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산드라의 거울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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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예측하는 데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에서도 미래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 그 순간의 시각을 바탕으로 미래를 추측하는 학문적인 접근에서는 시간을 두 가지 종류로 보고 있다. 하나는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공통의 시간으로 언제부턴가 존재하고 있어 지금을 통과해 앞으로도 계속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이고, 또 하나는 누구에게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라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각자의 인식에서 시간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흐를 수 있으므로 미래를 보고자 하는 특정 시점부터 시작하여 하나의 특화된 상태로 흐르는 시간이다.

다른 형태로는 깊은 명상 상태에서 접근하는 방법도 있다. 어떤 이들은 이미 기록된 아카식 레코드에 접근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명상 상태가 아니라도 고도의 집중된 의식과 실제적인 매개체를 통해 미래에 접근하는 방식도 있으나 어느 것이든 본인의 수행 상태가 맑고 진중해야 함은 바탕이고, 기본이다. 그 외 타로나 주역의 괘와 효사 등의 상징들을 통해서 미래를 해석하는 방법도 있다. 또한, 과학적인 분야에서 확률적인 분석은 하나의 공인된 방법이며 현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을 배제하고, 그냥 미래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말하는 예지몽이나 투시 능력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좋든 싫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아직 가치관이 확립되지 못한 어린 아이나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는 청소년들로서는 이 자체가 견디기 힘든 시련이 될 수도 있다. 기존의 통념을 지닌 사회에서 정상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능력을 보이는 아이들 상당수가 자폐증세를 지녔거나 어떤 면으로든 여느 아이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며 무리에 어울리지도 못하는 경향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한 명의 여자로 인해 망쪼에 제대로 빠진 '트로이' 에 나오는 예지자와 이름이 같고,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카산드라'는 자신의 나라에 닥친 파국을 미리 예지하고, 그것을 알리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실현되었다. 어릴 때의 기억을 잃어버린 이 카산드라가 그 카산드라의 환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17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카산드라는 미래를 본다. 하지만 말할 수 없다. 아무도 믿어줄리 없지만 들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편안히 거처할 수 있는 안식처는 어디고 함께할 사람들을 누구인가.

기억 을 잃고 베일에 쌓인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고 그 실마리를 풀기 위해 오빠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보는 관점에 따라 세상이 버린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스스로 세상을 버리고 등졌을 수도 있는 '대속' 주민 4인방과 맺어지는 인간적인 관계가 작품의 주요 흐름이다. 이들과 함께 하는 동안 본의 아니게 미래를 보는 능력으로 인해 발생할 테러들을 막는 민간 특공대(?)의 역할을 하며 알게된 사실. 그것은 자신의 오빠에게는 '실험 23', 자신에게는 '실험 24'의 수수께끼 같은 딱지가 붙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 베르베르가 이전에 말했던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바로 이 작품인데 그 한국인은 김이라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남한 출신이 아니라 북한 출신으로 어릴 때 부모와 함께 탈북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프랑스로 오게 되었으나 그 사회에 적응을 못한 천재 컴퓨터 해커로 나와 그들의 아지트를 디지털 요새로 만들고 관리하며 주인공을 도와주는 인물이다.

주인공 카산드라가 미래를 보긴 하나 정작 자신의 오빠가 보았던 2012년의 상황에 대해서도 보았는지의 여부는 책에 나오지 않지만 어쨌든 그녀의 오빠가 제시하는 의견에 동의를 하지 않는다. 천재적인 두뇌를 사용하여 모든 변수들을 고려한 확률 방정식을 동원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최고의 수학자인 그녀의 오빠는 2012년 12월 21일과 2013년을 가장 최악의 상황으로 예측하지만 카산드라는 인류가 스스로를 위해 세상을 바꿀 가능성이 남아 있음을 믿는다.

그리하여 태초에서부터 이어져 지금의 그녀 몸 속에 심어진 DNA와 여지껏 환생을 거듭해오는 카르마의 과정에서 맺어왔던 인연들과 그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고, 꿈 속에서 고대의 카산드라와 같이 시간의 나무 속으로 들어가 세상에 펼쳐질 여러가지 모습의 미래들 중에서 어떻게 하면 인류에게 보다 긍정적인 모습으로 실현될지를 고민하며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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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양자론 - 개정판 뉴턴 하이라이트 Newton Highlight 2
일본 뉴턴프레스 엮음, 와다 스미오 감수 / 아이뉴턴(뉴턴코리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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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세기 물리과학의 양대산맥은 아인슈타인 박사의 '상대성 이론'과 여기서 소개할 '양자역학'입니다. '양자론(quantum mechanics)'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확고하게 정해진 결과는 없고, '~일지 모른다'는 불확정성을 바탕으로 한 확률 개념의 추론이 있게 됩니다. 이점은 아인슈타인 박사가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며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었고, 이후 양자역학과는 타협을 하지 않고 다른 행보를 하게 되는데 상대성 원리를 바탕으로 맥스웰의 전자기와 중력 이론을 통합하여 우주의 법칙을 아우르는 '통일장 이론'을 연구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그것은 후학들의 몫으로 남겨졌습니다.

<Newton Highlight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양자론 개정 신판>은 2006년 10월에 간행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양자론>의 개정판으로 [양자론의 기본 개념과 핵심 내용, 양자론의 배경이 되는 원자와 전자, 빛이 가진 파동과 입자의 양면성, 양자론의 핵심, 양자론에 관련된 주요 과학자들, 다중 세계 해석의 개념, 양자론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코펜하겐 해석을 둘러싼 유명한 논쟁] 등의 풍부한 자료들을 싣고 있습니다.

정작 아이러니한 것은 양자론에 관한 것을 제일 먼저 제시하면서 언급한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 박사였다는 것이죠. 그 후, 양자역학에 매료된 젊은 과학자들의 참여와 연구가 부지기수로 늘어나면서 빛과 전자 등 소립자에 대한 비밀이 계속해서 밝혀져 왔습니다. 양자역학의 연구로 나온 결과들은 하나같이 명확하게 정해진 것은 없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말해주고 있으며 이는 아인슈타인 박사가 그리도 염원했던 모든 것이 확고한 소위 '대리석 우주'와 달리 이 세상을 불완전한 '나무조각 부스러기의 우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논란은 현재까지 여전히 계속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어서 오늘날에도, '양자역학'쪽이 이 세계를 더 잘 설명해주고 있다라는 많은 과학자들이 있는 추세인 한편, 아인슈타인의 생각을 옹호하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결국, 이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한 통합적인 연구가 진행되어지기 시작했는데, 최근 들어 그 성과가 이론 물리학 분야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른바 '초끈(Super String) 이론'입니다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정말 아쉬운 것은 이러한 이론의 출발점이 바로 '양자역학'이었다는 것인데, 아인슈타인 박사가 조금만 아집을 접고, 보다 열린 사고로 양자역학을 면밀히 검토했다면 아마도 상대성 이론과 함께 '양자중력이론'이 지금보다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거겠죠.

원자 속을 들여다 볼 때, 전자가 어디에 있을까요. 당연히 원자 속 전자구름 안 어딘가에서 눈에 띌 것입니다. 그럼, 속을 들여다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전자가 있는 위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고등학교 물리시간에 배운 둥근 원은 틀린 그림이 됩니다. '전자가 위치할 수 있는 공간 어디에도 있다.'라고 말해야 하며 그것을 표현하기에 알맞은 형태의 그림이 바로 위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오랫동안 다른 곳에서도 보며 자라왔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국기 안에 그려진 모양 말입니다. 실제로 양자역학은 '역 사상'의 '음양론'과 '상보성'이라는 개념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빛은 아주 신비한 존재입니다. 기존엔 파동으로 인식되다가 아인슈타인 박사에 의해 입자의 성질이 증명되면서 한바탕 소동 끝에 파동과 동시에 입자로 여기지게 됩니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뭘 그런걸 가지고 논쟁을 벌이나.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같이 가지면 안되남?'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그때는 아무것도 몰라서 그랬기도 했지만 터무니 없는 생각이 때로는 효과가 있을 때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적어도 파동과 입자 하나만 고수하여 편갈라 싸우는 일은 없을테니. 그래도 이러한 논쟁 때문에 발전이 있어온 것도 사실이었죠. 그러나, 그 모든 논쟁을 뒤로 하고 빛은 원래부터 파동이면서 또 입자의 성질을 같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태초에 빛이 제일 먼저 있었고, 이로 인해 만물이 생겨났다. (성경인가?) 이러한 빛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이 '양자역학'입니다. 상대성 이론이 빛의 속도에서 이해가 가능한 이론이라면 양자역학은 원자크기 단위의 세계에서 설명이 이루어지는 학설로 이 두 이론은 20세기 과학계를 이끌어온 쌍두마차 역할을 하며 오늘날까지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빛의 두 얼굴을 동시에 볼 수는 없고, 파동과 입자 중 하나만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입자의 모습을 또 다른 어떤 때는 파동의 두 가지 모습들 중 하나를 보는 것은 확률의 개념으로써 설명되며 이를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합니다. 이러한 논리로 결론 지어지는 빛의 성질은 '속도를 알면 위치를 모르고, 위치를 알면 속도를 모른다'로 나타나는데, 우리가 어렸을 때 자주 하고 놀았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아인슈타인 박사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양자역학의 연구자 '슈뢰딩거'는 그 유명한 '파동 방정식'을 만들었는데 이로써 모든 파동과 움직임에 대한 설명이 가능했습니다. 또 하나 양자역학을 설명하기 위한 가상의 장치를 고안했으니 그것이 바로 '슈뢰딩거의 고양이'입니다. 일정시간이 지나면 독가스가 나오는 작은 상자 안에 고양이를 두고, 상자의 뚜껑을 덮은 다음 안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일정시간이 지난 후엔 어떻게 될 것인가? 직접 눈으로 보기 전엔 알 수 없으니 모든 가능성이 다 유효하게 됩니다. 하지만 막상 안을 들여다보면 그 모든 가능성들 중 한 가지만 볼 수 있게 되는데 빛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세월에 따라 양자론도 발전해 나갔고, 아인슈타인 박사가 죽은 후 '다중 세계' 이론이 등장하게 됩니다. 여러가지 가능성들 중 확률이 높은 한 가지가 결정되면 나머지 가능성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물음에서 나온 이 이론에 의하면 그 나머지 가능성들 또한 각각의 세계를 이루며 전개되므로 우리의 세계 외에 다른 무수한 세계가 병렬로 존재한다라는 개념인데 여기에 동조하지 않는 학자들도 많지만 이 이론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연구자들 또한 적지 않습니다. 사실이 어찌되었든 이 이론과 개념은 영화를 비롯해서 각종 드라마와 소설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재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참 궁금한 거 한 가지는 만약 아인슈타인 박사가 살아 생전에 이 이론이 나왔었다면 그는 여기에 관해서 뭐라고 말했을까라는 겁니다.   

개정 신판에 추가된 내용은 이전 구판에서 볼 수 없었던 그 유명한 '코펜하겐 해석'을 둘러싸고 심도있게 벌어졌던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논쟁에 관한 겁니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라는 유명한 말이 나오죠. 또, "달은 보고 있을 때에만 존재하는가?"라는 물음도 나오게 됩니다.

양자역학의 실제 적용에 대한 효용성은 인정하면서도 그 불완전한 이론은 받아들이지 않고 비판했던 아인슈타인 박사의 질의에 양자역학자 닐스 보어가 답변을 하는 식으로 오랫동안 지속된 논쟁에서 얄궃게도 아인슈타인 박사는 자신이 만든 상대성 이론에 의해 반박을 당하게 되지요.

1930년 솔베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과 양자역학자들 사이에 극적인 논의가 있었습니다. '시계장치의 광자 상자'라는 역시 가상의 장치를 가지고 격렬하게 벌어진 논쟁에서 아인슈타인 박사는 빛이 발사되는 시각과 그 무게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다고 공격했는데, 이는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르면 불가능한 것이어서 순간 양자역학에 위기가 찾아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를 두고 밤새 고민했던 '닐스 보어'는 다음날 아침 상대성 이론에 따라 중력의 영향하에서 움직이는 물체로 인해 시간이 늘어나므로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수 없다는 반론을 펼침으로써 아인슈타인 박사는 자신이 만든 이론에 의해 논쟁에서 지게 되는 묘한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이러한 양자역학으로 인해 20세기는 전자공학의 시대가 되었으며 반도체나 IC회로를 발명해 라디오부터 TV, 오디오를 지나 초전도, 상온 핵융합을 거쳐 21세기인 오늘날에는 컴퓨터와 정보통신이라는 빛의 시대에 진입하게 되었고, 이는 양자역학이 탄생한지 불과 60여년 만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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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하는 신비의 지저문명, 텔로스 지저문명 텔로스 시리즈 1
오릴리아 루이즈 존스 지음, 박찬호 옮김 / 은하문명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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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내부 어딘가에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지저 세계'의 문명이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지저 세계 '텔로스(Telos)’ 원로들의 결혼과 건강 그리고, 의식의 각성에 관한 3가지 메세지들이 채널러를 통해 전달되는 부분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진실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지저 세계'는 우리의 세계와 차원이 다른 관계로 육체를 지닌 일반적인 사람들이 물리적으로나 아스트랄 혹은 영적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저에 있는 존재들은 인류를 포함한 지상의 생명체들에게 매우 호의적이고, 그들 중 특히 우리 인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기꺼이 강구하는 선한 존재들이다.

최근 지구 각지에서 빈번하게 발견되고 있는 UFO들과 이들이 얼마나 관련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류 문명에 비해 차원이나 기술이 많이 발달해 있는 그들은 인류의 옳지 못한 의식과 위험한 기술들의 오남용을 우려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의식 각성과 향상을 위해 채널러들과의 교신인 채널링을 통하여 인류에게 여러가지 도움이 되는 메세지들을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지상의 세계와 하나로 합쳐질 때가 머지 않았으며 그때를 위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모색하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 한다.

실제로 그 옛날 언제부턴가 지구의 땅 속에는 우리와 또 다른 문명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주장이 문헌들을 통해 내려오고 있었고, 20세기 들어 창립된 '신지학회'에서 이들 사안에 대해 면밀히 검토를 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대중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여러 작가들의 공상 소설이 출판되면서부터였다. 지금이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지저문명이나 관련된 정보들을 많이 얻을 수 있어 '텔로스'와 '아갈타 왕국' 등에 대한 내용들을 알기가 어렵지 않고, 또한 더욱 놀라운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세계를 우연한 계기로 방문하고 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증언 내용 중에서 공통점은 극지방을 여행하던 중 두꺼운 얼음으로 둘러싸인 곳을 지나자 지구라고 보이지 않는 전혀 다른 풍경의 포근하고 밝은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거기 사는 존재들은 모두 키가 큰 거인들이며 부드럽고 온화한 태도를 가졌다는 것 등이다. 특히, 티베트 수도승인 '롭상 람파'가 스승 '밍야 돈둡'의 안내를 받아 살아있는 육신의 몸을 가진 상태로 지구 내부를 직접 걸어서 이 곳을 방문하고 돌아온 여행기를 읽어보면 반신 반의하면서도 믿고 싶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티베트의 14대 달라이 라마(Dalai-Lama) 역시도 1985년에 보디가야(Bodhgaya)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가 있다. "비록 특별한 입문과 더불어 사람들이 자신의 카르마적인 인연을 통해 그곳에 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곳은 우리가 실제로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물리적 장소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그곳이 정토임을 ,즉 인간 세상 속에 있는 '청정한 지역'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럴만한 공덕과 실질적인 카르마적인 인연이 없는 한은 그곳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티베트인들은 여러모로 지저세계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고 생활 속에서도 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들어있는 '칼라차크라 탄트라'에 기록되어 전승되어 오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내려오는 전래 민담에도 '무릉도원'이니 '별천지'라는 곳을 갔다가 돌아와 돌연변이 취급을 받게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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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경전 - 개정판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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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에게 13이라는 숫자는 불길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날이 금요일과 겹치면 사람들은 더욱 그런 느낌을 강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혹자는 이 13이라는 숫자가 대중들에게 이런 식으로 인식되게된 데에는 '성배'에 관해 의미있는 정보를 얻었던 초기의 템플 기사단이 국왕의 음모에 휘말려 처형당한 날로 역사에 남겨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불행했던 일이 그 명맥을 오늘날까지 유지해 오다가 '13일의 금요일'이라는 공포영화가 탄생하는데 일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13이라는 숫자가 불길한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천년의 금서' 이후 소설가 김진명씨의 작품을 거의 1년 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우리 현대사에서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는 일들 중 하나인 고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그린 작품 '1026'과 이 책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다 선택한 것이 이 작품 '최후의 경전'이었다.

작가는 줄곧 그의 소설에서 우리 역사를 통해 내려오면서 풀리지 않고 있는 의문점들과 일반 대중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들을 파헤치며 그 속에서 우리의 역사와 민족적 자긍심을 하나 하나 발견해오고 있는데 이번 '최후의 경전'에서도 우리 민족에게 전해지는 경전을 소재로 전세계적인 흐름과 그 속에 담긴 수수께끼 또는 미스테리를 통해 그 모두를 엮어가는 기발한 이야기 속에서 이러한 작업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앞서 이야기 했던 숫자 13의 의미가 가지고 있는 수수께끼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동반한 궁금증과 더불어 또 하나, '매미'가 왜 그토록 오랜 기간을 땅 속에서 지내는가의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위한 여정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13이 더 이상 불길한 암시가 아니라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숫자이며,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최고의 지혜가 무엇인자 그리고, 그것을 어디에서 어떻게 얻어야 하는지, 프리메이슨으로 대표되는 비밀결사와 '그림자 정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와 그들이 추구하는 앞으로의 행보, 여기에다 성경의 묵시록에서 암시하는 내용에 더해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의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는 우리 민족에게 남겨진 경전을 통해 마치 퍼즐처럼 산재해 있는 진실찾기가 점점 그 모습을 갖추어 나간다.

이 책은 소설이고 작품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내용이 어느 정도의 진실성을 가지는지는 읽는 독자들이 판단한 부분이지만 소재가 되는 경전을 예전에 읽어본 상태에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점은 그 모든 것을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고대로부터의 선인들이 후세에 전하고 싶었던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결말 부분에서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그렇게 끝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해가 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단편적으로는 알고 있었던 각각의 내용들을 한데 묶어 연결시킨 작가의 발상과 노력이 대단하다. 책을 읽고나서도 많은 생각들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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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 (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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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영화가 가지는 여러 장점들 중의 하나로 시간과 공간적 배경의 한계가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컴퓨터 CG가 발달한 영화는 물론이고, 책의 지면 또한 작가의 상상을 기술하기에 종이가 너무 작아서 조금 쓰다가 잠이들고 마는 경우는 없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류가 생존을 위해 향후 1~2세기 안에 다른 행성을 찾아 지구를 벗어나야 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인류라는 종이 존속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우리 인류가 또 다른 지구를 찾아 우주를 항해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구와 태양이 수명을 다 하든 그 이전에 인류의 존속에 심대한 문제가 닥치든 말이다. 현재에도 이런 계획이 이미 시도가 되고 있고 기초적인 성과들도 나오고 있는 상태다.


지금 실험을 거치고 있는 방식과는 많이 다른 양상이지만 소설 '파피용'에서는 저자의 상상력이 매우 돋보이는 기발한 방법이 펼쳐지면서 프로젝트가 좀 삐걱거리긴 하지만 그럼에도 대체로 잘 굴러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맨 처음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한 사람이 있고, 그것은 보기 좋게 주류의 퇴짜를 맞는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비정상적인(?)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어떤게 정상이고 어떤게 비정상일는지... 지구에 남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 어느 쪽이 맞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찾기는 힘들다.


어쨌거나 비주류의 한낱 허황된 꿈으로 묻히기 일보 직전 여기에 우연히 합류하게 되는 자금력을 지닌 괴짜 부호가 있어 그렇게 회사가 설립되고  각 부문의 실력자들이 하나씩 모여 거대한 민간 주도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점점 우주 항해의 꿈은 현실화되어 간다. 그 목적은 인류가 다시 정착할 수 있는 또 다른  지구 행성을 찾는 것.


항상 그렇지만 처음 잡았던 계획은 계속 수정을 거치게 된다. 여기서도 작가적인 상상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어 항해기간은 1,000년, 여행자는 100,000여명으로 까지 늘어나 정확히 144,000명을 선발하게 되고 이 숫자에도 담긴 뜻은 예사롭지 않다. 당연 1,000년이라는 기간은 장난이 아니며 처음 출발할 때 탑승한 사람들은 그 종착역을 보지 못한다. 새로운 인류와 새로운 세상을 위해 첫 발을 내딛는 선구자적인 사람들임과 동시에 이 원대한 계획을 위해 다른 한 편으로는 희생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우주선도 거듭된 연구와 실험을 거쳐 지구와 거의 흡사한 내부 환경을 가진 어마어마한 크기의 길죽한 모양으로, 동체가 회전하면서 중력을 만들어내는 원리를 적용시켰고 더욱 기발한 것은 동력원으로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는 방식이라 그 기나 긴 항해의 시간을 거치면서도 빛만 있다면 연료와 에너지에 대한 걱정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 만든 태양 전지판은 큰 범선이 펼친 돗처럼 아주 얇으면서도 엄청나게 큰 형태이다.


그러나 일이라는 게 원래 그렇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어려움이나 문제 없이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프로젝트 자체에서도 실험의 실패와 이견을 보이는 여러 의견들의 절충이 필요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어디까지나 사소한 문제들이다. 정작 보다 더 크고 심각한 문제는 자기들의 생각과 방법이 다른 사람들이나 집단 그리고 그들의 방식에 아주 적대적이거나 심지어 증오를 바탕으로 무차별적으로 실력 행사를 하는 세력들이 있고, 이는 상당히 위협적인 현실로 다가온다.


여기에는 항상 떡밥을 던지며 발단을 유도하는 언론뿐만 아니라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정치, 경제, 종교, 교육, 미디어, 시민단체 등 제각기 해당 집단이 가지는 손익의 잣대를 들이대고 그들만의 시각으로 판단하며 목소리를 높여가고 심지어 이들을 적으로 규정한 국가적인 차원의 제재와 탄압이 들어오는 시점에서 주인공과 또 함께 하기로 한 프론티어들은 결단을 내려야 하고, 그것은 어서 한시 바삐 이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를 성공적으로 떠난 후에도 작가의 상상력은 계속된다. 이 미지의 탐험가들에겐 이미 인류의 모든 기술과 역사 속에서 얻어진 교훈이 있기에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면서 이전 인류의 좋지 못했던 그리고 옳지 못했던 전철을 답습하지 않기 위한 방안을 마련코자 심혈을 기울인다. 그리고, 인류의 과오를 돌아본 모든 탑승자들이 합심하여 그러한 것들을 지켜나가면서 이들의 프로젝트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제도와 규정을 잘 정비했다 하더라도 인류의 유전자 속에 저장된 코드들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가 없다. 우주 항해 1세대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모든 것이 원만히 돌아갔지만 그들의 2세 그리고 그 후손들이 태어나면서 점점 처음의 원대했던 이상과 목적은 갈수록 희박해지고, 언제부턴가 지구와 이전의 인류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전설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되면서 오로지 그들의 목표만이 계속 후대로 전해지게 되었다. 그 사이 인류가 격어왔던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들이 우주선 내부를 계속 잠식해 들어가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희망은 없는 것일까.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마지막까지 그 예리한 상상력을 접지 않는다.


가끔 밤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우주를 생각해보는 동안 당면한 일들이나 세상사가 하찮게 느껴질 때가 있듯이 이 책을 읽으며 그 상황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동안에는 우리가 지금 신주단지처럼 붙잡고 늘어지는 돈, 권력, 명예, 종교, 인기, 각종 사회 전통적인 가치라는 것들이 결국 우리들 스스로가 키운 공룡이며 현재 그 허상들에 얼마나 얽매여 들어가 있는가를 한 번 뒤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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