스로 인한 생활의 불편함을 주제로 한 내 인생에서 가장 긴 8은 저자의 꼼꼼한 시선과 차분한 필체가 어우러져 다분히 산문의 특성을 드러낸다. 저자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긴 8에서 전화 때문에 급히 움직이다 미끄러져 오른손 팔목이 부러지는 바람에 한 달가량 깁스를 하며 평소에 몰랐던 불편함에 당황스러워하기도 하고 운수 안 좋은 날에서는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우연히 마주친 모자와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듯하다가 조그마한 반전을 담은 이 이야기는, 그래서 비슷한 제목의 유명한 또 다른 글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가 세상을 떠나고 근 10년이 다 되어서야 그녀가 남겼던 또 다른 글들을 읽는 감회는 남다르다 주변의 소소한 것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글을 눈에 담는 여름밤, 빠르게 흘러가는 이 시대의 시계도 조금은 느리게 똑딱거리는 듯 느껴져 왠지 모를 뭉클함마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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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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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사랑의 소용돌이에 빠진 여자, [안나 카레니나]

 

필독서 100’, ‘권장 소설’, ‘전 세계 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소설, 딱 봐도 남달라 보이는(?) 무게감 있는 타이틀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평범한 듯 보이지만 대담한 주제와 생명력 가득한 캐릭터들이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히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달리 불행하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사랑과 결혼 말고도 윤리와 죽음, 인생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에 관한 저자 톨스토이의 생각이 드러나는 작품이라 불린다. 하지만 몇 번을 읽어도 처절했던 안나의 삶과 사랑에서 좀처럼 시선을 거두기가 어렵다.

 

안나가 일단 표면적으로는 불륜을 저지르는 나쁜 여자이지만, 그녀 속에 감춰진 공허함과 아픔을 나도 몰래 천천히 음미하며, 그렇게 그녀의 심정에 동화되어 읽게 된다는 뜻이다. 또 탄탄한 문장력으로 무장한 묘사 속에서는 당시 러시아 사교계를 향한 저자의 냉정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불륜을 등장시켜 비판받게 하지만 그 속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던 안나의 마음을 세심하게 묘사했던 것은, 어쩌면 그녀의 면죄부를 조금이나마 독자들의 손에 쥐어주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지. 남편 카레닌에게 드러나는, '불륜을 저지른 아내 때문에 자신이 겪게 될 어려움'을 먼저 걱정하는 태도 역시 읽는 사람이 쉬이 그의 편을 들 수 없게 하는 점이다.

아름다운 외모에 명랑한 성격을 가졌던 그녀, 러시아 정계에서 인정받는 정치가 남편과 귀여운 아들이라는 단란한 가족이 있었던 그녀, 누가 보아도 완벽한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 실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던 공허함이 있었고, 마치 그 틈을 노리기라도 한 것처럼 운명 같은 위험천만한 사랑이 다가온다. 그리고 그 사랑의 불길은 너무 크게 타오른 나머지 안나의 삶마저 삼켜버린다. 모두를 뒤로 한 채 다시 찾아온 애정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지만, 그렇게 내디딘 발걸음을 돌릴 수도 없는 막다른 길목에서, 그렇게 안 그래도 힘겨운 사랑이 흔들린다. 그리고 결국 기찻길에 몸을 던지고 나서야 감당할 수 없던 마음의 크기로부터 비로소 해방된 그녀의 인생을 지켜보며 도덕적인 교훈보다는 그녀를 대신한대도 수긍할 법한, 다소 감상적일지 모르는 회한에 젖는다.

또 다른 등장인물들이자 소설 속 한 축을 나눠 담당하는 키티와 레빈 커플의 이야기 역시 가정과 행복의 가치 등 나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련하게, 하지만 열정적으로 삶을 불태운 안나의 이야기에 더 끌리는 이유는 다분히 개인적인 것이라고 해두자.

 

본문에 앞서 저자가 적은 '복수는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으리라.'는 문장은 로마서에 나온 말이다. 그래, 그 누가 안나의 죄를 묻고 벌을 내릴까. 결국 안나가 스스로, 그렇게 죄 같은 사랑으로 생명을 끊는 벌을 끌어안는다. 열정과 불안이 공존하는 안나의 삶과 성실과 신앙이 함께 했던 레빈의 삶은 대비되어 우리에게 정도(正道)를 제시하지만, 인간의 미성숙함 속에서 때로는 무책임이라는 단어가 당연한 듯 함께 하는 불같은 사랑을 온몸으로 보인 안나의 삶은 작지만 신경 쓰이는 성가신 울림이 되어 안 그래도 스산한 겨울밤을 찾아온다. 책을 덮은 이 공간에 흐르는 공기를 무겁도록 적셔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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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해빗 - 완전한 변화로 이끄는 습관 설계
케이티 밀크먼 지음, 박세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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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가능한 습관 조직을 위해, [슈퍼 해빗]

 

우리의 순간이 하나의 시간으로, 또 그것들이 차곡히 모여 어쩌면 영원까지도 확대될 수 있는 연장선에서 바라볼 때 습관이 우리 전체적인 인생을 크게 좌우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보다 먼저 삶을 살아온 많은 사람이 그토록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좋은 습관 들이는 방법에 관해 열을 올리며 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를 슈퍼 해빗으로 만들어 줄 슈퍼 해빗을 소개하는 이 책은 여덟 개의 장으로 나누어 우리의 장기 습관형성을 가로막는 7가지 걸림돌을 분석하고 그것들의 제거 방안을 제시한다. 시점, 충동, 미루기, 망각, 게으름, 자기 의심, 동조라는 여러 내용 중에서도 첫 장, 시작하기에 관해 다룬 내용이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2022년도 벌써 3월이 가까워지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활시위를 놓은 순간 사라져 보이지도 않는 활처럼 새로운 해의 시간이 저만치 달아나고 있을까 싶다. 사람들은 새로운 시작에서 자신의 새로운 시작점을 찾는 경향이 있다. 실패를 과거로 넘겨 버리고 눈앞에는 희망을 좀 더 낙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책에서 말한 관련 내용 중 이미 잘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방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문장은 정말 주의해야 할 점으로 보인다. 이렇듯 책은 여러 연구와 사례를 들어 나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전 세계의 각양각색 사람들이 습관 들이기에 거듭 실패하며 남겨준 중요한 교훈을 알려준다.

 

목표로 하는 더 큰 단계로 진입하려면 걸리적거리는 특정 단계나 과정을 반드시 뛰어넘어야 한다. 올해 세운 목표가 있고 평소 습관이 걸림돌이 된다면 일단 그 습관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바꾸어나갈지를 살피는 것이 현명한 자세이다. 습관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 또 제대로 된 습관을 기르는데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사람이 작심삼일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사자성어와 결별한, 그야말로 알찬 한 해를 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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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꾼 사랑의 명언
석필 편역 / 창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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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내 인생을 바꾼 사랑의 명언]

 

말과 글은 언어다. 마음 속에 있는 외침을 꺼내어 나름대로의 형상으로 조각한다.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몽글거릴 때, 그 마음을 표현한 말과 글을 보면 감정이 폭발한다. 말을 하려 입을 떼고 글을 쓰려 손을 움직이는 순간, 그것들은 마치 내 내면의 것들을 끄집어내려고 작정한 듯 휘몰아치고 그렇게 뽑아내어 간다. 사랑의 명언만 담은 책이라니, 의도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앞장서고 이내 두근거린다.

 

이 책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의 종류와 그 형태 등을 10가지로 분류해 그 테마에 맞는 명언을 실어 구성되었다. “당신에게 모든 불만을 다 쏟아내려 했는데, 결국엔 당신을 그리워한다는 말만 할 것 같습니다.(I had planned to say all these terrible things to you, but in the end, I just want to tell you I miss you)”라는 명언은 거의 첫 부분에 실려 있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왠지 모르게 머릿 속에 강하게 남아 있었다. 미움과 증오도 사랑이 있기에 시작된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던가,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라고. 동물을 사랑하기 전에는 영혼이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것이다.(Until one has loved an animal, a part of one's soul remains unawakened)”라는 명언에서는, 반려 동물과 함께 하기 시작하면서 매일 매일 다시 태어난 듯 하다고 털어 놓던 지인 P의 고백이 생각난다. 그녀는 이성 간의 사랑 말고도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랑 중에, 자신이 종족이 다른 털짐승과 이렇게 사랑에 빠질 줄 몰랐다며 황홀해했다. 그런가 하면 나의 밤은 당신 때문에 화창한 새벽이 되었습니다.(My night has become a sunny dawn because of you)”라는 말은 한참 전에 너 때문에 내 세상이 봄이 되었다라고 일기장에 끄적였던 내 언어와 닮았다. 표현은 조금 달라도 저 명언을 말하고 쓴 누군가의 마음도 나와 같았으리라 확신한다. 어두웠고 추웠던 세상에 밝고 따스한 불을 켜주는 존재, 그 존재의 이름이 사랑이 아니고 또 무엇일 수 있을까.

 

숱한 세월을 거쳐 끊임없이 변주되어 노래되는 주제가 다름 아닌 사랑인 것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 책에 담긴 수많은 명언들의 저자들도 우리처럼, 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지구의 후손들처럼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고, 또 앞으로 사랑할 날들을 맞이할 운명이기에 저리도 귀한 말들을 남겼다. “꽃이 너무 예뻐서 선생님 주려고 꺾어왔어요.”라고, 이름 모를 들풀 한 송이를 내밀던, 지금은 얼굴조차 희미한 그 아이의 말만큼 이 책의 말들도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을 담뿍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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