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본인의 이야기거나, 소설 속 그 누군가의 이야기거나.
짧은 소설, 초 단편 소설이 있다는 말만 들었지 직접 읽은 건 처음이었다.
소설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탓이다. 분량이 제법 있어야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과 여운을 깊이 느낄 수 있다는 생각.
짧은 소설은 말 그대로 짧다. 엽편 소설, 미니 픽션, 꽁트라고도 불린다. 한 이야기 당 보통 소설책 사이즈 3장 정도의 분량이다.
장편은 장편대로 단편은 단편대로 쓰기 어려운 법인데,
그 짧은 분량 사이에 이야기를 압축해서 모두 담아내는 부분에서 놀랐다.
3장을 읽는 사이에 타인의 세계로 푹 빠졌다가 나온 느낌을 경험했다.
성석제 작가는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는데, 그래서 그런가.
압축된 글 속에 풍자와 해학이 이런 거라는 걸 보여준다.

목차를 보자면
1부 되면 한다
오, 하필 그곳에!/페렐의 전설/되면 한다/자전거의 값/시인은 말했다/투 잡/예쁜 누나 동창생/내 정신은 어디에/운 좋은 사람/진정 난 몰랐었네
2부 생각의 주산지
오늘의 당신은 오직 어제까지만 가졌을 뿐/똑딱이의 최후/원한다면 달려주마/비둘기는 새다/바흐의 선물/서시의 계산/동무생각1/동무생각2/마그마가 끓인 라면/생각의 주산지/아부다비의 보물성
3부 물 맑고 경치 좋은 곳
라디오 일병 구하기/비 오는 저녁의 연주회/최상의 스피커/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봄/물 맑고 경치 좋은 곳/닭이나 기러기나/다음에. 나머지 반도/토종이 좋아/전문가의 충고
4부 수구떡의 비밀
‘병 따기’의 예술/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빵과 나1/빵과 나2/상도냐 상술이냐/염장면, 그리고 냉면/수꾸떡의 비밀/냅킨에 쓴 편지/애향심의 탄생/축복
40편의 짧은 소설이 실렸다.

“오늘 여기에 있는 나는 어제와 똑같다. 오늘의 나에 관해서는 내일의 나와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20여 분간 마주 서서 수준 높은 철학적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글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그려졌다.
정말 짧은 글인데 온갖 생각이 펼쳐진다.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을 읽으면서 내내 이야기에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했다. 책을 몇 권 읽은 느낌이 든다.
아이 옆에 앉아서 책을 읽기 때문에 장편을 읽으면 자꾸 끊겨서 아쉬운데, 짧은 소설은 이럴 때 적합한 책이라고 해야 하나.
다른 엽편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