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최제우.최시형 Who 한국사 조선 시대
권용찬 글, 김모락 그림, 경기초등사회과교육연구회.방민호 감수 / 다산어린이 / 201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전 동학 제1대, 2대 교주로서만 인식했던 최제우, 최시형을 어린시절 모습부터 시작하여 세도 정치, 열강의 침략 등 조선의 암흑기속에서 그들의 고민과 번뇌를 공부해볼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평생 학문만 닦은 선비인 최옥의 늦둥이로 태어난 최제선은 어릴적부터 총명함을 돋보이며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제선의 어머니는 이미 한 번 결혼한 경험이 있어 서자 취급을 받아 과거를 볼수 없는 상황이지만 글공부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나날이 학문이 늘어갔지요. 제선이 열 살 되던 해 어머니 한씨가 세상을 뜨고 서자인 자신이 과거를 볼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과거를 보지 못해도, 글을 알아야 세상을 알고 자신의 길을 찾을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마음을 잡고 학문을 계속해 나갑니다.

 

최제선이 태어나 성장했던 순조, 헌종, 철종 시대는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몇몇 유력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고 국정을 좌우하는 세도 정치 시대로 정치 기강이 문란하고 삼정이 문란하여 백성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웠으며 사회 문제를 깨닫기 시작한 농민들이 대규모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제선의 총명함에 큰 기대를 걸고 있던 형 제환의 도움으로 농사일 대신 글공부에 전념하던 제선은 열일곱살 되던 해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고 집안에 보탬이 되는 일을 위해 장사를 하면서 세상을 돌아보는 공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십 년간 돌아본 세상은 백성이 힘겹게 사는 문제가 있는 사회라는 인식을 하고 세상에 대한 고민은 하루하루 커져가기만 하지요. 깨달음을 얻어 세상을 바로잡는것이 재선이 해야 할 일이라는 제환의 말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고 길을 떠납니다.

 

이 시기는 힘든 백성들에게 평등 사상과 내세 사상을 바탕으로 호응을 얻은 천주교가 빠르게 전파되고 이양선의 빈번한 출몰과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으로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분명히 밝힌 흥선 대원군의 쇄국정치와 함께 서양 근대 문물의 도입과 외국 통상 수교에 대한 상반된 의견을 주장하는 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대립이 있던 어수선한 시기였습니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기도와 수련을 시작한 최제선은 비몽사몽간에 겪은 <을묘천서>의 환상 체험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고 자신의 이름을 어리석은 백성을 구제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의미로 제우로 바꾸고 사람들에게 동학의 가르침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 사회에서 신분은 물론, 남녀의 차별 없이 서로를 귀하게 여기라는 동학의 가르침은 전국에 퍼져나갔으며 이를 불안하게 여긴 조정에서 최제우의 체포령이 내려 쫓기는 신세가 되었지만, 동학의 진리를 널리 전해 고통받는 백성들을 구하겠다는 최제우의 의지는 꺾이지 않습니다.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무력으로 약한 나라를 침략해 식민지로 삼는 제국주의에 의해 청과 일본은 개항을 하게 되고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운요호 사건을 일으키고 개항과 함께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경상도 경주의 한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최경상은 글을 배워야 뭐라도 할 수 있다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서당에서 글을 배우며 어린시절을 보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고 친척집에서 여동생과 함께 하인처럼 일하고 온갖 구박을 참고 버티며 살아가게 되지요. 최경상이 열일곱살 되던 해 조지서에서 일하게 되면서 여동생을 시집보내고 가정을 일구고 열심히 돈을 모아 조그만 땅까지 사게 되지만 삼정의 문란속에서 희망을 잃고 화전민으로 숨어 살게 됩니다. 숨어서 화전을 일구는 신세에 한탄만 하던 그는 동학에 대한 소문을 듣고 최제우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최제우가 고통 속에 살아가던 백성들에게 희망을 준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인내천 사상, 모든 사람이 살기 좋은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후천 개벽 사상, 외세의 침입에 맞서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자는 보국안민의 가르침을 통해 백성들을 일깨우는데 큰 영향을 끼쳤답니다. 이런 동학의 사상이 동학 농민 운동으로 이어지고 백성들이 간절하게 바라던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되지요.

 

최제우의 가르침 속에서 경상은 드디어 만물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말씀의 뜻을 깨닫게 되고 동학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포교의 필요성을 느끼던 최제우로부터 최초로 진리를 전하고 가르칠 수 있는 권한을 허락받게 됩니다. 전라도에서 포교 활동을 펼치며 동학의 가르침으로 고단한 삶에 지친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노력한 최경상은 동학을 탄압하기 시작한 조정에 잡혀간 스승 최제우를 풀어달라고 경주관아를 찾아가고 무사히 나온 최제우의 백성을 지키고 보살피라는 명을 따라 접주제를 실시하여 조직적인 포교 활동을 시작하게 되지요. 접주제를 통하여 동학의 교세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게됩니다.

 

억울하게 죽은 교주 최제우의 누명을 벗겨 주고, 동학에 대한 탄압을 중지해 달라고 요구한 삼례 집회로부터 시작한 동학 운동은 보은 집회을 거쳐 고부 군수 조병갑의 비리와 횡포에 전주성을 점령하고 기세를 부리다 청일 전쟁후 우금치 전투에서 크게 패한후 실패로 돌아가게 되지요.

 

제2대 교주가 된 최경상은 동학을 탄압하는 조정에 의해 스승 최제우가 효수형을 당하는 슬픔을 겪고 체포령을 피해 각지의 접주들과 만나며 최제우의 죽음으로 흐트러진 동학 교도들의 민심을 수습하고 동학을 다시 부흥시키는 일에 앞장서게 되며 자신의 이름도 동학의 진리를 가지고 때를 따라 나아가겠다는 뜻의 최시형으로 바꾸게 되지요. 더 널리, 정확하게 동학의 교라를 전하기 위해 소백산 깊은 산속에 거처를 마련하고 최제우가 강론했던 내용을 정리하여 동학 최초의 경전 <동경대전>, <용담유사>를 완성합니다. 열강의 침략  속에서 경전을 읽고 동학 교도가 된 백성들은 더 많아졌으며 양반들에까지 전파되기 시작합니다. 동학에 대한 탄압이 계속되자 최시형은 조정에 이를 중지해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 보은 관아로 향합니다.

 

실패로 끝난 동학 농민 운동은 3대 교주인 손병희가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고 동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출판, 교육 활동 등을 통해 민족 운동을 전개하고 3.1 운동, 6.10 만세 운동, 신간회 결성 등 일본에 저항하는 활동으로까지 확대됩니다.

 

보은 집회후 충청 감사 조병식의 약속을 믿고 시위대를 해산시키지만 조정에서는 최제우의 죄를 벗겨 주지도, 동학 교도들의 요구를 들어주지도 않고 동학에 대한 가혹한 핍박은 멈추지 않지요. 전봉준이 전주성을 점령한 동학 농민 운동은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에 개입할 여지를 주어 자진해산하지만 일본군은 조선의 주도권을 두고 청나라와 전쟁을 벌이고 승리후 침략 의지를 보이게 됩니다. 이에 최시형은 보국안민의 의지로 모든 동학 교도의 봉기를 명하고 저항하지만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후 전봉준은 처형당하고 최시형도 교수형에 처하게 되지요.

 

하지만 최시형에 이어 동학의 제3대 교주가 된 손병희가 동학의 이름을 천도교로 바꾸고 조직을 재정비해 일본의 식민통치하에서 항일 운동의 중심에서 활약하게 됩니다.

 

세도 정치와 삼정의 문란으로 조선의 국운이 기울어 가던 시기, 백성들의 힘겨운 삶과 고통을 경험하며, 고통을 해결할 진리를 구한 최제우는 민족 종교 동학을 창시했고, 최시형을 통하여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깨닫게 했으며 손병희를 통해 일제 강점기의 항일 운동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우리 역사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일제 시대 지어진 천도교의 집회소인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일제 강점기 항일 운동 중심지였고, 방정환이 중심이 된 어린이 운동의 발상지였네요. 명동 성당, 조선 총독부 청사와 함께 서울의 3대 건물인 이곳을 꼭 한번 둘러보고 싶네요. 또한 최제우의 아버지 최옥이 학문을 닦고 최제우가 태어났으며 동학을 창시한 곳인 용담성지도 체험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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