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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습관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8월
평점 :
너를 사랑하는 당연함으로, [사랑하는 습관]
“사랑도 습관이야.” 이 말을 드라마에서 어느 배우가 들려주었던 것인지, 아니면 가까운 지인 중 한 명이 건네었던 것인지, 어쨌든 간에 내 머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랑하다’라는 말은 엄연한 동사(動詞)인 만큼 ‘먹는 습관’,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처럼, ‘습관’이라는 말 앞에 붙는 것도 문법상으로는 전혀 어색할 이유가 없다.
2007년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의 단편 소설 중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아홉 편의 단편이 실린 단편선 [사랑하는 습관]이 출간되었다. 책 제목과 동일한 단편 ‘사랑하는 습관’ 외에 ‘그 여자’, ‘동굴을 지나서’, ‘즐거움’, ‘스탈린이 죽은 날’, ‘와인’, ‘그 남자’, ‘다른 여자’, ‘낙원에 뜬 신의 눈’ 등 총 아홉 개의 잔잔하면서도 담담한 정서가 깔린 작품들이 한국 독자를 찾아왔다.
‘사랑하는 습관’에서 주인공 조지는 연극계의 명사로 사회적인 지위와 적당한 부를 지녔지만 항상 사랑을 찾고 있다. 그는 몰랐지만 습관처럼 사랑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난봉꾼’이라 칭할 만큼 여러 여자를 만나고 끊임없이 사랑의 감정을 교감할 누군가를 찾아 헤매었다. 젊고 매력적인 새 부인과 남 보기에 전혀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결혼 생활을 시작했지만 밤이 되면 여전히 남몰래 외로워하던 조지에게, 새 부인 보비는 자신의 마흔 번째 생일날 이제 사랑 같은 것, 그런 것 할 시간이 없다며 체념인 듯, 결심인 듯 말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말에 조지는 심장이 부풀고 눈에 피가 차오르는 듯한 괴로움을 느낀다. 그는 이미 지독하게도 사랑이 단단히 습관이 되어버렸으므로.
이 ‘사랑하는 습관’ 외에도 실린 단편들은 모두 노동당 등 그 시대 사회상을 반영한 주인공들의 생활이 녹아있다. 1950년대 초반 영국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도 독자에게는 적지 않은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덧붙임 하나. 불현듯 원제가 궁금해져 찾아보았다. ‘The Habit of Loving’. 기대와 달리(?) 한국어 제목인 ‘사랑하는 습관’은 사뭇 충실한 번역이었다.
덧붙임 둘. 책의 단편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랑하는 습관’의 주인공 조지는, 아마 그럴 것 같다. 삶이 다할 때까지 보비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를 그렇게 쭉 끊임없이 사랑했을 것 같다. 알다시피 습관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