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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새를 너에게
사노 요코 지음, 히로세 겐 그림, 김난주 옮김 / 샘터사 / 2020년 2월
평점 :
"나의 새를 너에게"
인생이란 여행 속에 스쳐가는 인연과 다채로운 사랑의 모습을 그리다.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픈 사랑의 힘, 그리고 삶의 의미.
사노 요코는 [100만 번 산 고양이]를 쓴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림책 작가, 동화 작가, 에세이로도 유명한 다방면으로 알려진 사노 요코의 소설집을 읽어보았다.
샘터에서 나온 [나의 새를 너에게]라는 책인데, '아름다운 우표 한 장이 엮어 내는 따뜻한 사랑과 기적'에 대한 이야기다.

화이트 톤의 표지와 반짝이는 파란색 새 한 마리.
깨끗하다는 느낌이 먼저 드는 표지였다.
양장본 하드커버 88페이지의 얇은 책.
이 소설책은 1980년대 일본에서 출판되었다가 절판된 뒤 입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작품이다.
그러다가 히로세 겐의 그림과 함께 다시 출간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나온 지 20년이 지난 책이다.

우화의 느낌이 강한 문장이 읽는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준다.
"엄마 배에서 태어났을 때, 자그만 사내아이의 이마에는 우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라고 시작되는 이야기.
그 우표는 어떤 힘이 있을까.
아기의 이마에 우표가 붙여서 태어났다니, 참 신비로운 생각이 든다.
아기의 우표는 어떻게 되었을까

표지를 열면 커다란 무지개 날개를 단 여자아이가 나온다.
이 책에는 목차가 없다.
책을 볼 때 목차부터 훑어보고 내용을 보는데, 없어서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목차가 없어야 할 책이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동화 문장으로 쓰여 있어서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기가 쉽다.
궁금해하며 분량 땜에 덮었다가 폈다가 할 필요도 없이
한 번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 기분이 묘하다.
내용도 참 신비로웠는데, 읽는 내내 환상에 빠져드는 느낌이랄까.

시작은 그랬다.
의사는 갓 태어난 사내아이의 이마에 붙어있는 우표를 보았다.
우표를 보고는 살짝 떼어 자신의 주머니 안에 넣었다.
아름다운 우표에 빠져들었지만, 그 우표는 아내의 손으로 가고 만다.
아내에 손에 있던 우표는 도둑의 손으로 간다.
우표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지게 되는데,
아름다운 새와 신기한 글자가 쓰여있는 우표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인다.
작은 우표 한 장으로도 사람들은 다르게 반응하고, 다르게 대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소중히 지니고 있을 물건으로,
또 어떤 사람에게는 술 3잔과 맞바꿀 정도의 물건으로.
게다가 우표는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자꾸 다른 사람에게로 가지만
받는 이에게 우표는 선물이 되기도 하고, 사랑의 증표가 되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우표가 수치스러운 물건이 될 수도, 바람피운 증거로 생각될 수도 있는 것이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새와 신기한 글자가 새겨진 작은 우표 한 장의 역할은 그렇다.
우표뿐일까.
우리 삶에 지니는 물건 하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중히 다루고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하찮은 물건 하나 일수도.
물건을 대하는 마음이 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왕이면 좋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우표는 돌고 돌아 한 여자아이에게 갔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이 많고, 뾰족한 여자아이에게.
그 아이가 처음 우표가 든 액자를 받았을 때는 쿡 쑤셔 넣을 정도로 하찮게 여겼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변했다.
'사랑의 힘'이라고 해야 어울릴 것 같다.
심술궂은 여자아이는 아름다운 그림을 만나면서, 그 그림을 그린 청년이 가난하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그 여자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쓰고, 조그만 우표를 붙여 청년에게 준다.
'이 우표의 새는 그 사람 거야. 이 새는 그 사람에게 돌아가고 싶어 해.'라는 마음으로.
여자아이는 우표 이야기가 나오자 청년의 이마를 만지고 싶어졌다는 마음이 든다.
청년은 머릿속에 새가 자꾸자꾸 떠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다른 그림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지금은 너보다 너를 더 좋아해."
"막 태어났을 때 같은 기분이야."
우표가 옮겨진 건 우연일까 운명일까.
신비로운 우표를 탐낸 의사, 어떤 것이든 쉽게 훔쳐내는 도둑, 책 읽는 것 말고는 아무것에도 관심 없는 학생, 먼 나라와 낯선 항구를 떠도는 뱃사람, 복잡한 도시의 웨이트리스.
연관 없는 사람들의 손에 옮겨진 우표는
우연을 가장한 운명의 증표 같았다.
사노 요코가 선물하는 또 하나의 사랑.
[나의 새를 너에게]를 읽으며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우표처럼 가볍게 날아온 사랑이 커다란 의미로 다가와 따뜻해졌다.