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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에서 나눈 대화 - 귄터 그라스, 파트릭 모디아노, 임레 케르테스… 인생에 대한 거장들의 대답
이리스 라디쉬 지음, 염정용 옮김 / 에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거장들이 이야기하는 “나에게 죽음은 이런 것이다”, [삶의 끝에서 나눈 대화]
누군가가 삶의 끝, 죽음에 관해 묻는다면 제일 먼저 두려움, 초조함, 불안감, 슬픔 등 어두운 색의 느낌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그런데 이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 가다보면 책 제목을 보고 예상한 내용과는 좀 다른 방향으로 글이 전개되는 점에 조금 놀라게 된다.
유럽 문학 거장들 19명과 인터뷰어가 나눈 죽음, 삶의 끝에 관한 인터뷰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의외이다. 생각보다 그들은 죽음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아니, 그들의 인터뷰를 천천히 읽다보면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맞이하는 설레임마저 느껴진다. 쥘리앵 그린은 죽음이 두렵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두렵지 않으며 영혼이 가는 곳과 무슨 일이 벌어날 지가 궁금하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한다. 또 일제 아이힝어는 앞날에 대해 바라는 게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나의 앞날이 너무 오래 남아 있지 않기를 바란답니다.”
“나는 주어진 모든 순간들을 이미 겪었다. 이제 다 끝났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살아 있다.”
200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임레 케르테스의 말이다. 이 말에서 느낄 수 있듯, 그들의 대부분은 죽음을 삶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들에게 죽음은 주어진 시간 중에 마지막에 찾아오는 또 다른 영역의 시간일 뿐인 것만 같다.
인터뷰의 끝에는 편집부의 배려로 ‘작가 정보’라 하여 간략하게 작가들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다룬 글이 실려 있다. 독자들에게 어쩌면 생소하게 느껴질지 모르는 유럽의 작가들을 이해하고 책의 내용을 좀 더 심층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한국 독자들에게 비교적 익숙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귄터 그라스의 인터뷰도 실려 있는 점도 반갑다.
시작만큼 끝도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탄생보다는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걸음을 걷고 있는 셈이다. 살아있는 지금이 치열하기에 죽음에 관한 사유를 하는 것 자체가 사치로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이들이 말하는 삶의 마지막을 책으로나마 엿보는 것은 그렇기에 더 귀한 기회이다.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우리를 마중 나올 죽음이란 다정한 친구는 생각만큼 그리 간단히 파악되는 녀석이 아니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