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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의 유쾌한 소설 읽기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3년 11월
평점 :
난 소설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책만큼은 편식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소설에는 잘 손이 가지 않는다. 소설을 읽고 나면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느끼면서 부터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등장인물, 사건, 좋았던 문장..하나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아 허무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다 마광수 선생님의 소설 설명을 들으면 소설을 보는 눈이 생길까 해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내 계획은 완전히 깨어졌다. 하지만 소득이 없는것은 아니다. 내 바탕에 깔려있는 많은 선입견들을 깨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고 한 번 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난 이 책을 보면서 소설을 설명하는 책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광수 선생님이 하고싶었던 말을 소설을 매개로 이용해서 전달하고 있는 책이란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것은 소설과 성에 대한 철학이다.
소설의 가장 큰 목적은 재미다. 하지만 우리는 유독 소설에 대해서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도덕적이어야 하고 교육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독자 뿐만 아니라 작가에게서도 나타난다. 이것은 작가의 연륜이 깊어 질수록 심화되는 현상을 보인다. 마광수 선생님은 젊어서 대작을 남긴 작가들이 노년에 오히려 마땅한 대표작이 없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다. 소설의 본질을 잊어버리고 사회의 지도층으로 교육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가장 재밌어하는 주제가 무었일까? 바로 사랑이고 성이다. 이 주제는 수천년이 지나도 인류의 가장 큰 관심사중 하나일 것이다. 오래전의 이야기라도 사랑이야기는 여전히 인기 있고 재미있지 않은가? 마광수 선생님은 여기서 더 나아가 변태적인(프로이트의 관점으로) 사랑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변태적인 성 문화를 드러내는 것이 곧 문화의 발전이라고 본다. 사실 우리는 변태적인 성향이 조금씩은 있지 않은가? 크고 작음의 문제이지 전혀 없다고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소개하는 소위 '변태적인' 소설들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카타르시스를 느낀ㄴ 것이 그 증거다. 하지만 그것을 감추고 자신은 깨끗한 척 하고 있는것이 위선이 아닐까. 특히 소설가라면 자신과 독자를 속이는 것이 된다.
나는 여지껏 사디즘, 마조히즘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애써 무시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것이 모두 변태라고 매도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여지껏 생각해 보지 않은 이런 '변태적인'단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것이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이와 더불어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워준 책이기도 하다. 너무 당연한 것을 이제까지 생각도 하지 않고 산것은 아닌가 반성해 본다. 마광수 선생님의 생각은 어떻게 보면 진보적이기도 해서 몇몇분들은 불쾌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는 차원에서라도 이 책은 충분한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해서 추천 서평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