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마음 - 정채봉 산문집
정채봉 지음 / 샘터사 / 2020년 12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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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좋은 책을 만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정채봉 20주기 기념 산문집 <첫 마음>이 그랬다. 책을 받아들었을 때부터 왠지 설레었다. 정채봉 작가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20년 뒤 나온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천국에서 출간한 책이라는 정호승 시인의 말씀이 딱 들어맞는 책.


"삶을 비추는 투명한 언어, 정채봉"

"덴마크에 안데르센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정채봉이 있다.-정호승(시인)"


정채봉 작가님 책 다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졌다.

문장이 이 정도로 좋을 수가 있구나,라는 걸 오랜만에 느껴본 것 같다.

뭐랄까, 책 한 장 넘길 때마다 아까웠던 기분. 조용한 곳에서 나 혼자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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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봉 작가님은 1973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분에 <꽃다발>로 당선되어 등단하신 분이다.

동화작가이기도 하고, 성인 동화라는 새로운 문학 용어도 만들었다.

간암이 발병한 와중에도 에세이집 <눈을 감고 보는 길>, 동화집 <푸른 수평선은 왜 멀어지는가>, 첫 시집<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를 출간하였다.



샘터에서 얼마나 신경을 써서 출간했는지 느껴질 만큼 책의 디자인 또한 뛰어났다.

책장을 열면 가운데 초록 빛이 도는 종이를 썼다. 그리고 폰트도 마음에 들어서 무슨 폰트인지 궁금할 정도였다.



<첫 마음>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슬픔 없는 마음 없듯

마음 밭의 풍경/'나'가 '나'에게/창을 열라/마음의 문을 열고/미안한 시간/저녁 종소리/모래밭 능선 위의 한 그루 푸른 나무/물질을 티끌로 보아라/마침표와 첫 마음


-별빛에 의지해 살아갈 수 있다면

단비 한 방울/눈을 감고 보는 길/새 나이 한 살/바다를 생각하며/간절한 삶/마음에 상처 없는 사람은 없지요/생명/엽서 다섯 장/'순간'이라는 탄환/당신의 정거장


-흰 구름 보듯 너를 보며

내가 사랑하는 것들/사라지지 않는 향기/할머니/돌 베고 잠드는 생/흙이 참 좋다/몸의 녹슬기/참 맑다/작은 것으로부터의 사랑/꽃보다 아름다운 향기/별 하나의 위안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가을비/물을 생각한다/꽃과 침묵/그리운 산풀 향기/낙엽을 보며/새벽 편지/채송화를 보며/풀꽃/열일곱 살 소녀가 막 세수하고 나온 얼굴 같은 땅/가을날의 수채화/눈 속의 눈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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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읽으면서 펜을 들었다. 좋은 문장에 줄을 치고, 적어 놓고 싶었다.

이야기 하나하나 참 좋아서 읽고 또 읽고, 해야 했다.


모래밭 능선 위의 한 그루 푸른 나무 이야기는

인생길에 대한 내용인데, 지금 우리가 겪는 공황 중에서도 마음의 공황 역시 경제 공황 못지않다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럴 때 어린아이의 마음이 우리를 구원해 줄 거라고.

이런 불황에 감동 깊은 이야기, 옛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도 코로나 19로 모든 부분에서 공황상태이지 않은가.

나는 요즘 유독 책을 많이 읽고 있어 정채봉 작가님의 이야기에 깊은 공감이 간다. 특히 동화책에 마음이 가는 이유가 그것이 아니었을까.



미안한 시간 이야기 역시 참 좋았다.

좋은 이야기를 뽑자면, 책 내용을 모두 꼽아야겠지만 유독 내 시선에서 공감 가는 부분이 시간 이야기였다.

작가님의 가까운 인척이 암 투병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유행가 가사가 나를 두고 한 말인듯싶네."

그래서 작가님은 참 열심히 살지 않았냐며 회사를 일으키고, 자식들도 잘 키웠다는 말을 전했더니.

"나한테 너무 미안해."라고 했다는 것이다.


좋은 시간을 나한테만 너무 인색하게 살았다며.

정말 지금 해오고 있는 일이 정말 나를 위한 일인가?를 생각해보게 했다. 나보다도 바깥을 위해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 않느냐는 말이 인상 깊었다.



당신의 지금은 어떤 시간인가?라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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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마음>책과 필사 노트가 함께 왔다.

좋은 문장을 옆에 적어볼 수 있도록 구성된 노트였다.


간단하게 필사를 하면서 다시 책을 열어 전문을 읽어보고, 또 필사해보고...

여태까지 받은 책 부록 중 가장 좋은 부록이 아닌가 싶다.

필사 노트를 다 쓰고 나면 내 나름대로 또 필사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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