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조광조 Who 한국사 조선 시대
권용찬 지음, 팀키즈 그림, 경기초등사회과교육연구회.방민호 감수 / 다산어린이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를 되짚어 볼때 언제나 If 라는 가정법을 적용해 봅니다. 그 경우 가장 아쉽기도 하고 그 가정이 정말 일어났다면 역사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한 인물중 한분이 바로 조광조 선생님이죠. 시대에 앞선 개혁정신을 끝까지 지지해줄 군주가 있었다면, 옆에서 너무 빠른 개혁의 피치에 브레이크를 걸어 잠시 한숨 돌리고 나아갈수 있게 조언해줄 지지기반이 있었다면 과연 조선후기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무척 궁금해지게 합니다. Who? 한국사 조선시대 조광조를 통해 그 분에 대하여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하죠.


조광조의 남달랐던 어린시절부터 스승 김굉필과의 만남, 연산군때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와 스승의 죽음을 겪은 시련의 시간, 자신의 개혁정신을 알아준 중종과의 만남, 그 이후의 거침없는 개혁, 아쉬운 주초위왕 사건에 의한 죽음 등을 예종, 성종, 연산군에서 중종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상황과 엮어 기술하고 있읍니다.


어릴적부터 유학 오경의 하나로 예의 근본 정신을 강조한 <<예기>>를 즐겨 읽었던 조광조는 이웃 마을 박 선비가 고삐 끄는 하인을 함부로 하는 모습을 보고 재치있게 잘못을 지적해줍니다. <<예기>>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네요.


조광조는 성종 13년 연산군의 친어머니인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던 해에 태어나 어릴적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몸가짐이 바르고 총명하였읍니다. 연산군 4년 무오사화로 평안도에 유배온 김굉필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으며 갑자사화로 스승을 떠나보낸후 칩거하다 중종 5년, 29살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게 되지요. 그후 과거에 합격해 당당히 관직에 나아간후 훈구파를 견제하려는 중종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고 개혁정치를 펼쳐나가지만 훈구파들과의 대립과 지나치게 급진적인 조광조의 개혁에 싫증을 느낀 중종의 버림으로 유배후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위대한 이는 위대한 이를 알아본다고 했나요. 역시 우리나라 위인들에게도 자신의 멘토가 존재했네요. 조광조의 아버지가 평안도 찰방으로 부임하고 마침 무오사화로 평안도에 유배온 사림파의 거두 김종직의 제자인 김굉필의 만남은 한명의 위인이 우리 역사에 발을 내딛게 된 큰 사건입니다. 김굉필을 스승으로 모시며 조광조의 인생에 큰 변화가 생겼으니까요. 하지만 사실은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조광조가 김굉필과 아는 사이인 양희지라는 사람에게 추천서를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는 사실로부터 자신의 발전을 위해 유배중인 죄인에게 학문을 배우는 위험도 감수하는 조광조의 모습에 다시 한번 감동하게 되네요.


조광조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선 세조 즉위에 공을 세운 공신 세력인 훈구파와 고려말 역성혁명은 반대하면서 칩거하며 학문에 매진한 사림파에 대하여 알아두어야 합니다. 이렇게 교과서 핵심 키워드로 훈구파와 사림파의 특징을 깔끔하게 설명해주니 책을 읽으면서 시대상을 잘 이해할수 있네요.


김굉필과의 이별의 시간후 한양으로 돌아와 과거 시험을 준비하던 조광조는 지극히 자신을 아끼던 아버지 조원강이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부친의 묘를 지키며 삼년간 효를 실천하던 조광조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선비들이 모이기 시작하지요. 하지만 연산군의 횡포에 의해 부모님처럼 따르던 김굉필이 죽음을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학문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더욱 더 자기 자신을 갈고 닦아 앞으로의 세상을 위해 일하리라 마음먹고 더욱 학문에 정진하게 됩니다.


조광조가 조정에 발을 딛기전 두번의 사화가 일어납니다. <성종 실록>을 담당하던 이극돈이 실록에 기록된 내용 중 세조에 관해 좋지 않은 내용이 있는 것을 보고 유자광에게 상의하여 당시 사림의 우두머리인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기초로 하여 쓰여진 것이라 연산군에게 보고하여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을 비롯한 수많은 사림이 죽거나 귀양을 가게 된 무오사화와 연산군 어머니 윤씨가 억울하게 사약을 받게 되었다고 임사홍이 연산군에게 고하여 폐비 사건과 관련된 신하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한 갑자사화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네요. 이 책을 통하여 조선시대 4대사화중 연산군 시대에 일어난 무오사화, 갑자사화에 대하여 정확히 짚어볼수 있었어요. Who? 한국사 조선시대에서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 및 시대상을 꼼꼼히 짚어주니 인물뿐 아니라 인물을 통하여 그 시대의 역사까지 배울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듯합니다.


연산군을 쫓아낸 신하들에 의해 진성대군이 중종의 자리에 오르자, 때를 기다리던 조광조도 1510년 34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성균관으로 들어가지요. 뛰어난 학문과 인품으로 성균관 추천 관직을 얻게 되지만 주위의 떠드는 말에 사직을 하고 과거시험을 준비합니다. 반정을 일으킨 신하들에게 아내인 신씨까지 폐위하게 된 중종은 왕이 된 지 10년이 지나 반정 공신이 차례로 죽자, 반정 공신의 그늘에서 벗어나 차츰 왕권을 장악해 나갈 계획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때 비공식적으로 임금이 친히 보는 앞에서 치르는 알성시에서 조광조는 2등으로 합격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조광조는 다짐하지요. "전하는 덕으로 세상을 평안케 하는 정치를 하고자 하신다. 그렇다면 나 역시 목숨을 바쳐서라도 전하를 도와 전하를 바른 정치의 길로 안내하겠다!"


교과서 핵심 키워드에 중종반정 전후의 시대상에 대하여 나와있네요. 책에서 언급한것처럼 중종은 애초부터 반정으로 왕이 되었기에 세자 책봉되어 왕세자 수업을 받는 과정이 없었고 왕세자 책봉후 많은 관료들을 접하며 체계적인 수업을 받고 정치적 실무를 익히면서 자신의 주변에 자신을 도울 인물들이 모여 왕이 될 기반도 자연히 갖게 되는 준비된 군주가 아니었으므로 중종반정 이후 중종의 노력엔 조광조가 반드시 필요했던거지요. 일부 학자들의 이야기처럼 중종이 조광조을 자신의 왕권강화를 위해 이용후 버려 버리는 토사구팽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도 해봅니다.


알성시에 급제후 조광조는 삼사 중 하나인 사간원에서 일하게 됩니다. 중종의 두번째 부인인 장경 왕후가 사망하자 새로운 중전 간택건이 나오면서 진성 대군 시절의 부인인 폐비 신씨 문제가 대두됩니다. 이때 신씨의 복원을 상소한 순창 군수 김정과 담양 부사 박상을 처벌하자는 문제로 시끄러울때 사간원 말단인 조광조는 공정성을 잃고 공신 편을 든 사간원과 사헌부의 인원을 전부 벌하기를 요청하지요. 이 사건으로 조광조는 사림파를 대변하는 지도자로 우뚝서고 중종의 신뢰를 받게 되지요. 중종은 조광조와 함께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를 할것을 약속합니다.


시대돋보기 5에서는 조광조의 개혁 정치와 업적에 대하여 정리해줍니다.

폐비 신씨 복위 상소, 현량과 시행, 경연의 활성화, 소격서 폐지, 향약의 보급.

조광조의 개혁 정치를 살펴보면서 만약 조광조가 정조라는 개혁적인 군주를 만났다면 그의 개혁 정치는 어디까지 진행되었을지, 조선후기는 어떻게 발전했을지 궁금해집니다. 그랬다면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일어나지 않았을수도, 조선의 근대화가 일본보다 더 빨리 이루어져 한일합방도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역사의 If 를 생각해봅니다.


사람에게는 두려움이라는 것이 있기에 역사가 발전했다고 합니다. 만약 두려움이 없다면 불에 뛰어 들어가는 스스로 망하는 오류를 범할수도 있겠죠. 중종의 신뢰를 한몸에 받은 조광조는 두려움 없는 개혁에 피치를 올립니다. 유교 정치의 이념이 아래서부터 위로 이루어지기 위해 향약을 보급하고 유교의 사상과 정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유학자이자 고려의 충신인 정몽주의 제사를 성균관에서 지낼 것을 청하지요. 학문과 인성이 갖춰진 인재를 추천받아 관리로 임용하는 현량과 시행을 주장해 과거 제도의 단점을 보완하려고 하지만 훈구파들의 미움을 사게되는 계기가 됩니다. 방납의 문제점을 보고하여 백성들의 칭송을 받지만 소격서 폐지를 주장하여 왕실의 고유 권한까지 간섭한다는 중종의 노여움을 사게 됩니다. 이 사건이 조광조의 미래를 결정해주는 빌미를 제공합니다. 두려움이라는 브레이크가 조광조에게 있었다면, 더 유연한 개혁 정치를 진행했다면 기묘사화를 막을수 있지 않았을지....더 많은 개혁을 위해 한템포 쉬어가는 개혁이 아쉬워집니다.


조선시대를 공부하면서 가장 헷갈리고 자주 잊어버리는것 중 하나가 4대사화와 분당정치입니다. 조광조편에서 시대상 중요한 사건인 4대사화를 표로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네요. 고학년 아이들 시험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될듯해요.


급히 달리다 보면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나 봅니다. 소격서 폐지 사건이후 조광조와 사이가 소원해진 중종은 지나치게 강직하고 개혁적인 조광조의 정책에 점점 싫증을 내고 그가 왕의 권위에 도전할까 두려웠습니다. 이때 훈구파가 꾸며낸 주초위왕 사건에 중종은 드디어 조광조를 버릴 결심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조광조를 이용했든, 정말로 개혁에 대한 열망이 있는 군왕이었든 왕권이라는 자신의 것을 버릴수 없는 중종의 한계가 엿보입니다. 유배만 보내자는 신하들의 만류에도 결국 사약을 내리게 되지요.

자신을 버린 임금에게서 자신이 실패자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을 태운 수레가 성문을 나갈 때 어디서 모였는지 수많은 백성들이 수레를 에워싸고 눈물을 흘릴때 조광조는 그래! 난 틀리지 않았다. 난 백성의 편이었다. 백성들의 저 소리가 바로 그 증거다! 라고 눈물을 흘립니다.

중종이 내린 사약에 생을 마감한 순간에도 임금 사랑하기를 어버이 사랑하듯 하였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하였노라. 하늘이 이 땅을 굽어보시니 내 일편단심 충심을 밝게 비추리. 이 글귀가 메아리 쳤을듯 하네요.



카페를 통해 익숙한 한국사 퀴즈가 책에도 나와있네요.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책을 읽었다면 나도 전문가 OK!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역사 논술 문제네요. 중종의 입장과 조광조의 입장이 되어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써보는 시간입니다. 천천히 하나씩 바꿔 나가는 개혁이 좋았다고 선택한 우리 아들 그 마음속엔 개혁을 다 마무리 하지 못한 조광조의 개혁정치가 아쉬웠을지, 중종에게 버림받은 비운의 인물 조광조 개인에게 연민을 느꼈을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필수코스가 된 역사 체험학습 가이드도 들어있네요. 조광조의 유적을 찾아서 공부해보고 조광조 유적지 통장에 체험후 스탬프 찍어보는 페이지도 있네요.


인물 상관도를 살펴보니 훈구파와 사림파의 계보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한눈에 알수 있네요. 글로 읽어볼때보다 그림으로 살펴보니 더 쉽게 이해가 됩니다.


조광조가 살았던 시대에 세계사에선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독일, 루터가 종교 개혁을 했으니 조광조의 개혁정치가 성공했다면 우리도 현재와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무척 많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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