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쓸때면 가끔 회의감이 든다. 내 되도 안되는 필력으로 리뷰를 써서 이 책의 추억과 가치를 망치면 어떨까하는 얼토당토 않는 생각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더더욱 그렇다. 그의 소설은 적어도 내가 읽은 것들 중에 <공허한 십자가>가 단연코 최고라고 믿었다. 나는 책보는 눈이 없었던 걸까? 항상 가던 도서관에서 이런 명작을 지나치고 있었다.


2.

 이젠 단연코 말하건데 '방황하는 칼날'이 히가시노 게이고 최고의 소설 아니, 내가 읽은 소설 중 최고의 소설이다! 소설을 벗어나서 그 어떤 책보다 내가 이렇게 몰입감을 가진 적이 없었다.


3.

 이야기는 '에마'라는 중학생 소녀가 귀가하던 도중 의문의 남성들에게 납치되면서 시작된다. 그녀의 아버지 '나가미네'는 애간장을 탄다. 딸이 왜 돌아오지 않을걸까? 친구말로는 헤어졌다는데...실종 된지 며칠이 지나서 그와 딸의 조우는 활자로만 보는 나로서도 견디기 힘든 장이었다. 눈앞의 싸늘한 주검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해맑게 웃고, 십수년 세월을 함께한 소중한 존재였다.


4.

 이런 말을 해도 될까...살인이라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마는 유린당했다. 여성과 그의 부모에게서 가장 소중한 '순결'을 지나가다 괜찮다는 외모때문에 짐승 같은 놈들에게 더럽혀지고, 짓밟혔다. 이와 비슷한 영화가 있었는데, 예고편을 보면 에마와 비슷한 꼴을 당한 여학생이 계속 머리를 자르는 등 자신을 자학하고, 결국 자살, 아니 타살로 이어졌다.


5.

 유린당한 것뿐만 아니라 치한들은 유린당하는 장면을 촬영해 비디오 테이프로 수집까지 하는 인간의 사상을 넘는 행동까지도 했다. 그냥 그 길을 지나가기만 했던 그는 어느날 누군지도 모르는 남성에게 순결을 빼앗겨 장남감 취급까지 당했다. 그녀의 아버지 '나가미네'는 이제 치한들을 인간 취급 하지 않는다. 취미였던 사격으로 그녀석들을 사냥할 생각이다. 사냥총을 챙기고, 그 짐승 놈들을 사냥하기로 결정했다.


6.

 성폭행 관련 뉴스를 찾아봤는데 보면서 드는 생각이 순결이 '합의의 대상'인줄 안다. 한번 상처 입은 순결은 절대 낫지 않는다. 아무리 가벼운 상처라도 그 흉터는 죽을 때까지 남듯이 가장 고괴한 순결은 그 실체는 없어도 죽을때까지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이런 순결을 더럽히고도 빠질 것 없이 짐승들의 처벌은 너무나도 가볍다. 법원은 정의를 따르는 게 아니라 법을 따른다. 갱생의 시간을 주고, 올바른 길로 이끈다는 뱀의 혀로 유족들의 아픔과 피해자의 희생을 정당화하고 있다.


7.

 미성년자면 어떻고, 술을 마셨으면 어떠한가? 본능이 더더욱 드러났다는 증거인데...<공허한 십자가>에서 살인을 다뤘다면 <방황하는 칼날>은 그보다도 더 민감한 주제인 순결을 다루고 있다. 때문에 그 어떤 소설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결말은 다 그렇다. 친절하게도 어중간하게 끝나는 결말로 읽는 이가 소설에 나타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끔 만든다.


8.

 나같이 속좁은 사람은 나가미네가 사냥총으로 치한 머리를 날려버리는 결말을 기대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게 과연 옳은 결말인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심리학자 매슬로는 자기계발은 결말이 아니라 항상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현재 사회에 만연하는 법과 정의의 충돌 문제도 모두가 납득하는 합의선과 결말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피해자의 아버지쪽과 그 매스컴을 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남달랐다. 우리는 항상 과정에 충돌할 수 밖에 없다.


9.

 "정의의 칼날은 방황하고 있다."


10.

 그렇다고 노력과 의식을 가지지말라는 뜻은 아니다. 완벽한 시나리오는 아니더라도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성을 찾아볼 수 있다.


11.

 본 서평은 2년전 한 북카페에 본인이 올린 서평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역시 재밋는 책을 읽어야 서평 연장통도 풍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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