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0
잉게보르크 바하만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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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이라고 이름하여진 이 책에서 나는 사실 그 표제인 작품 '삼십세'보다는 다른 제목의 글들에 더 눈이 갔다. '삼십세'를 읽기에 아직 어렸기 때문인지 그만큼 충분한 독서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삼십세'의 내용은 내게 약간 난해하고 잡기 힘든 그 무엇으로 느껴졌다. 굳이 주제를 따지지 않더라도 다 읽은 후의 멍한 기분만 남을 뿐이었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아마도 작품의 수준보다는 내 이해 능력의 한계 때문인 것 같다.

그에 비해 다른 작품들은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나는 '고모라를 향한 걸음'과 '빌더무트라는 이름의 사나이'에 대해 매우 좋은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고모라를 향한 걸음'은 어떻게 읽으면 페미니즘 소설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보다는 좀 더 깊이있는, 사랑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한 소녀와 피아니스트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사랑이 과연 무엇인지, 우리의 의식 속에 박혀 당연히 여겨졌던 남녀간의 사랑이 얼마나 기계적인 것인지를 느끼에 한다.

'빌더무트라는 이름의 사나이'는 진실에 관한 탐구가 담긴 글이다. 주인공 빌더무트는 자신과 똑같은 이름의 살인자를 재판하며 어릴적부터 자신이 있다고 믿어왔던, 그래서 절대적으로 기대왔던 그 진실이란 것에 대해 환멸을 느끼며 그것이 자신을 어떻게 농락시켰는지를 되집는다. 글 어디에도 해답은 없지만 읽는 이는 그것을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다.

여성 작가의 글에서 흔히 발견되는 감상적인 문체가 잉게보르크 바흐만에게는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작가는 서정적이긴 하나 무절제하게 감정적인 문장들을 남발하지 않는다. 단지 격양된 어조로 독자를 부추기고 있다. 그 부추김이 나에게는 그리 기분나쁘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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