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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ㅣ 닮고 싶은 창의융합 인재 1
신은경 지음, 끌레몽 그림, 손영운 기획, 와이즈만 영재교육연구소 감수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1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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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에 창의융합형 인간이라면 팔방미인, 오지랖 넓은 사람, 특출나게 잘하는 것은 없지만 여러방면에 관심이 많고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되었을거에요. 하지만 그들도 그 능력을 더 발전시킬수 있는 시대와 교육환경과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면 아마도 창의융합형 인재로 거듭날수도 있었을거에요. 최근 인기리에 방영중인 세종을 만나 그 능력을 발휘한 장영실, 우리에게 인문학과 결합한 기술의 결과물인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선물해준 스티븐 잡스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창의융합형 인재이겠죠. 500년전에 살았던 인류 역사 최고의 천재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야 말로 르네상스라는 시대를 만나 자신의 확고한 신념과 노력에 의해 다양한 분야에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진정한 창의융합형 인재라는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볼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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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일생의 무대는 크게 이탈리아 피렌체와 밀라노, 말년을 보낸 프랑스 입니다. 만약 시련과 도전의 기회를 줄수 있는 인생의 무대 변화가 없었다면 다빈치도 현재에 안주하고 일반적인 똑똑한 인재로 머물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우리나라 한국사와 함께 살펴보면서 다빈치가 다양한 스승, 멘토를 만나 자신의 능력을 꽃피웠던것처럼 다빈치가 장영실과 만났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왔을지도 무척 궁금해지는 한국사, 세계사와 함께 보는 다빈치 일생 연대기표네요.
뛰어난 천재라고만 불렸던 다빈치가 최근에 모든 분야에 통달한 창의융합 인재의 모범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데 어떤 단계를 밟아 창의융합 인재로 우뚝 섰는지 이 책을 따라가며 살펴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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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인 다빈치는 당시에 화가가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가 아니라 물건을 생산하는 수공업자로 평가되었지만 화가는 자연과 가장 닮은 창조적인 일을 하는 직업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사생아로 태어나 대학을 갈수 없었던 다빈치는 프란체스코 삼촌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자연속에서 무엇이든 꼼꼼히 관찰하는 관찰력을 키우죠. 아버지를 통해 베로키오에게 그림 실력을 인정받은 다빈치는 피렌체 베로키오 공방에서 그림을 향한 첫발을 내딛읍니다. 드디어 <그리스도의 세례> 작품을 통해 스승님을 뛰어넘는 실력을 인정받아 회화 분야의 일을 혼자서 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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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아로 태어나 대학교육을 받을수 없었던 다빈치는 책을 좋아하는 책벌레로 다양한 분야의 책을 통하여 지식과 감동을 얻어 다양한 분야에 그것을 응용하고 접목시킴으로써 그의 위대한 업적의 바탕이 되게 합니다.
다빈치가 견습 생활을 하는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예술, 건축, 문학, 과학 등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었지요. 또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발명으로 책이 여전히 귀하고 비싸지만 책을 접할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지요. 선배의 책을 통해 책에 대한 다빈치의 열망의 문이 열린 후론 자신이 얼마나 지식에 목말라 있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지식을 알아 가는 기쁨이 얼마나 행복감을 주는지 알게 되지요. 새로운 스승 알베르티를 만나 훌륭한 화가가 되기 위해선 예술에 대한 모든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피렌체 대성당 꼭대기에 구를 얹으면서 기하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과정에서 물리학, 역학, 기하학, 건축한, 야금학까지 배울 수 있었읍니다. 드디어 이런 모든 지식의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책을 만날수 있는 메디치 가문의 도서관을 이용할수 있는 허락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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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를 훌륭한 화가로 알게 하는 오류를 범하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모나리자>, 가장 훌륭한 그림인 <최후의 만찬>은 철학, 수학, 해부학, 광학 등 여러 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있어 탄생하게된 다양한 지식이 하나로 융합되어 예술성을 높인 최고의 산물이죠.
라틴어를 하지 못해 교양 지식이 없다고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로부터 홀대 받은 다빈치는 결국 마흔이 넘은 나이에 라틴어를 배우게 됩니다. 피나는 노력의 덕에 라틴어를 익히고 혼자서 고대 과학에 접근할 수 있게 되지요. 그리고 자신을 후원해줄 밀라노의 스포르타 공작을 찾아 밀라노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그림이 아닌 류트 연주로 스포르타 공작의 인정을 받아 차차 화가로 명성을 쌓아가게 되지요.
1498년 <최후의 만찬>이 세상에 공개되자 정중앙에 자리 잡은 예수를 중심으로 공간이 점점 깊어지면서 마치 벽면 안쪽에 또 하나의 방이 있는 듯 보이게 하고 예수 머리 뒤의 창문에 초점이 모이게 하여 후광과 같은 효과를 내는 원근법과 제자들의 손짓, 태도, 모습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고 그림속에서 제자들에게 각자 역할을 주어 그림으로 말없는 시를 표현한 표현력에 모든 사람이 놀라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또한 우연히 그리게 된 리자의 초상화를 그릴때도 인공적으로 석양을 만들기 위해 안뜰에 검은색을 칠한 벽을 쌓고, 그 벽 위에 지붕을 얹어 특별한 공간을 만들고 해가 날 때는 가리개로 빛을 조절해 햇빛에 구속받지 않도록 하여 대낮에도 얼굴에서 이마 부분만 빛나 보이고 양 볼을 감싼 어둠도 도드라지게 하고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해 일부러 인물의 윤곽선을 흐리게 처리하여 여인의 미소를 모호하지만 부드럽게 보이게 하여 신비로운 미소를 만들어 그 멋진 <모나리자>를 만들어 냅니다.
이 모든 것이 오랜시간 수많은 책을 읽고 연구하면서 얻은 지식들을 하나로 융합해 보는 시도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이 때문에 오늘날 다빈치를 대표적인 르네상스 인 이라고 부르는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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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사생아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다빈치는 자연, 동물, 신분과 빈부의 격차 없이 모든 사람이 편하게 만날수 있는 사람이길 바랬어요. 그런 마음때문에 그의 창조적 작업들 속에 자연에 대한 깊은 존경과 사랑이 깔려있죠.
새장에 갇힌 새들을 구하기 위해 새를 구입해 날려보내주고, 채식주의자의 삶을 선택하고, 천사의 얼굴을 한 악동 자코모를 자식처럼 돌보고, 자신을 버리고 새 인생을 선택한 어머니를 가정부로 모셔와 함께 마지막 삶을 같이 보내는 등 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했지요. 이는 프란체스코 삼촌의 사랑과 자연이 준 가르침 때문이었어요. 자연이 알려준 배려와 사랑을 실천하고 아무리 위대한 발명과 과학일지라도 자연이 만든 정교함은 감히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연을 정복하고 바꾸려 하기보다는 겸허하게 배우고자 했던 그의 바른 인성도 다시 한번 짚어보고 넘어가야 할듯 합니다. 이 시대 학문적 업적이 훌륭한 일부 지식인들의 몰상식한 행동에 대한 따끔한 충고로 받아들여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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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는 해부학에 무척이나 열중했지요. 인간의 몸을 이해하는 것이 자연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당시 의사 외에 금기시된 시체 해부를 마다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등 도전을 즐겼고 여기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융합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기쁨을 누렸읍니다.
우연히 접한 인체 해부학 실습에서 무엇을 깨달아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하지만 1470년 폴라이우올로 형제가 운영하는 공방을 찾아가 왜 해부학이 화가에게 필요한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직접 해부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죠. 몰래 해부로부터 레오 10세의 허락을 받은 로마의 산토스피리토 병원에서의 해부를 통해 1,500장에 이르는 해부학 스케치를 남기게 됩니다. 당시에는 이 연구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 일인지 아는 사람도 없었어요. 다빈치는 자연의 원리를 연구하는 과학자의 자세는 예술가에게도 필요한 덕목이라 믿었고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연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결코 탄생할 수 없기에 해부학에 그토록 열중했던 것입니다. "과학 지식 없이 적용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방향키나 나침반 없이 배에 오르는 조타수나 다름없다." 다빈치의 말처럼 도전과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의 융합이야 말로 새로운 지식의 창조의 밑걸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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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가 활동한 15세기 르네상스가 싹을 틔우던 시기엔 아직도 중세적 세계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여전히 기독교 교리에 집착하고 있었지요. 자연에 대한 지식도 아직 고대의 학자들이 이룬 수준을 넘어서지 못해 다빈치는 지식에 대한 끈질긴 호기심과 인내심, 투철한 실험 정신을 통해 화가에서 과학자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토스카넬리에 의해 과학에 눈을 뜬 다빈치는 지금이라면 당연시 되지만 그 당시엔 기상천외한 자동화 기계들, 무기, 하늘을 나는 꿈을 위한 설계도 등 다양한 발명품이 만들어지고 실패의 연속인 실험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게 현재에 실현된 것을 보면 그의 노력은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었어요.
프랑수아 1세의 후원을 받아 여유와 안정을 찾은 프랑스에서 밀라노 시절부터 써 왔던 노트를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40년간 써 온 노트는 현재 남아 있는 것만 해도 약 8,000쪽에 달하는 노트입니다. 자신이 생각해 낸 훌륭한 결과물을 누군가가 가로챌까 불안해 하고 나쁜 곳에 쓰일까 걱정해서 거꾸로 글씨를 쓴 비밀노트엔 채소 요리법, 일상적인 생각들, 우스갯소리, 구입한 물건 목록, 해부도, 건물 설계, 무기 설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구절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내용과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질 수 있는 호기심이 가득 담겨져 있읍니다.
노년에 왼팔 마비로 방대한 노트를 정리해 책으로 엮으려던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과학의 시대에 사는 오늘날에도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는 내용, 당시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현실에 실현된 내용 등 그의 업적은 신이 다빈치 한사람을 위해 내린 은총이 아닌 우리 온 인류에게 내린 은총이며 창의융합 사고의 모법답안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닮고 싶은 창의융합 인재> 시리즈로 나올 프랭클린, 셰익스피어, 토머스 제퍼슨, 미켈란젤로, 뉴턴, 괴테, 정약용, 세종대왕, 아인슈타인을 제치고 가장 먼저 우리에게 소개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야말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꼭 필요한 창의융합 인재의 본보기라 할수 있겠네요. 추상적이고 모호한 창의융합 인재에 대하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삶을 따라가보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하고 어떤 능력이 갖추어져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해 주고 우리 아이가 그 속에서 한가지 한가지 닮아가려고 노력하면 미래의 창의융합 인재에 한걸음 더 나아갈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