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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평점 :
우리는 화려한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드라마의 메이킹 필름을, 연인의 민낯을 궁금해한다. 기대가 큰만큼 실망스러울 때도 있다. 때론 몰랐을 때가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지리멸렬한 발걸음에는 나약하고 인간적인 솔직함이 있다.
'벌거벗은 미술관'은 고전은 없다, 문명의 표정, 반전의 박물관, 미술과 팬데믹이라는 주제로 예술이라는 거대한 달의 뒷면을 보여주고자 한다. 고전, 문명, 박물관, 팬데믹.. 하나같이 크고 무거운 주제들이지만 작은 틈으로 날카로운 눈빛을 보여주는 표지처럼 구체적인 사례들로 주제의 민낯을 보여주곤 한다. 고전미술은 너무 많이 신비화 되었으면 그것은 그리스인 조각상의 완벽한 육체가 영화 올림피아의 포스터를 통해 현실로 재현될 수 없는 꿈 속의 것임을 보여준 것과도 닮아 있다. 미술 작품 속 표정을 찾으며 시대를 읽어보았으며 약탈의 역사와 박물관, 미술관의 흐름이 함께함도 살펴보았다. 루브르에 걸린 <가나에서의 혼인 잔치>는 베네치아의 성당에 있을 때 본연의 모습대로 빛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팬데믹과 관련하여 흑사병을 시작으로 데카메론, 에곤실레, 뭉크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이야기를 보았다. 팬데믹 전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보았었다. 카메라를 들이댈 준비가 된 관광객에게 천장화를 올려다볼 기회만 준 성당에서 기억하는 건 몇 분 간의 얘기치 않은 고요함과 이어지는 뒷목의 뻐근함이다. 감동 받을 준비가 된 관광객에게 감동은 번개처럼 오지 않았다. 그러나 고요한 몇 분여 간 그 수많은 사람들을 담고 있는 거대한 공간을 성서의 이야기로 채워간 화가의 시간이 물직하게 다가왔다. 이 책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도 이와 닮았으리라 생각했다.
우리는 연인 앞에서 본연의 나를 보여주고자 한다. 있는 그대로 사랑받기를 원한다. 반면 미술은 예술은 우리에게 그런 걸 요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화려한 겉모습으로 대중에게서 점점 높은 곳으로 멀어져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살짝 드러낸 민낯으로 인간이 만든 작품 속의 인간다운 면을 드러낸다. 덜 빛날지는 모르지만 어찌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숨겨진 이야기 속에서 더 친근함을 느끼는 나이기에 오늘의 예술에 한 발짝 다가간 느낌이 든다. 솔직한 나로 사랑받을 때 예술도 기뻐할 거라는 바보같은 생각도 함께 했다.
개인적으로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좋아한다. 에필로그 없이 끝나는 책은 메신저를 쓰던 시절 대화 중에 로그아웃 해버린 친구를 향해 마냥 이야기를 하는 기분이다. 이 책은 참고문헌과 작품 목록까지 갖추어져 책을 만드는 과정까지 짐작하게 하는 점이 참 좋았다. 개인적인 즐거움이라 기쁘게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