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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법이 될 때 - 법이 되어 곁에 남은 사람들을 위한 변론
정혜진 지음 / 동녘 / 2021년 9월
평점 :
신문기자 출신의 변호사인 저자 정혜진의 법학 도서 『이름이 법이 될 때』. 미디어에서 한 번쯤은 들었을 법한, 누군가의 희생에 가까운 굵직한 사건들로 인해 생겨난 ‘법’이 바로 이 도서의 주제이다.
김용균법, 태완이법, 구하라법, 민식이법, 임세원법, 사랑이법, 김관홍법. 책에서 다뤄지는 모든 법이 국회의 발의되고 공포·시행(일부 법은 진행 중에 있음)되는 모든 과정에 대한 상세한 정보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법들에 공통점은 분노가 만들어낸 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약자들의 고통에 쉽게 분노하며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쉬운 분노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분풀이처럼 가해자를 모욕하고 피해자를 동정하고선 금세 잊는다. 이 책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의 관심, 즉 여론이 입법 과정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그렇기에 양면성을 지니는데 빠른 입법의 강력한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언론에 본인을 내비치길 원하는 국회의원들과 그를 이용하는 언론에게 명분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필요하기에 국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의원실에 설문지를 돌리고, 의원들과 보좌관들에게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하고, 그들을 새벽까지 기다리기도 하며 처절해지는 것은 피해 당사자들의 몫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함께 고심하는 것, 지속해서 관심을 기울여 손을 놓지 않는 것, 극적인 감정에 앞서 무조건 선동되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다.
p.150 “우리 가족의 자랑이던 임세원 의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의료진의 안전이 지켜지고,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적절한 정신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임세원 의사의 유가족이 장례식장에서 밝힌 공식 입장이다. 유가족은 가해자의 엄벌보다도 정신질환자를 향한 사회의 낙인을 염려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이 사회에 만연한 정신질환에 대한 혐오를 지적한 것이다. 사회의 편견은 정신질환자가 올바른 치료를 받고 사회로 돌아가는 것을 어렵도록 한다. 유가족의 현명한 대처는 비난만이 앞섰던 우리를 놀라게 했고 그 결과 임세원법이 제정될 수 있었다.
p.106 가족 형태는 너무나 다양해졌는데 법은 흑백사진이 꽂힌 액자처럼 고정되어 있지는 않은가.(구하라법)
p.168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책임이 가족에서 국가와 사회로 변화하는 전환기에 와 있는데 그걸 빨리 대처를 하지 못했기에 이런 사고가 생긴 것이죠.(임세원법)
우스갯소리로 ‘사람이 죽어야만 법이 바뀐다’라는 말이 있다. 마냥 부정하거나 또 웃을 수도 없다. 생각보다 많은 법들이 죽음에 빚을 지고 있다. 우리는 법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한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은 절대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가능성의 폭을 더욱 넓힐 필요가 있다. 법의 테두리 안에 속하지 못한 또 다른 우리를 위해.
이 책은 법에 문외한인 독자들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입법 과정이 쉽게 설명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기록의 가치가 절실히 빛나는 책이다. 사실을 나열하며, 과정을 함께 톺아가며 우리에게 통찰할 거리를 준다. 이 짧은 후기는 저자의 말로 마무리하려 한다.
p.13 누군가의 이름이 붙은 법을 들여다보는 건 양면 거울을 보는 것과 같았다. 한쪽으로는 이름을 가진 이 혹은 그 이름을 법에 내어준 이의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는 그 이름의 법을 만든 우리 사회의 모습이 보였다. 양면을 다 보아야 이름이 법이 되는 이야기가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